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프랑스 동영상
검투사 (그리스)
Guerrier combatant B.C 1 세기 작품인 이 조각은 17세기 초부터 유명해진것으로, 이 작품의 자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전사의 왼팔 위의 밴드에 떨어져 있던 방패를 다시 대어봄으로써 밝혀졌단다. 싸우는 검투사!!! 시선의 방향으로 보아, 말을 탄 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왼손으로 보호하면서, 오른손으로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싸우는 검투사 오른팔은 본래의 것이 아니고 복구한 것이지만, 마치 원래의 것처럼 자연스럽다.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그냥 스쳐가는 작품들이 많지만, 이 싸우는 검투사 작품은 유나히 눈에 뜨이는 작품!!! 이 작품의 뒷부분에 있는 나무 축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 ‘에페스’의 시민이자 ‘도시테오스’의 아들, ‘아가시아스’가 만들었다.> 자유로이 주제를 선정한 조각가의 본래 싸인 인지 또는 청동 작품을 대리석으로 모방하면서 글을 집어 넣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싸우는 검투사 작품에서 전투사의 길게 뻗은 실루엣은 기원전 4세기 조각가 ‘리시프 Lyssippe’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된 전통을 계승한 것이지만, 고전주의 초기에 몇몇 예술가들이 심취했던 해부학적인 기호들이 결합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문구의 서체로 미루어 제작 연대를 4세기경이 아닌 기원전 1세기로 추정한다고……
겐타우로스 (그리스)
Métope du Parthénon 이 부조는 그리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Athéna’에게 봉헌하기 위해 ‘아크로폴리스 Acropolis’에 B.C 447-440년에 세워진 파르테논 Parthénon 신전의 ‘도리아식’ 프리즈에 있던 것!! 이 작품은 파르테논 신전 남쪽 면의 열 번째 ‘메토프’에 해당하는데, 반인반수의 ‘겐타우로스 Centauromachie’를 테마로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수의 괴물, ‘겐타우로스’가 여성을 괴롭히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단다. 이누~ㅁ, 손(발)이 어디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로마관으로 가는 쪽에 위치한 부조로,특이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작품이다. 작가는 긴장된 느낌을 주며 떨어지는 여인의 옷의 주름과 말의 유연한 곡선들을 조화롭게 결합시키고 있으며, 동물의 가죽 밑에 있는 근육과 혈관들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Parthénon 파르테논 신전은 ‘페리클레스 Périclès’가 ‘아테네’를 통치한 15년 동안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당대 최고의 위대한 조각가 ‘피디아스 Phidias’의 감독하에 공사가 진행되었단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고전 시기의 걸작들이라고…. 너무 유명해서 열강들이 뜯어갈 수 있는건 모두 다 가져 가버렸다나???
공주의 두상 (이집트)
Tête de princesse 공주의 두상 작품은 B.C 1353~1337 년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아메노피스 4세 Aménophis IV’와 ‘네페르티티 Néfertiti’ 부부는 6명의 딸을 두었는데, <공주의 두상>에서 아직도 통통한 볼을 하고 있는 이 10대 소녀는 당시의 다른 아이들과 같이 길고 풍성하게 땋은 머리를 오른쪽 어깨에 늘어뜨리고 있다. 특히 목, 입, 턱 등에 나타나 있는 ‘아마르니아 Amarnien’ 스타일과 사실주의의 조화로운 결합은 이 왕조 말기에 보여지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의 특징이기도 하단다. 불행히도 이들 중 하나는 죽었고, 이들 부부의 자녀 번성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는데, 이는 당시의 공식적인 종교 이미지들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이들 왕가를 표현해 놓은 것들에서 알 수 있다고…..
그리스 문화
Culture de la Grèce 그리스 미술은 아테네 지역을 중심으로 기원전 8세기경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기 전인 2세기경까지 번창한 지중해 중심 미술을 뜻한다. 그리스 문명의 뿌리가 된 고대 문명으로는 그리스 본토의 ‘크레타 Crète’ 문명과 ‘미케네 Mycénien’ 문명, 그리고 5000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이집트 문명‘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을 고대 그리스 미술의 선조로 보는 이유는, 이들 문화가 그리스 미술의 시작인 기하학적 양식기의 특징을 선험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또한 이집트 미술의 경우 그리스 건축, 조각, 회화 양식에 기틀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였단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철학과 수학의 발달을 중심으로 문학, 음악, 연극, 건축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서양 문명사에 눈부신 업적을 이룩하였고, 현재의 유럽 문화는 그 영향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예술을 보통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제 1단계: 기하학적 양식 ( 기원전 10세기 – 기원전 6세기 중엽) 제 2단계: 아르카익 시대 (기원전 700년 – 기원전 480년) 이집트 예술의 영향으로 엄격하며 좌우대칭 및 부동자세를 취한다. 제 3단계: 고전양식 시대 (기원전 448년 -기원전 432년) 철학자 프라톤의 본질적인 진리를 상징하는 순수관념의 세계 ‘이데아’를 중시하던 영향으로,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며 완전한 ‘이상미’를 찾는 그리스 예술의 진수가 시작된다. 황금비례!!! 몸의 무게중심을 한쪽 다리에 두어, 무게가 실리지 않은 무릎이 굽어지면서 자연스럽게 ‘S’ 자 형태의 유연한 포즈를 취하게 되는 ‘콘트라포스토 Contrapposto’ 기법을 사용하여, 정적인 포즈에서 […]
기병의 두상 (그리스)
Tête de Cavalier 이 고대의 대리석 조각상은 매우 독특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현재는 아무런 색깔도 보이지 않지만, 여러 가지 색으로 채색되었던 흔적이 있고, 두발의 구성방식이나 여러 겹의 레이스로 된 머리 장식등이 동시대(B.C 550)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이 기병의 두상이 ‘루브르 박물관‘에 수집되어 들어왔을 때 아무도 시대와 배경을 구분할 수 없었다고…. 이 조각상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Musée de l’Acropole’에 보관되어 있는 기사의 ‘토르소 Torse’ (두상과 팔 다리가 없는 조각상)에 맞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미스터리가 풀리게 된단다. (기병의 몸통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주물로 모방한 것) 아마도 주인공은 승리자인 기사로, 관중의 환호에 답례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옆으로 돌린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날개달린 소 (메소포타미아)
Taureaux ailés 날개달린 황소 조각 다리 사이에는 <’우라스투 Ourastou’를 점령하였고, ‘사마리 Samarie’를 굴복시켰으며, ‘가자 Gaza’의 왕 ‘하농 Hanon’을 생포하였던 앗시리아의 왕, 온 세상의 왕, 강력한 왕, 위대한 왕인 ‘사르공 왕’의 궁전>이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 그리고 이 글귀에 이어 ‘사르공 왕’이 ‘두르 샤루킨 Dour-Sharroukin’, 즉 강한 ‘사르공’으로 불렸던 그의 도시를 건설한 이야기가 씌어 있다. ‘사르공 2세’는 ‘니니브 Ninive’ 근처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그 곳에 자신의 궁전을 건축했으며, 이 궁전은 1843년 탐험가 ‘폴 에밀 보타 Paul-Emile Botta’에 의해 발굴되는데, 이 궁전의 문은 인간의 머리 형상을 한 여러 쌍의 날개달린 황소들이 지키고 있었다. ‘라마수 Lamassou’라고 불렸던 이 거대한 동물들은 세상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동시에 궁전 수호자의 역할로 B.C 721-705 년 경에 제작된 것이란다. 알고가자, 날개달린 황소!!! 날개달린 황소 조각의 원형은 ‘시카고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이는 동일 유형 중 유일한 보존물 이라고 한다. 거대한 날개달린 황소들이 죽 늘어서 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다리를 다섯 개로 만든 것은 왜일까???? 아마도, 정면에서 볼 때 보이는 다리 두 개와, 측면에서 볼 때 보여야만 하는 다리 4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방법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니케 승리의 여신 상 (그리스)
Victoire de Samothrace 군함의 뱃머리에 비상하듯이 서 있는 여신상은 승리를 상징하는 뜻으로 힘찬 모습이다. 막 비상하려는 듯한 움직임과는 다르게, 발견된 손이나 오른쪽 가슴이 치켜 올라간 형태로 보아, 머리를 뒤로 돌린 채 오른팔을 들어서, 어떤 사건을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제 막 땅에 내려온 여신을 조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연 어떤 사건일까? 승리의 여신!!! 펼친 날개와 조각 스타일로 보아서는, 기원전 180-160년 사이에 장식된 ‘페르감므 Pergame’ 신전의 벽감 같은 곳에 안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만약, 뱃 머리의 석회암이 십자군 기사들의 섬 ‘로데스 Rhodes’ 에서 왔다면, 기원전 2세기경에 해양 전투에서 ‘로데스’ 인들이 거둔 승리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여신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스의 조각으로서 제작 연도가 밝혀진 특이한 경우로, ‘밀로의 비너스’ 보다도 100년이 앞선 BC 190년경에 조각되었으며 아주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묘사 되었다. 에게 해에 떠 있는 ‘사모트라스 섬’의 ‘까비흐 Cabires’ 신전에서 여러 조각으로 발견 된 것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조합한다. 머리와 팔은 분실 되었지만, 1850년에 오른 손목만이 발견되어 옆의 유리관에 보관되어 있다. 여신의 오른쪽 날개도 발견 되지 않았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왼쪽 날개를 그대로 복제하여 부착하였으며, 군함과 여신의 발 사이에 있는 돌덩어리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첨가하였단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인간을 가장 아름답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신에게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 여겼기에 해부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완벽한 여인의 몸을 표현하였고, 생동감과 움직임을 주었단다. ‘나이키’의 로고가 바로 여신의 날개에서 모티브를 땄으며, ‘롤스로이스’ 자동차 로고도 여신상을 […]
독수리 향로 (이집트)
Encensoir à l`aigle 아랍 세계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이집트의 ‘콥트 Copte’ 예술은 수도원에서만 강하게 남아 있었다고 알려졌었는데, 9세기경에 만들어진 이 독수리 향로 조각은 이집트 ‘콥트 양식’이 정복자들인 아랍인들의 예술과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러한 향로를 통해 아랍 전성기까지 ‘콥트’ 청동 주조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고가자, 콥트양식의 독수리 향로!!! 종교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독수리 향로 조각은 토끼 문양으로 장식된 세 다리와 뱀을 잡아채는 독수리로 장식된 돔 양식의 덮개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쐐기로 고정된 향로의 몸체와 덮개는 우아한 형태로 구멍이 뚫린 덩굴풀 무늬 장식으로 되어있다. 산토끼 또는 집토끼의 문양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등잔, 문 손잡이, 컵, 옷감 등등 무수히 많은 유물들에서 보여지는 소재이다. 토끼가 예수를 상징하는지 인간을 상징하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뱀을 짓이기는 독수리는 악마에게서 승리하는 예수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디두프리 왕의 두상 (이집트)
Tête du roi Didoufri – B.C 2560 추청 ‘케옵스 Khéops’의 계승자인 디두프리 왕의 두상 조각은 ‘세파 Sépa’와 ‘네자 Nésa’의 얼굴과 비교해 볼 때 새로운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돌출된 턱뼈나 광대뼈 등 사실적인 윤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상적인 초상화의 구도와 조각의 공간적 균형이 조화를 이루어, 이 작품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있다. 결정 사암에 조각되어 아직까지 붉은 색이 남아 있는 목덜미의 시작 부분으로 보아 이 두상이 ‘스핑크스’에 ‘파라오’의 얼굴로 붙어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도 있단다. 디두프리 왕의 두상 조각은 ‘기자 Gisa’ 북부 ‘아부 로쉬 Abou Roach’에 위치한 왕의 피라미드 가까이에 있는 장례용 신전 근처의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고……
디오니소스 (이집트)
Dionysos 4 세기경 작품으로, 포도나무 덩굴이 사방에 뻗어 있는 웅덩이에서 ‘디오니소스’의 형상이 드러나고 있다. 모든 이교도 신들 사이에서도 디오니소스 신은 특히 이집트에서 숭배되었으며, 포도주의 신 ‘오지리스 Osiris’와 동일시되어 ‘프톨레미 왕조 Ptolémaïques’ 시대에는 더욱 특별한 대우를 받았단다. 작품에서 보이듯, 비율이 맞지 않는 신의 육체는 이미 사실적인 세부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개성이 결여된 둥근 얼굴, 테두리가 지어져 있는 구멍 뚫린 눈, 구슬 모양으로 표현된 모발 등은 정신 세계와 새로운 비전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이러한 새로운 표현 방식은 4세기에 나타나, 그리스와 로마 예술의 관습적인 경향에 과감히 등을 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단다.
루이의 세례반 (이슬람)
Baptistère de Saint Louis 일찍이 프랑스 왕실의 소장품이 되어, 19세기에는 주로 왕실 왕자들의 세례식 때 사용되었다는 이 세숫대야(?)는 본래, 이슬람 ‘마믈루크 mamalouke’ 왕조(1250-1517)의 대표적인 작품이란다. ‘모하메드 이븐 제인 Mohammed Ibn Zayn’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이 대형 놋대야의 표면은 군주들이 그들의 수행원들과 사냥하는 장면과 전투 장면과 생선, 뱀장어, 게, 개구리 그리고 악어들이 서로 뒤엉킨 문양들은 재질과 기법, 그리고 문양이 조화를 이룬 회교 예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간주된단다. 여유가 있다면, ‘리슐리외 관’에 이슬람 문화도 꼭 들려보시길…..
메소포타미아 문명
Culture de la Mésopotamie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룬 최초의 사람들은 ‘수메르인 Sumériens’이었다. 이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티그리스 강 Tigre’과 ‘유프라테스 강 Euphrate’이 합류하는 지역에 수많은 도시를 건설한다. 알고가자, 메소포타미아 문명!!! 또한, 인류 최초로 문자를 사용했으며, 공통의 종교, 수학, 법률 그리고 건축법을 발달시켰다. ‘수메르인’들은 왕이 죽으면 저승에서도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도록, 가족과 노예들은 물론 왕궁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함께 묻었기 때문에, 부장품을 통해서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Mésopotamie 예술은 농업 및 자연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던 ‘이집트 예술‘ 보다 더 엄격한 규율에 매여 있었고, 변화나 신선함이 적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가 상업과 수공업, 화폐와 신용 제도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 함무라비 법전 Code des lois de Hammourabi>을 보면 ‘이집트’에 비해 금융 제도가 월등히 발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노예를 치료하다가 과실 치사일 경우에는 주인에게 얼마의 돈을 지불하라고 되어있으니까…. ^_^ ‘바빌로니아 Babylone’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역으로서 신 바빌로니아란 이름으로 기원전 559년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메소포타미아 전역과 ‘이집트’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이집트’보다 전제 정치가 엄격한 형태로 행해져, 예술의 경우에도 생산량이 적고 비개인적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계의 중심’이라 불렸던 이 고대 도시는 <공중 정원>과 <바벨탑>으로 대표되는 고대 세계의 미술과 건축물의 요람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흙으로 빚어 햇볕에 말린 벽돌을 사용하여 신전 중심의 정교한 도시를 만들었는데, 이 건물들 내부에는 신전, 상점, 일터, 거주지가 […]
무덤을 지키는 투이 (이집트)
Touy 살아 생전의 모습을 정교히 조각한 투이는 어떤 염원이 있는 것일까? 조각상의 받침대에는 ‘투이 Touy’가 그녀의 영혼이 무덤으로 들어가 ‘오지리스’ 곁에서 행복하게 지내며, 그녀가 좋아하는 물을 마실 수 있고, 부드러운 북쪽 바람을 들이마실 수 있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오지리스 신 Osiris’과 무덤의 모든 신들에게 바치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단다. 높이 33 센티미터의 이 작은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는 여인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가발의 땋은 머리를 섬세하게 새겨 넣었다. 너무도 생생히…. 얇은 옷을 통하여 드러나는 육체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조각상의 표면을 다루는 완벽한 기술을 추구하는 ‘이집트 문명‘의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집트 제 18왕조 ‘아메노피스 Aménophis 3세’의 화려한 전성기이던 B.C 1400~1350 경 귀부인의 무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밀로의 비너스 (그리스)
Vénus de Milo 1820년 4월 8일 ‘큐크라데스 제도 Kuklades’의 ‘멜로스 섬 île de Mélos’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을 마침 이 섬에 정박중이던 프라스 해군이 입수한다. 다음 해인 1821년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에 주재하던 프랑스 대사 ‘히비에흐 Rivière’ 후작을 통하여,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의 동생이며,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루이 18세’에게 상납하는데…. 물건의 예술성을 직감해서인지?? 예술적 감각이 없어서인지?? 혼자보기엔 너무 아까워서인지?? 일반인들이 볼 수 있도록 1822년 ‘루브르 박물관‘에 왕이 기증한다. 이 작품은 기원전 4세기경의 뛰어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 Praxitèles’의 스타일을 따르고는 있으나, ‘헬레니즘‘ 양식의 특징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헬레니즘’ 시기에는 인간의 육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신에게 충성한다고 믿었기에, 고전적이고 관능적인 육감미를 완벽하게 묘사하였으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비너스)는 그리스 고전기 이래 꾸준하게 조상의 주제가 되어왔단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정신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작품!!!!! 움직임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콘트라포스토 Contrapposto’ 포즈를 취하여 유연하게 ‘S’자 형태로 비스듬히 비튼 자세의 8등신 인체 비례와 두터운 어깨와 팔뚝, 펑퍼짐한 둔부는 당시 사람들의 미의 기준인 ‘유연미’와 ‘황금비례’를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많은 여성 관광객들이 비너스의 몸매와 자신을 비교하며 위안을 삼는다. ^_^ 비너스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조각하여 합체한 것으로, 뒷 쪽에서 보면, 허리 아래의 옷 주름에 금이 난 것을 볼 수 있다. 오른쪽 팔은 아마도 고대에 복원된 것으로 추정하며, 왼쪽 어깨 부분의 구멍으로 미루어 본래 있던 팔이 분실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비너스 아프로디테 두상 (그리스)
Tête d’Aphrodite 섬세한 여성미를 드러내는 이 아프로디테 두상은 기원전 4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단다. 부드럽고 육감적인 작품의 우수성으로 보아, 로마 시대에 그리스 조각을 모방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 마지막 시기인 ‘헬레니즘‘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크니드 Cnide’의 그리스인들이 세운 신전의 한가운데에 당대 최고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 Praxitèle’가 제작한 아프로디테 (비너스) 석상의 파편이란다. 근엄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운 얼굴의 아프로디테 두상은 땋은 머리를 띠처럼 머리 위로 올리고, 이마를 삼각형으로 드러내는 이 모습은 후대에 많은 조각상에서 모방한단다. 즉, 이 작품이 진짜 진짜 참 원조!!!!!! 아프로디테 두상!!!
수메르 왕 (메소포타미아)
Roi-prêtre sumérien 초기 도시 국가에서 수메르의 왕들은 제사장의 역할도 겸하였는데, 이 조각상의 머리띠와 수염을 통하여, 이 인물이 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는 왕이면서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고가자, 수메르 왕!!! B.C 3300 년경에 제대로 된 행정을 갖춘 초기 국가형태의 ‘수메르 Sumer’ 수도 ‘우룩 Ourouk’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가 탄생한단다. 이 시기는 물병에 그림을 그려 넣던 고전예술의 형태를 포기하고, 환조나 저부조 등 동양 예술의 전형적인 형태를 태동시킨 문화적 혁명이 이루어졌던 시기이라고…. 아무리봐도 제주도 돌 하루방과 비슷…. ^_^
아메노피스 4세 (이집트)
Roi Aménophis IV 집권 초기부터 아메노피스 4세 (B.C 1353-1337)는 종교와 예술에 활력을 불어넣은 왕으로 유명한데, 이러한 점은 그가 ‘카르낙 Karnak’의 ‘아몽 Amon 사원’ 동쪽에 세우게 한 성소의 유적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단다. 성소에는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 넓은 회랑이 있는데, 회랑의 기둥들 반대쪽에 왕의 모습을 한 커다란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으며, ‘오지리스 Osiris’처럼 가슴에 팔짱을 끼고 있다. 헌데, 아메노피스 4세 왕의 몸은 이상하게도 여성적인 풍만한 허리를 하고 있으며, 왕의 얼굴은 마치 마스크처럼 엄격한 형식에 따라 처리되었단다. 엄격한 모습 = 신성함???? 오늘날 거의 사라져버린 색채들은 걱정스러운 듯 보이면서도 매혹적인 얼굴을 표현하는데 일조하였으리라…..
앉아있는 서기관 (이집트)
B.C 2600~2350 이 유명한 조상은 ‘사카라 Saqqara’에 위치한 고 왕조 시대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다. 실제 모델이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얼굴과 몸의 윤곽을 처리한 방법이나, 눈에 동으로 테두리를 한 것으로 미루어 매우 중요한 인물로 추측한다고…..
에비-힐 (메소포타미아)
Ebih-il B.C 2400 년경 작품으로, 요즘의 재무장관에 해당하는 ‘총감 Intendant’은 모피 치마를 입고 웃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이상적인 낙관주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알고가자, 에비-힐!!! 또한 ‘지낙 Ginak’ 왕자의 조각상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각진 모습으로 인물을 표현하던 이전 시기의 조각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다.. ‘수메르 Sumer’ 문화는 ‘셈족’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Mésopotamie’ 전역으로 퍼지게 되는데, 특히 현재 ‘시리아 Syrie’의 ‘텔 하리티 Tell Hariri’ 지역에 있었던 ‘마리 Mari’라는 도시에 영향을 미쳤단다. 이 도시는 1934년부터 ‘앙드레 파로 André Parrot’에 의해 발굴되었고, 이후에는 ‘장 마르그롱 Jean Margueron’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 곳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매우 발전된 형태의 작은 조각상들이 제작되었는데, 남쪽 지역의 조각상들과 비교해 볼 때 대단히 독창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왕의 묘비 (이집트)
Stèle du Roi-Serpent 이 묘비는 ‘아비도스 Abydos’에 위치한 초기 왕조의 왕릉 군집 지역에 있는, 제 1왕조 3번째 왕 (B.C 3000)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으로, 당시의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조각품 중 하나라고….. 왕의 묘비 꼭대기 부분은 정교한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약간 볼록하다. 상층 부분에는 왕의 이름을 상징하며 이집트 왕가의 상징인 거대한 매 ‘호루스 Horus’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테두리 속의 글씨와 조화롭게 보이기 위하여 매의 조각이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왕의 이름을 상형 문자로 새겨 넣을 수 있도록 빈 공간을 남겨 놓은 것 이라고…… 추측!!! 매 발 밑에 보이는 뱀은???? 무엇을 상징할까???
왕의 장례 신하 (이집트)
Serviteur funéraire du roi 이집트의 왕들은 살아 생전에 ‘왕들의 계곡 Valée des Rois’에 자신들의 무덤을 파게 하였다는데, 불행히도 이 보물들은 끊임없이 도굴꾼들에 의하여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우여곡절 끝에 ‘투탕카멘 Toutânkhamon’의 손상되지 않은 무덤은, 이 지하 납골소들이 어떤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데…… 기원전 1153-1147년에 통치한 ‘람세스 4세 Ramsès IV’의 무덤에는 인형처럼 사람을 닮은이와 비슷한 종류의 것들이 수백 개나 있는데…. “그는 왕을 대신해서 묘지에서 일을 해야 한다. 밭을 돌보고, 관개도 해야만 하며, 모래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등의 글이 몸에 적혀있는 장례 신하들이란다. 또한, 죽은 자들이 저 세상에서도 편안할 수 있도록 시신들 곁에 온갖 집기들을 갖다 놓았기 때문에, 이집트의 일상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Bonne Visite!!!!
유골함 수레 (에트뤼스크)
Urne cinéraire B.C 2세기말~1세기 초 덮개 위에 보석으로 치장된 죽은 고인은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석류를 들고 있는데, 아마도 불멸을 상징하는 것!!! 석관에는 두 마리의 암 노새가 여인이 자리잡고 있는 덮게 덮인 수레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 명의 기사와 여러 명의 시종들이 동행하고 있다. 알고가자, 유골함 수레!!! ‘헬레니즘 Hellénisme‘ 시대에 ‘에트루리아 Etrurie’의 도시 ‘볼테라 Volterra’의 예술가들은 흰 대리석으로 된 유골 단지에 특히 조예가 깊었는데, 이것들은 화려하게 조각 장식이 되어 죽은 사람의 재를 보관하는 데 쓰인 유골함이다. 어떤 것들은 동시대의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특히 ‘페르가몬 Pergame’ 혹은 ‘로더스 Rhodes’에서 발전된 예술 형식들을 보여 주는데, 이 석관에서는 그런 점들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망자의 여행을 일상적인 삶의 이미지처럼 표현하였다고…….
이집트 문명
Culture de l’Égypte 다른 지역에서 크고 작은 문명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동안,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Nil’의 범람에 힘입어 3,000년 동안 통일된 왕조 아래 세계 역사상 최초의 장대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데… 알고가자, 이집트 문명!!! 고대 이집트 미술은 기원전 3100년경 ‘제 1왕조’ 시대부터 점차 원시적 단계를 벗어난다. ‘제 4-5왕조’ 시대에는 이미 고전적 양식을 보여줄 정도로 발달하였었고, ‘제 12왕조’, ‘제 18-19왕조’, ‘제 26왕조’ 등의 시대에는 그 활동이 눈부셨단다. 이집트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연 현상이나 동물 등을 숭배했고, 내세를 믿는 종교관을 바탕으로 영혼 불멸을 믿었기에 ‘영원을 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 사람들의 맹목적인 목적은 살아있는 신으로 간주되던 지배자가 사후에도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있었다. 거대한 이집트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은 ‘파라오 Pharaons’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존재하였던 것이다. 이집트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분묘와 신전, 미이라로 만든 시체 등도 모두 영원 불멸을 지향하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집트 문명은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이집트인들이 지상에서의 행복을 사후에도 지속할 수 있도록 무덤에 방대한 양의 유물들을 묻었기 때문이다. 무덤 벽면에 그려진 벽화와 상형문자들도 이집트의 예술성을 보여주는데, 대부분 죽은 자가 살아 있을 때의 일상 생활을 세세히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또한 미이라로 만든 육신이 부패했을 경우 영혼이 대신 머무를 곳으로 초상 조각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초상화와 조각상에서 인체는 엄격한 공식에 따라 묘사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부조와 회화는 신전, 분묘 […]
지낙 왕자 (메소포타미아)
Le prince Ginak B.C 2700 인물을 사실대로 표현하지 않고, 기하학적이면서도 각이 많이 진 이상적인 인간을 표현한 이 작품은 고 왕국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경배상이라 할 수 있다고… 지낙 왕자!!! 엄격하면서도 각진 모습으로 조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지 않을까???? 수메르인들의 문학 속에서 거의 전설적인 시대로 남아있는 초기 왕조에 새로운 양식의 예술이 시작된다. 특히,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신 앞에 평등하게 드려지는 제단에 위인의 추억을 영구히 전하는 기념비적인 조각상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지벨의 단도 (이집트)
Poignard du Gebel el-Arak – B.C 3300-3200 손잡이가 섬세하게 조각된 단도들은 여러 미술관에서 볼 수 있으나, 이 지벨의 단도 조각은 매우 독특하다. 이 단도의 한쪽에는 지상 전투와 해상 전투 장면이 새겨져 있고, 다른 쪽에는 사자, 야생 염소, 개 등의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단추처럼 튀어나온 것이 있는데, 그 위로 왕의 복장을 한 ‘수메르 Sumer’ 남자가 두 마리의 길들여진 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양새가 다른 배에서 싸우는 군상들을 해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메조포타미아‘ 문명과 예술적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어쨌든 조각가의 매우 훌륭한 솜씨로 정교하게 다듬은 문양들은 고대 이집트 부조 예술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규석이 재료인 이 단도는 얇은 조개 껍질을 갈아 만든 정교한 칼날로 매우 섬세하게 작업된 것으로, 이 시기 ‘이집트 문명‘의 특징을 보여준단다.
코레스 (그리스)
Corès 이 여인상은 1875년 ‘사모스 섬 Samos’에 있는 ‘헤라 신전 Sanctuaire d`Héra’에서 발견된 것으로, 경외 감을 자아내는 최초의 ‘코레스 Corès’ 중의 하나이다. (‘코레스 Corès’는 신을 기쁘게 할 목적으로 바쳐진 미와 위엄을 갖춘 여성의 그리스 식 상징으로 ‘쿠로스 Couros’라는 남성과 상응되는 개념) 알고가자, 최초의 여신상 꼬레스!!! 이와 동일한 조각상이 최근 ‘사모스 섬 Samos’에서 발견되었는데, 같은 의상과 “쉐라미에스는 헤라에게 나를 제물로 받쳤다”는 헌정사를 가지고 있기에, 적어도 두 개의 여성 조각이 쌍을 이루고 있었다고 보여진단다. ‘사모스 섬’에서 여섯 명의 가족 단위 조각상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B.C 570 년에 제작된 이 조각상은 ‘튜닉 Tunique’과 외투 그리고 베일이 결합된 매우 화려한 의상을 하고 있다. 두 다리는 아직 모아진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오른손은 베일 밑으로 투명하게 드러나는데 ‘튜닉’의 주름은 표현되어 있지 않다. 왼손은 상당 부분이 유실되어 있는데, 아마도 일종의 상징물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사모스 섬’에서 발견되는 조각들의 유사함과 숫자는 이 지역의 전통 문화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분명 그리스 조각의 출현에 이바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콘스탄티누스 메달 (그리스)
Médaillon en or ‘콘스탄티누스 Constantin’ 황제가 321년 그의 두 아들의 두 번째 임기를 기념하기 위해 발행한 금화로서, 중앙에는 넓게 구멍이 뚫린 금종이를 덧붙여 ‘세팅 Opus interrasile’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화려한 메달은 다른 3 개와 함께 일종의 커다란 목걸이의 한 부분으로, 아마도 선물을 목적으로 황제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 이라고….. 본래 여섯개 이었던 작은 원 내부의 반신 초상들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황제의 여인들인가????
함무라비 법전 (메소포타미아)
Code de Hammourabi 단체 패키지 여행으로는 시간상 ‘리슐리외 Richelieu’ 전시관을 관람하지 않기에, 세계 최초의 성문법으로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함무라비 법전>을 볼 기회는 대개 없지만, <밀로의 비너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들 중의 하나이다. 알고가자,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 법전’은 본래 B.C 18 세기 경 ‘바빌론 Babylon’에 세워졌지만, 7세기경에 ‘엘라미트 Elamites’에 의하여 전리품으로 ‘수즈 Suse’에 옮겨졌단다. 1901년 선교사 ‘모르강 Morgan’이 인솔하는 프랑스 고고학 팀에 의하여, 현재 이란의 한 도시인 ‘수즈 Suse’ 인근에서 발굴되어, ‘벵상 쉐일 Vincent Scheil’ 신부에 의하여 6개월만에 판독이 되었다고… 원통형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282개의 법조문이 3500줄에 달하는 문장으로 새겨져 있는데, 단단한 현무암에 새겨진 설형문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 나가게 되어 있다. 비석의 상단부에는 ‘함무라비 왕’이 태양의 신이자 정의와 재판의 신이기도 한 ‘사마슈 신 Shamash’에게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어깨에 불꽃 모양이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마슈 신’의 오른손에는 척도의 기본인 ‘자’를 들었고, 왼손에는 반지를 들고서 왕에게 주고있다. 왕권신수설? ‘바빌론 Babylon’ 제 1왕조의 6대 왕이었던 ‘함무라비 왕’이 통치하던 때는 ‘바빌론’ 왕국이 가장 번성한 국가를 이루었을 때였다고…. 참, 창세기 14장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사로잡은 이방의 왕들 중 ‘시날 왕’ ‘아므라벨’이라는 사람이 바로 ‘함무라비 왕’으로 여겨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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