버버리 역사

버버리 역사

Burberry 

인간은 자연의 동물이라서 기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활하며 습관과 문화가 생긴다. 우리가 좋아하는 ‘버버리’는 영국에서 개발되어 세계적인 유명 메이커로 자리를 잡았는데, 서 유럽은 겨울철에 습도가 높아서 추위가 옷 속을 파고들어 체감온도가 낮아진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수은주 상의 온도만 놓고 한국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기후의 특성 상, 공기중의 습기를 막고 바람을 막아서 보온하기 위한 기능으로 시작하여, 유명 메이커로 성장하는 역사를 살펴보자.

‘개버딘’을 만들어낸 ‘버버리’ 메이커의 창시자 ‘토마스 버버리’는 1835년 영국의 남서부의 ‘셔리 주’에서 태어나 1856년 영국 ‘햄프셔 주’ 윈체스터 거리의 한 포목상 주인이 되었다. 그는 당시 농부나 목동들이 즐겨 입었던 ‘스목-프록’ 이라는 옷감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입고 난 후에는 세탁하기가 수월하고 습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을 발견한다.

이 소재를 다른 직물에 적용시켜 더 좋은 옷감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개량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1879 년 ‘개버딘’이라는 소재의 원단 개발에 성공하였다. 1880년대 초, ‘토마스 뉴먼’과 ‘아서’ 두 아들을 그의 사업에 동참시키면서 회사 이름을 “토마스 버버리 앤 선”이라 정한다.

사업이 확장함에 따라 ‘토마스’는 런던 서부 지역에서 사업을 활성화시키기로 결정하였으며 ‘개버딘’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바상턴’과 ‘랜카셔’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였다. 또한 도매업 파트를 따로 두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으며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파리’ 등지에 매장을 오픈 한다.

버버리

20세기 초 최초로 ‘버버리 개버딘 레인코트’가 선보였다. ‘개버딘’은 무게에 따라 “AIRYLIGHT, DOUBLE-WEAVE, KAROO, WAIT A BIT, TROPICAL” 등 5가지 종류로 생산되었다. 비가 자주 오고 습기가 많은 영국에서 레인코트는 성공했고, 그 시대에 있어서는 아주 획기적인 소재였던 이 원단은 많은 스포츠광들과 탐험가들에 의해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도 이 ‘개버딘 코트’를 애용했는데 입을 때마다 하인들에게 ”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 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퍼져 훗날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가 됐다. 1901년 ‘토마스 버버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을 위해 레인코트를 디자인하면서 기능성을 고려한 견장, 가죽 허리띠 그리고 D 고리를 디자인에 응용하여 ‘트렌치 코트’를 탄생시켰다.

참호라는 뜻을 가진 ‘트렌치’ 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제품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이 활동하기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예를 들어 외부 이물질이 스며들지 않도록 손목 허리 목 부분에 벨트를 부착했고 팔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래글런’ 소매와 사격할 때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받친 ‘스톰 글랩’(오른쪽 어깨를 덮는 천)이 달린 ‘나폴레옹 칼라’, 풍향에 따라 달라지는 ‘컨버터블 프런트’ 등으로 실용성이 뛰어났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장교들은 자연히 이 실용적인 코트를 집으로 가져왔고, 계절과 유행에 구애 받지 않는 클래식 ‘버버리 코트’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영화 “카사브랑카”에서 애틋한 이별의 명장면과 함께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입었던 ‘트렌치 코트’는 지금까지도 유행이 되고 있다. 전쟁의 상흔이 가득하던 40년대에 나온 “애수” 역시 ‘트렌치 코트’가 자아낸 우수 어린 분위기를 십분 이용,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