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의 시민들 (오귀스트 로댕)

칼레의 시민들 (오귀스트 로댕)

Les Bourgeois de Calais 

왕권 전쟁인 ‘100년 전쟁(1337-1453) 중,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의 위대한 인물들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영웅들을 기리기 위하여, 웅장하고 영웅스러운 모습의 조각상을 기대하면서 ‘로댕’에게 제작 주문을 하는데…..칼레의 시민들!!!!

각자 자기의 죽음을 향해 초라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칼레 Calais‘ 시민의 영광을 보여주기 보다는 굴욕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거센 항의에 부딪치어 거부되어 오다가, 50년이 지나서야  ‘칼레‘ 시청 앞에 설치되었다고……

영국군에 완강히 버티던 ‘깔레’의 시민들은 프랑스 왕 ‘필립 6세’가 군사적인 지원을 해 준다고 약속을 믿고 저항하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고 프랑스 군대가 회군하면서,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1347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 에게 항복을 하게 된다. 저항한 괘씸죄를 묻기 위하여 ‘에드워드 3세’는 시민들의 목숨을 보장하는 대가로 중요 인물 6명의 목을 요구하는데, 시민들을 위하여 자진하여 목숨을 내놓았던 살신성인 ( 殺身成仁 )의 영웅들 이야기이다.

깔레의 시민들

일반적으로, 기념물들은 높은 좌대에 얹혀지고, 대표 인물을 정점으로 피라미드 구도를 갖는데, 이 작품은 평등하게 인물을 배치하였고, 침묵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향하여 말없이 나아가는 형상으로 조각이 된다. 운명 앞에 자신들의 목숨을 버린 영웅이지만, 인간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뇌하는 모습 때문에…..

시민을 구하기 위하여, 당시 ‘깔레’에서 가장 부유한 ‘외스타슈 드 생 삐에르 Eustache de Saint Pierre’ 한 사람만, 지도자다운 덕성과 지혜가 충만한 모습으로, 운명에 순종하고 모든 것에 달관한 표정이다.

‘에드워드 3세’에게 넘겨줄 성의 열쇠를 들고 있는 ‘장 데르 Jean Derr’는 냉철하고 책임감 있는 얼굴이고, ‘삐에르 드 위쌍 Pierre de Ucent’은 조금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는 모습으로 뒤따라오는 동생 ‘작크 드 위쌍 Jack de Ucent’을 독려하는 모습이라고…..

뒤편의 세 사람은 ‘우는 시민’ 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죽음의 공포에 괴로워하는 평범한 시민의 모습에서 바로 이들의 희생이 더욱 값어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표정과 몸 동작, 손의 모습에서 동포를 구하기 위하여 희생을 자진한 인물들의 감정과 영혼을 표현한 작품이다.

전설에는, ‘에드워드 3세’가 왕비의 설득으로 위대하고 용감한 이 사람들을 살려 보냈다고 한다. 마침, 임신한 왕비가 자비를 베풀었다고…. “죽기를 작정하면 살고, 살기로 작정하면 죽는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맞는 이치인가 보다!!!!

로댕 깔레의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