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과 중세 봉건시대

백년전쟁과 중세 봉건시대

La guèrre de Cent  Ans 

종교가 세상을 다스리며, 문화의 암흑 시대로 알려졌던 중세 봉건시대. 하지만, 나름대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시기….. 9-12세기 중세에는 왕권이 축소되고,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조직이 발전된다. 알고가자, 중세 봉건시대!!!

1. 중세 봉건시대 Féodalité

영토를 소유한 영주들은 주권자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재판권조세권을 갖고, 영지의 방어를 위하여 사조직을 만들며, 기사들에게 절대적인 충성과 군사적, 재정적 도움을 맹세하도록 요구한다. 그 댓가로 영주는 그들에게 땅과 봉토를 부여하여 지방 자치권을 형성하고, 소 영주는 대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세금을 바침으로서 계급 사회의 틀이 완성된 것이라고…..

987년위그까페 Hugues Capet’가 왕으로 추대되어 ‘까페 왕조 Capetiens’가 성립되고, 전형적인 중세 봉건제도가 정립되었으며, ‘골’ 부족과 ‘프랑크’ 부족간의 동화가 가속화 된다. 1328년 Philippe 6세에 의하여 ‘까페 왕조 Capet’의 방계인 ‘발르와 왕조 Valois’가 수립되고, 프랑스 왕권계승을 주장하는 영국의 침입으로 1337-1453년에 걸친 백년전쟁이 시작된다. 사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왕권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

위그 까빼또한 1348-1360년 사이에 남불의 마르세이유 항구에서 시작된 ‘흑사병(페스트)’으로 인구가 격감하고, 15세기말부터 이탈리아로부터 ‘르네상스’ 문화가 도입되어 16세기에 ‘르와르 강 Loire 유역을 중심으로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1560-1598 년에 걸쳐 신교도와 구교도간의 종교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된다.

2. 교회의 영향 Influence de l`eglise

회교도들의 손에 넘어간 성스러운 땅을 되찾는다는 구실 하에 영주들과 수도승 병사들은 많은 이익의 근원인 식민지 중앙-아시아에 교회의 이름으로 11세기와 13세기에 십자군을 파견한다. 특히, 프랑스의 영주즐이 주축을 이루어, 왕권 강화와 교황권 강화에 힘을 실어준다.

3. 문화적인 생활 La vie culturelle

중세 시대는 오랫동안 야만의 시기로 여겨지고, 암흑의 시대로 비유되었지만 새로이 중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해석을 하고 있다. 전쟁의 무용담과 기사들의 권위와 의리를 노래하는 서사시가 제작되고, 평민 문학이 꽃을 피운다.

4. 중세 봉건시대 경제적인 변화들 Les transformations économiques

12세기와 13세기에는 상업이 발달한다. 상인들과 장인들은 ‘길드’를 조직하고, 평민 출신으로 교육을 받고, 재산을 모은 ‘부르주아 Bourgeois’(부르그(읍)에 살던 사람)들은 새로운 신분으로 상승을 꿈꾸며, 스스로 도시의 행정을 관리할 수 있게 허락해 줄 특권들을 영주로부터 얻어내려 했다.

5. 백년전쟁 La guèrre de Cent  Ans

프랑스는 1337-1453년 사이에 매우 힘든 고비를 맞는다. 전염병 페스트가 국민의 절반을 죽이고, 기근으로 국민들의 생활은 궁핍을 면할 수 없었단다. 한편, 북부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의 영주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영국의 왕이 되는데…프랑스 왕은 신하의 예를 갖추라고 요구하고, 영국 왕조는 프랑스 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잦은 분쟁이 일어난다.

jeanne d'arc 잔다르크프랑스의 왕 ‘샤흘르 4세’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사망하면서, 왕의 누이와 결혼한 영국의 왕 ‘애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영국 왕의 지배를 반대하여, ‘출가한 여자는 왕권을 상속할 수 없다’라는 법을 급히 만들고, 새로운 왕을 선출하면서 영국과의 백년전쟁이 시작된다. 각 기사들의 영웅심을 내세운 프랑스 군과, 장궁 및 석궁으로 무장된 조직적인 영국군은 전쟁이라기 보다 살육전에 가까웠다고……

‘동레미 Domremy’에서 태어난 양치기 소녀 ‘쟌 다르크 Jeanne d’Arc’는 프랑스를 구하라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성모 마리아의 음성을 듣고, 프랑스 북부를 대 부분 빼앗기고 ‘쉬농 Chinon’ 성에 피신하여 있던 ‘샤를르 7세’를 도와 프랑스의 영토를 되찾는데 공헌한다.

1429년 5월 ‘오를레앙 Orlean’에서 영국군을 축출하고 ‘랭스 Reims 대성당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까지도 주관하였지만, 1430년 ‘쟌 다르크’는 파리 북쪽의 ‘꽁피에뉴 성 Compiegne에서 체포되어 요술을 부린 ‘마녀’라는 판정을 받고 ‘루앙 Ruen 시의 시장 터에서 1431년 19세의 나이로 화형을 당한다. 화형 당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

유익한 정보인가요?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알고가자

About 알고가자

아는것 만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