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인상주의

Impressionnisme 

색채 묘사의 혁명을 일으킨 ‘인상주의’. 1860년경에서 1890년대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업했던 유파를 말한다. 형태 묘사의 혁명이 그리스 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면, ‘인상주의’는 색채 묘사의 혁명을 일으킨 셈!!!!!

‘끌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바질 Jean-Frédéric Bazille’ (1841-70), ‘시슬리 Alfred Sisley’ (1839-99) 등은 1863년 ‘낙선전 Salon des Refusés’에서 전시된 ‘마네 Eduard Manet’ (1832-1883)의 <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에 고무되어 ‘마네’의 ‘반 아카데믹’한 화풍을 따른다.

그들은 관전인 ‘살롱’에서 자신들의 작품이 거절되자, 뜻을 모아 1874년 ‘나다르 Nadar’의 사진관에서 자신들만의 그룹 전을 열었고, 이후 그들은 1886년까지 총 7차례의 그룹 전을 열고,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화법을 전개하였다.

“인상주의”란 명칭은 1874년 신문기자였던 ‘루이 르흐와 Louis Leroy’가 ‘모네 Claude Monet’의 < 해돋이-인상 >을 가리켜 “본질”보다는 “인상”을 그렸다고 쓴 야유 섞인 비평에서 비롯되었단다.

‘인상주의’가 등장한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도시화 및 교통 수단의 발달이 가속화되고, 자연과학의 발달로 실증적 정신과 진보적 미래 관이 팽배하였단다. ‘프랑스 혁명(1789)과 함께 부상한 시민계급은 현실을 중시하였고, 이러한 시대 정신은 ‘사실주의로 발현되어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태도를 낳았다.

‘인상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사실주의자’들의 태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연은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이었으며, 변화의 원인은 태양 광선의 작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상주의자’들은 태양 광선의 작용에 따라 자연 대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순간성을 포착하고자 야외에서 주로 작업하였다.

사물의 고유의 색이란 개념도 본래 존재하지 않으며, 색채도 날씨나 빛의 반사 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야외에서 활동하는 인물들과 풍경은 빛의 반짝임이 잘 드러나는 소재로서 ‘인상주의자’들에게 선호되었다. 이러한 빛의 반짝이는 성질을 표현하고자 ‘인상주의자’들은 팔레트 위에서 색을 혼합하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화면에 직접 순색을 병치시켜 발랐다.

짧은 붓 터치로 물결치듯 발라진 조그만 색 점들은 캔버스가 아니라 망막 위에서 밝은 빛으로 혼합되었다. 이러한 색채 분할 기법은 ‘들라크르와 Delacroix’와 ‘쉐브뤨 Chevreal’의 색채 이론, 그리고 ‘콘스터블’과 ‘터너’의 생생한 색채가 돋보이는 풍경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 이라고….

대상을 빛의 반사로 파악하면서 빠른 붓질이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기존의 원근법, 명암법, 윤곽선이 파괴되었다. 따라서 ‘인상주의’ 화면은 대상의 견고한 형태를 잃고 평면적으로 되어갔다.

그림의 구성에 있어서도 균형을 꾀한 인위적인 배치가 사라지고, 사물을 우연하게 배치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순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풍경과 인물이 한 쪽에 치우쳐 있거나, 화면 밖으로 그 일부가 잘려져 나가는 구도를 스냅 사진에서 빌어오기도 했다. 당시 발명된 사진기는, 사실적 재현이라는 회화의 고유 영역을 빼앗았으며, 오히려 회화는 회화 본연의 특색(화면의 질감, 평면성, 색채 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인상주의’의 평면적인 화면에 영향을 끼친 그 밖의 요인으로는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를 들 수 있다. ‘우키요에’의 강렬한 원색, 평면성, 대담한 구도는 서양 전통 화법을 파격하는 혁신 성을 가지고 있었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상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마네’를 잇는 ‘인상파’의 주요 화가로는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1903), ‘드가’, ‘시슬레’, ‘모네’, ‘모리소’, ‘르누아르’ 등이 있다. ‘마네’는 이전까지 회화의 특징인 상징적이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 생활에서 겪는 시각적인 경험을 다루었다. ‘모네’는 특히 대기 변화에 따라 대상이 미묘하게 달라져 보이는 사실에 관심을 두었고, ‘드가’는 색채 분할 기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자연스럽고 재빨리 잡은 구도로 발레 하는 여자와 경마 장면을 주로 그렸다.

‘르누아르’는 인물과 꽃에 비치는 빛의 효과를 즐겨 표현하였고…..

1886년을 기점으로 ‘인상주의’는 막을 내렸지만, 이후 ‘인상주의’가 20세기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인상주의’는 전통적인 윤곽선, 원근법, 명암법에서 탈피하였고, 고유색을 부정하여 자율적인 색채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상주의’가 획득한 회화의 평면성은 회화 자체의 순수성 및 자율성을 보장하였다. 자연을 묘사하되, 각자의 인상에 따라 표현하는 화가의 주관적인 작품 세계는 화가의 자율성을 고취시켰다. ‘인상주의’가 열어 놓은 이 모든 가능성들은 훗날 ‘표현주의’, ‘입체주의’, ‘추상 표현주의’에서 완전하게 실현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