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요 100 대 역사

프랑스 주요 100 대 역사

프랑스의 역사 흐름을 큰 줄거리로 간단히 알고가자!!!! 역사의 흐름을 알고가면 문화를 이해하기에 훨씬 도움이 된다.

* 기원전 15000 : 라스코 동굴벽화
선사시대 유물로서 동굴주거에서 예술을 발달시킴. 똑 같이 만들어 놓은 ‘라스코 II 동굴을 방문하여 선사시대의 숨결을 느껴 볼 수 있다.

라스코 동굴 벽화

* 기원전 4500 : 고인돌 문화
농경사회가 정착되고 죽은자들을 위한 무덤으로 고인돌을 세운다. 지금도 ‘브르따뉴 지방에 산재하여 있다.

* 기원전 52년 : 로마지배 시대
골르와 족의 수장으로 로마에 맞서 싸우던 ‘베흐생제흐토릭스 Vercingetorix‘가 ‘알레지아 Alesia’ 전투에서 로마의 ‘시저’에게 항복하면서, 약 400년 동안  전체 프랑스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 177년 : 그리스도 인들의 수난
2세기 경부터 프랑스 땅에 퍼지지 시작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탄압이 심하였으며, 177년 리용에서 대학살이 일어난다. 4세기 말엽에 ‘뚜르 Tours’의 ‘생 마르땡 Saint Martin’ 주교에 의하여 전체 프랑스에 복음이 전파된다.

* 496년 : 프랑코 왕국 끌로비스 개종
훈족의 이동으로 시작된 민족 대이동으로 여러 종족들이 프랑스 땅에 정착하고, 프랑크 족의 끌로비스에 의하여 481년 통일되며, 496년 최초의 ‘프랑스 왕조 ‘메로뱅 왕조 Merovingiens를 세운다.

* 732년 : 회교도의 패배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회교도들이 프랑스를 침공하지만, 서부 프랑스의 ‘쁘와티에 Poitiers’ 전투에서 ‘샤흘르 마흐텔 Charles Martel’에게 패배하면서 급속히 쇠퇴한다.

* 800년 : 샤흘르마뉴 대제
프랑크 족의 ‘샤흘르마뉴’에 의하여 ‘카롤링 왕조 Carolingiens가 768년부터 시작되고, 800년 12월 25일 ‘레옹 3세 Leon III’ 교황으로부터 황제로 임명된다.

* 885-886년 : 바이킹의 파리 침공
바닥이 평평한 ‘드락카 Drakkars’를 타고 강을따라 파리까지 침공하는 바이킹 족에 질려버린  ‘샤흘르 3세 Charles III’는 북부 프랑스 즉 ‘노르망디 Normandie’를 떼어주고 공작의 직위를 수여한다. 요기서만 살고 더 이상 파리는 넘보지 말아라…..^_^

* 987년 : 프랑스 왕  ‘위그 까페’
‘일 드 프랑스 Ile de France’의 영주이던 ‘위그 까페 Hugues Capet’가 대영주들의 합의하에 왕으로 추대되어, 진정한 프랑스의 시조라고 볼 수있는 ‘까페왕조 Capetiens가 시작된다.

* 1096년 : 십자군 전쟁
회교도에게 점령당한 성지를 되찾기 위하여 1270년까지 약 200년 동안  8차례나 치루어지는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다.

* 1137년 : 루이 7세의 결혼
분쟁없이 영토를 확장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루이 7세’와 알리에노 Alienor’가 정략 결혼을하면서 ‘아키텐 Aquitaine’ 지방이 프랑스에 합병된다. 도랑치고 가재잡고…. 하지만, 1152년 두 사람이 이혼하고,’알리에노’가 영국왕에게 재혼하면서 여러 세기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영토분쟁이 시작된다. 수신제가 후 치국 평천하!

* 1226년 : 루이 9세 등장
마지막 7-8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루이 9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성자 Sainte’ 칭호를 받는다.

* 1309년 :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교황청
로마 교황청과 대립관계로 돌아서고, ‘클레몽 5세 Clemon V’가 남프랑스의 ‘아비뇽 Avignon에 정착하고 50여년간 프랑스 교회를 다스린다.

* 1346년 : 크레시 전투의 교훈
백년전쟁의 초기 ‘크레시 Crecy’ 전투에서 영웅심과 개인 주의를 내세운 프랑스 군대는 조직력과 전술을 앞세운 영국군에게 완전 격파당한다. 숨어서 장궁으로 쏘아대는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는 용감한(?) 기사들….

* 1347-1352년 : 흑사병
이미 전쟁으로 피페된 프랑스에, 남불의 ‘마흐세이 Marseille’ 항구에서 시작된 페스트가 6년간  만연하면서 전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 1356년 : 포로가 된 쟝 2세
백년전쟁의 와중에 ‘쁘와티에 Poitiers’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쟝 2세 Jean II’느 런던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1360년 7월에나 돌아올 수 있었다.

* 1392년 : 미쳐가는 샤흘르 6세
프랑스 왕 중에서 유일하게 광기로 세상을 떠난 ‘샤흘르 6세 Charles VI’는 1380년부터 왕위에 올라 별 문제없이 지내다가 1392년 ‘만스 Mans’의 숲에서부터 광기가 발병한다.

* 1407년 : 오를레앙 공작의 암살
국왕인 샤흘르 6세의 광기가 알려지면서 권력암투가 심해지는데, 부르고뉴 공작 ‘겁없는 쟝 Jean sans Peur’이 국왕의 아우이기도한 ‘오를레앙 공작 Duc d’Orleans’을 암살하면서 ‘아르마냑 Armagnacs’과 ‘부르고뉴 Bourgogne’ 지방의 내전이 시작된다.

* 1415년 : 아쟁꾸흐 전투의 패배
영국과의 전쟁에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기사도 정신만을 내세워 개인의 공훈을 앞세운 프랑스 군대는 ‘아쟁꾸흐 Azincourt’ 전투에서 10,000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며 대패한다.

* 1431년 : 처형당하는 잔다르크
영국과의 ‘백년 전쟁 당시에 패색이 짙던 ‘샤흘르 7세 Charles VII’의 프랑스군에 힘과 용기를 주었던 ‘동레미 Domremy’의 양치기 소녀 ‘잔다르크 Jeanne d’Arc’가 영국군에 의하여 ‘루앙  Rouen에서 산채로 화형당한다.

* 1453년 : 백년전쟁 종식
잔다르크의 출현으로 1430년부터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는 ‘샤흘르 7세’가 ‘가스티옹 라 바따이 Castillon-la-Bataille’에서 의 승리로 길고긴 전쟁이 끝난다.

* 1477년 : 부르고뉴 공작의 죽음
프랑스 내의 적으로 여겨지던 ‘부르고뉴 Bourgogne’ 지방의 대영주 ‘샤흘르 르 때매해흐 Charles le Temeraire’가 전투중에 사망하면서 드디어 하나의 프랑스가 탄생한다.

* 1491년 : 샤흘르 8세의 결혼식

랑제 안느 드 브르따뉴 샤흘르 8세
브르타뉴 Bretagne’ 지방의 독립을 주장하던 ‘프랑스와 2 Francois II’가 사망하며 남긴 영토의 유일한 상속녀 ‘안느  Anne’와 정략적인 결혼으로 프랑스에 합병시킨다.

* 1494년 : 이탈리아 전쟁 시작
나폴리 왕에게 박해를 받던 교황의 부름을 받고 선대 왕들의 꿈인 이탈리아 정복을위하여 전쟁을 시작하지만, 1496-1497년 사이에 점령지들을 다시 빼앗기면서 이탈리아에 대한 꿈을 버린다. 하지만, 14세기부터 과학과 예술, 지식 분야에서 시작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프랑스 문예 부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 1515년 : 프랑스와 1세의 등장
1미터 90 센티미터의 거인으로 20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프랑스와 1세’는 곧 바로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재개하고, ‘마리냥 Marignan’ 전투에서 승리를 하면서 밀라노를 점령한다.

* 1525년 : 포로가 된 프랑스와 1세
‘샤흘르 깽 Charles Quint’에 반대하여 또 다시 이탈리아 전쟁을 시도한 ‘프랑스와 1세’는 ‘파비 Pavie’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스페인의 ‘마드리드 Madrid’에 볼모로 잡혀있다가,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고 1526년 3월에 프랑스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 1534년 : 캐나다 발견
프랑스 서부 ‘브르따뉴 Bretagne’ 지방의 ‘생 말로 Saint-Malo‘에서 출항한 탐험가  ‘까르띠에 Jacquess Cartier’가 여러번의 탐험에서 ‘뉴질랜드 Terre-Neuve'(캐나다)를 발견한다.

* 1546년 : 루브르 궁전 재건
1200년에 ‘필립 오귀스트 Philippe Auguste’ 왕이 요새로 만들고 ‘샤흘르 5세 Charles V’가 증축한 루브르 궁을 거의 파괴하고,그 자리에 현존하는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으로 재건을 시작한다.

* 1559년 : 앙리 2세의 죽음 
자신의 딸 ‘엘리자벹 Elisabeth’와 스페인의 왕 ‘필립 2세 Pilippe II’의 결혼 축하 파티에서 ‘몽고메리 Montgomery’의 창에 눈을 찔려 사망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  1572년 : ‘바르텔레미’ 대학살 사건 
1562년부터 불붙기 시작한 구교 신교의 종교전쟁으로 온 프랑스가 피폐화 되어가고, 1572년 8월 24일 ‘바르텔레미 성자 Saint-Barthelemy’의 날 밤에 3천명을 학살하는 대 사건이 일어난다.

*  1589년 : 암살당하는 ‘앙리 3세’ 
1574년에 왕위에 오른 후 종교전쟁의 해결책을 찾지 못한 왕은 1588년 5월 파리를 버리고, 1589년 8월 1일 신비주의에 빠진 ‘쟉크 클레멍 Jacques Clement’에 의하여 암살당한다.

*  1593년 개종하는 앙리 4세 
후사가 없던 ‘앙리 3세’로 부터 왕위 후계자로 지명된 ‘앙리 4세 Henri IV’는 구교파들의 불만을 종식시키기위하여 1593년 7월 25일 파리 북쪽의 ‘생 드니 Saint Denis’ 대성당에서 카톨릭으로 개종을 선언한다.

*  1598년 : 종교전쟁의 종식 ‘낭트칙령
오랜 종교전쟁으로 피폐화된 국민들은 평화를 원하게되고, 1598년4월 13일 제정된 ‘낭트칙령 Edit de Nantes’으로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여 전쟁을 끝맺는다.

*  1610년 : 암살당하는 ‘앙리 4세’ 
황폐된 왕국을 재건하고 평화를 정착시킨 왕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구교로부터 끝없는 반대와 암살기도에 시달리던 ‘앙리 4세 Henri IV’는 1610년 5월 14일 파리 한 복판에서 ‘하바이악 Ravaillac’의 칼에 찔려 숨진다.

*  1624년 : ‘리슐리외’ 추기경의 등장 
‘루이 13세 Louis XIII’가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치 Marie de Medicis’와 정부들의 추천을 받아 ‘리슐리외 Richelieu’ 추기경을 중용하기 시작하여, 무려 18년간의 정치를 통하여 프랑스의 국력을 확장시키고, 경제를 안정시킨다.

*  1627-1628년 : 개신교 탄압의 시작 
‘낭트 칙령 Edit de Nante’으로 종교적인 자유를 얻은 개신교를 탄압하기위하여, 개신교도들의 도시로 상징되는 ‘라 호쉘 La Rochelle’을 무력으로 점령한다.

*  1635년 : 아카데미 프랑세즈 창설
‘리쉴리외’ 추기경의 의도로 역사상 최초로 창설되는 아카데미는 프랑스어를 수호하기 위하여 만들었으며, 예술과 문학의 수호자로 국왕이 자리한다.

*  1643년 : 루이 14세와 마자랭 
5살의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은 ‘루이 14세 Louis XIV’를 성년이 되는 1654년까지 어머니 ‘안느 도트리쉬 Anne d’Autriche’와 추기경 ‘마자랭 Mazarin’이 섭정을 하였고, 마자랭은 1661년까지 왕의 신임을 얻으며 절대왕권을 형성시키는데 공헌을한다.

*  1648-1653년 : 프롱드의 난 
마자랭의 절대왕권 추진 정책에 반발하여 귀족과 대영주들이 담합하여 왕권에 도전한 이 사건은 비록 왕실의 승리로 끝나지만, 어린 ‘루이 14세 Louis XIV’의 가슴속에 깊이 남는다. 이때부터 파리의 루브르 궁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길 작정을 하게된다.

*  1661년 : 재무장관 니꼴라 푸케의 몰락 

보 르 비꽁트
루이 13세때부터 재무장관을 지냈고, 섭정기간에도 마자랭의 비호를 받으며 나라의 돈을 착복한 ‘니꼴라 푸케 Nicolas Fouquet’가 자신의 성 보 르 비꽁트 Vaux-le-Vicomte’ 완성하고 왕과 대신들으 초청하여 집들이르 너무 화려하게 치루면서 그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린다.

집권 초기부터 탐탁치 않게 여기던 루이 14세의 명으로 체포되어 전 재산 몰수와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명높은 ‘삐느홀 Pignrol’에서 1680년 사망할때까지 감옥생활을 한다. 집들이 한번에 패가망신한 것으로는 기네스북에 오를수 있지 않을까?

*  1665년 : 재무장관 꼴베흐 시대 
1662년부터 장관에 올라 왕의 신임을 얻은 ‘장 밥티스트 꼴베흐 Jean-Baptiste Colbert’가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어 1683년 사망할때까지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인이었으며, 해군의 중요성을 깨닫고 해군 창설에 이바지한다. 파리 남쪽의 ‘쏘 Sceaux’ 공원이 바로 꼴베흐 재상의 집!!!

*  1679년 : ‘보방’의 요새 건설 
이민족의 칩입에 대비하여 국왕의 명령을 받아 프랑스 전역 약 300 군데에 요새를 설치한 ‘보방 Vauban’의 대역사가 시작된다.

*  1682년 : 베르사유 궁전으로 천도 
웅장함과 ‘태양왕 Roi-Soleil’ ‘루이 14세’의 힘과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베르사이 Versailles’ 궁전으로 궁정을 옮기고, 760 헥타르의 정원과 화려한 궁전, 사치스런 생활은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베르사유

*   1685년 : 다시시작되는 개신교 탄압 
통일된 하나의 종교를 원하던 ‘루이 14세’는 1598년 제정되어 개신교의 종교활동을 인정하던 ‘낭트칙령 Edit de Nantes’ 을 개정하여 개신교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수십만명의 개신교도들이 프랑스를 떠나게된다.

*  1709년 : 나라를 뒤흔든 대 흉년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반복되는 흉년으로 나라의 사정이 악화되고, 기상 이변으로 대 흉년이 들어 굶어죽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 시기이다. 그 중에서도 1709년의 흉년이 가장 혹독하였지만, 이 것을 고비로 서서히 안정세로 돌아선다.

*  1715년 : 루이 14세 사망과 루이 15세
72년간의 가장 긴 통치를 통하여 강력한 프랑스를 만든 태양왕 ‘루이 14세’가 1715년 9월 1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조용히 사망하고, 증손자인 ‘루이 15세’가 5살의 나이로 왕좌에 오른다. 루이 14세의 조카인 ‘필립 오를레앙 Philippe Orleans’이 섭정을 맡는다.

*  1745년 : 정계를 주무르는 ‘퐁파두르’ 
정사에 별 관심이 없던 ‘루이 15세’는 모든 업무를 대신들에게 맡기고 사치와 방탕한 생활로 많은 정부를 두었는데, 그 중에서도 ‘퐁파두르 Pompadour‘ 부인은 1745-1764년 사이에 막강한 신임을 업고 정치에 관여하여 왕실 체면을 크게 손상시킨다.

하지만, 오히려 예술 방면을 육성하였으며 ‘로코코’ 양식이 베르사유 궁전의 ‘그랑 트리아농’에서 시작된 것이 ‘퐁파두르’ 부인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샹파뉴 지방‘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에 떼 샹동 Moet & Chandon‘ 샴페인을 애용하여, ‘꽁피에뉴 성 Compigne‘에서 파티를 열 때마다, 샴페인을 주문하여 궁중에 소개시킨 장본인이기도….

*   1774년 : 루이 16세 등극 

퐁파두르 부인
20세의 나이에 조부 루이 15세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다. 젊은 왕의 선정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극심한 경제적 궁핍과 실추된 권위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  1777년 : 라 파이예트 장군과 미국 독립전쟁 
1776년 7월 4일, 13개 주가 영국에게 독립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자유의 바람 Vent de Liberté’에 깊은 감명을 받은 ‘라 파리예트 La Fayette’ 장군이 미국 독립 전쟁에 참여한다.

*  1789 : 삼부회의와 프랑스 혁명 
재정 고갈과 경제적 사회적 요인들이 ‘루이 14세’때에 없애버린 ‘삼부회의 Etats Généraux’ (성직자, 귀족, 평민 대표들이 모여서 국가적인 안건을 의논하는 제도)를 ‘루이 16세’로 하여금 다시 열도록 만들었고, 평민들의 대표로 참석하였던 ‘부르주와 Bourgeois’들이 평민들의 어려움을 왕에게 고하지만, 오히려 문전박대를 받으며 쫓겨난 것이 ‘프랑스 대혁명으로 연결된다.

*  1789년 : 바스티유 감옥 함락
1880년부터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로 제정되어 매년 기념행사를 행하는 7월 14일은 국가원수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던 ‘넥케 Necker’ 총리가 전격 경질되고, 군부대가 파리로 진격한다는 소식에 불안해하던 파리 시민들이 절대왕권의 상징물인 ‘바스티유 Bastille’ 감옥 지하에 화약과 무기를 쟁취하여 드디어 무장이 되던 날이다.

*  1792년 : 발미의 승리 
연합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패배를 거듭하던 프랑스 군대가 1792년 9월 20일 ‘발미Valmy’에서 승리는 풍전등화격인 프랑스 공화국을 살리었고, 이 승리를 기점으로 승전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    1793년 : 루이 16세의 처형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아서 혁명세력을 제거할려는 시도가 탄로나고, 오스트리아로 망명가다가 체포되어 1월 21일 ‘꽁꼬흐드 광장에서 ‘단두대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진다. 마지막 순간에는 군주답게 의연한 모습으로 처형에 임하였다고…..

*  1793년 : 암살당하는 마라 
프랑스 대혁명의 중심 인물인 “마라 Marat”는 노르망디 출신의 왕당파 당원인 “샤흘롯 꼬흐대 Charlotte Corday”에 의하여, 자신의 목욕탕 욕조에서 암살당한다.

*  1794년 : 공포정치의 로베스삐에흐 
1793년 권력을 장악한 산악파는 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상황을 바로잡기위하여 공포를 조장하기 시작하면서, 수만명을 처형하며 “로베스삐에흐 Robespierre”가 독재자로 자리를 잡는다.

*    1796년 : 나폴레옹의 승리  오스트리아군을 막기위하여 이탈리아에 파견된 ‘나폴레옹장군이 1796년 11월 17일 “아흐꼴 다리 Pont d’Arcole” 전투에서 직접 진두지휘하여 대승을 거두면서 국민들의 영웅으로 자리잡는다.

*  1798년 : 이집트 원정 피라미드 전투 
영국군을 막기위하여 이집트로 파견된 나폴레옹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의 영웅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 1804년 :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등극

12월 4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황제즉위식 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