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acre de l`empereur – Louis David
나폴레옹 1세 대관식 장면을 그리기 보다는, 직후에 가진 황비 대관식 장면을 그린 것인데, 기록에 의하면 12월 2일 영하 2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아침 6시부터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단다. 정오에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 1세 대관식 장면을 기념하기 위하여 4점의 거대한 그림을 주문 제작하게 되는데, 현재 ‘베르사유 궁전‘의 ‘대관식의 방 Salle du Sacre’에 전시된 < 독수리기 수여식 La Distribution des aigles >과 이 작품 2 점만이 완성되었다. 알고가자,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 대관식!!!
본래는 이 작품도 ‘대관식의 방’에 걸려있다가 1889년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 오고, 그 자리에는 ‘다비드’가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그린 두 번째의 ‘대관식’ 작품이 걸려 있다 ?????
또한, 로마에서 거의 강제로 호송된 ‘비오 7세 Pie VII’ 교황은 9시 30분 경에 도착을 하였지만, ‘나폴레옹’과 ‘조세핀 Joséphine’은 군부대의 축포에 맞추어 정오에 입장을 하였다니….. 신권을 우습게 만든 꼴!!!
교황의 축성을 뒤로하고, ‘조세핀’에게 직접 황비 관을 씌워주는 ‘나폴레옹’의 거만함은 교황의 권위를 무색케하는 오만방자함이란….’비오 7세’는 우리나라의 김 대건 신부가 조선에도 신부를 파견하여 달라고 라틴어로 쓴 편지를 보내었던 교황!!! 편지는 파리의 ‘외방 선교회’에 전시되고 있다.
‘조세핀’의 머리 위쪽에 인자하게 앉아있는 중년부인은 ‘나폴레옹’의 어머니로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다비드’가 그려 넣어 주었단다. 황제가 원하니까…..
‘조세핀’ 뒤로 붉은색의 옷을 입고 있는 어린이는 1852-1870년 ‘나폴레옹 3세’로 제 2제정을 여는데, 족보를 따지자면 나폴레옹의 조카도 되고 손자도 된다….????? 손잡고 있는 여인은 ‘조세핀’의 친딸, 즉 나폴레옹의 수양딸이면서, 나폴레옹의 동생과 결혼하여 제수가 되기도 하단다. 부인쪽으로는 손자, 동생쪽으로는 조카가 되는셈…..
그림 왼쪽 하단에는, 유럽 최초의 대제인 ‘샤를르 마뉴 Charlemagne’를 상징하는 3가지 성물 ; ‘왕관’과 ‘정의의 손’과 ‘검’이 그려져있는데, 역사 학자들에 의하면, ‘샤를르 마뉴 Charlemagne’를 상징하는 세가지 물건은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기에 없어졌고, 여기에 보이는 것들은 임시로 급조 한 것이며 ‘즐거운 검’은 ‘샤흘르 5세 Charles V’의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의 가족은 5남 3녀인데, 말썽꾸러기 막내 남동생 ‘제롬 Jerom’은 이 나폴레옹 1세 대관식 그림속에 없고, 150 여명 가량의 사람들이 화폭에 담겨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대관식 장면은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이와 똑 같은 그림이 ‘나폴레옹의 방’에 있는데, 화가 ‘다비드’가 1807년에 다시 그리기 시작하여, 1822년에 ‘브뤼셀 Bruxelles’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완성한 작품으로, 이 두 작품이 완전히 똑같지만 유일하게 단 한가지만 틀린 부분이 있는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