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앙티브’로 향하는 차장 밖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 새파란 바다가 청초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작달막하고 하얀 예쁜 배들이 바다 한 가운데 여유로이 떠 있다. 수줍은 듯이 가려진 작은 앙티브 도시는 그리스인들에 의하여 식민지로 건설되었지만, 로마의 ‘세자르 César’에게 정복을 당하였으며, 이탈리아와의 국경에서 가깝고, 군사적인 요새로 주목되어, ‘루이 14세’ 시절에 건축가 ‘보방 Vauban’이 ‘성곽 Fort carré’을 건설하기도…
폐허가 된 성곽도시로 버려졌던 앙티브 도시의 시작은 1865년, 유명한 식물학자인 ‘뛰레 Thuret’ 라는 사람이 이곳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의 풍경과 자연을 발견하게 된 것이 시초…
추천 여행 당시 이 곳에는 등대 하나와 작은 성당 두 개, 그리고 포도주 농장 몇 개에 불과하지 않았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에 매혹된 ‘뛰레 Thuret’가 이곳에 정착을 하고, 꽃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 덕분에 앙티브 도시는 오늘날 세계 제일의 ‘장미의 도시‘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샤를르 가르니에 Charles Garnier’가 네덜란드 백만장자의 부탁으로 이곳에 호화 빌라를 설계하면서, 고급 휴양지로 탈바꿈 하기 시작한다고……
이 호화 빌라는 ‘엘렁혹크 Eilenroc‘ 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빌라는, 이곳에 세워지는 대 부분 빌라의 모델이 되었고, 부자들의 휴양지로 각광 받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83개의 호텔이 있고 11개의 캠핑장이 있다. 앙티브 도시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 시청사와 장터를 돌아보고 코발트 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면, 현재 ‘피카소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그리말디 성 Château Grimaldi’이 보인다.
Le Musée Picasso
‘피카소 Pablo Picasso’는 1939년, 우연히 이 곳에서 잠시 머물렀었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46년 ‘피카소’는 다시 남불의 작은 어촌, ‘앙티브’로 돌아온다. 당시 앙티브 박물관 관장으로 재임하던 ‘도흐 드 라 수쉐흐 Dor de la Souchère’가 성채의 맨 윗 부분에 있는 넓고 환한 홀을 내주면서 ‘피카소’에게 아뜰리에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코발트 빛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작업실…. 그것도 무료로….^_^
‘피카소’는 이 작은 앙티브 마을의 정취가 맘에 들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성에서 그의 작품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바지의 포켓에 아뜰리에 열쇠를 넣고 같은 해 12월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계속하면서, 이곳에서 그린 그림들을 기증함으로 그대로 이곳의 소장품이 되었다. ‘피카소’는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가끔 찾아오곤 하였는데, 어느날 박물관 관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리말디 미술관 Musée Grimaldi’이라 불리던 이곳을 자신의 이름을 넣어 ‘피카소 미술관’으로 고칠 것을 제안하였고, 1966년부터 공식적으로 ‘피키소 미술관’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피카소 미술관’은 매년 1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으며 ‘꼬 따쥐흐‘ 지방의 가장 매혹적인 미술관 중 하나이다. 20세기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도르드 라 수셰르 Dor de la Souchère’에 의하여, 상상의 인물을 표현한 ‘미로 Miro’의 작품을 비롯하여 ‘에른스트 Ernst’, ‘피카비아 Picabi’, ‘끌렝 Klein’, 쓰레기를 모아서 전시하는 ‘아르망 Arman’, ‘세자르 Cesar’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