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은 어촌이었던 칼레는 1347년 백년전쟁 중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정복되어,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되었으며 양모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던 칼레!!! 이때, 1년 가까이 영국에 저항한 것을 괘씸하게 여긴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대표 6명이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와서 처형받는 조건으로 시민들을 살려주겠다고 공표하였고, 가장 부자이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 Eustache de St Pierre’를 포함한 변호사와 칼레 시장, ‘위쌍 Wissant’ 형제가 자진하여 나선다.

지도급 인사들의 용기에 감복한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모두 살려주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칼레 시는 1884년 조각가 로댕에게 이들을 위한 기념상 제작을 의뢰하였다. 총 12개의 ‘칼레의 시민’ 작품을 제작하여, 깔레 시청 앞 광장과 파리의 로댕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칼레

백년전쟁 후에도 칼레는 역사의 틈바구니에 끼어 16세기에는 스페인령이었고 1558년에서야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영국본토 공격용 로켓기지가 설치되자 노르망디 상륙작전 지역을 은폐하기 위한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거의 파괴되었었다.

칼레

1994년에 도버해협에 49.94km에 달하는 해저 터널이 뚫려 유로스타가 3시간만에 파리–런던을 연결하는 장점도 있지만, 요즘 세계적인 문제가 되는 난민들의 최종집결지가 되어버렸다. 해저터널로 진입하는 트럭에 숨어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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