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남부 ‘랑그독 후씨용 Languedoc-Roussillon’ 지방에 있는 요새도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매년 200만 명이 넘는 수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특히,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며, 중세도시를 거닐어 보고, 이 지방의 특식인 ‘까흐쑬레’ 음식을 맛 보시길…. 알고가자, 중세의 요새도시 까흐까손!!!

2,500 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까흐까손 요새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이기에, 고대적부터 성곽시설이 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BC 2세기경 ‘로마정복기 Gallo-romains’에 이 곳에 병영이 존재하였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발굴을 통하여 증명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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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흐까손 역사

476년 ‘게르만’ 족에게 로마가 붕괴되면서, 각 지방의 힘있는 부족이 우후죽순 처럼 생겨나서 독립을 외치는데….. 5세기 중엽 ‘서고트 Wisigoths’ 족이 ‘랑그독 Languedoc’ 지방을 점령하고, 이 곳에 정착하면서 내부 성벽을 건설하였단다. 게르만 족의 침입이 무서워서….

508년 ‘프랑크 Francs’ 족에게 이 요새를 잠깐 동안 점령당하였지만, 서고트족이 탈환하여 713년까지 지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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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지배

전 유럽을 장악하기 시작한 이슬람 세력에게 725년에 점령되어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메로뱅 왕조‘의 궁재를 지내던 ‘샤흘 마흐텔 Charles Martel’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쁘와띠에 Poitiers’ 전투에서 이슬람을 격파하면서, 서서히 유럽 땅에서 이슬람 세력이 밀려나기 시작하여, 우리가 잘 아는 ‘알람브라 궁전’을 끝으로 유럽 땅을 떠난단다.

751년 ‘카롤링거 왕조’를 세운 프랑크 족의 ‘페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752년 이 요새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까흐까스 부인 Carcas’의 전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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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흐까스 부인의 전설 La légende de Dame Carcas

까흐까손 까르까손프랑크 족이 세운 프랑스 군대가 이 성을 함락시키고자, 이 요새를 물샐틈없이 포위하고는 고사시키는 작전을 폈단다.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전쟁으로 과부가 된 ‘사라센 Sarrasins’ 족의 ‘까흐까 Carcas’ 공주가, 요새 안에 있는 모든 먹을 거리를 수색하여 가져오라고 하니, 겨우 돼지 한 마리와 보리 한 자루가 전부였단다.

공주가 꾀를 내어, 유일하게 남은 돼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보리를 잔뜩 먹여, 요새의 높은 곳에서 적의 진영에 던졌단다. 떨어져 죽은 돼지의 뱃속에 보리가 가득한 것을 본 프랑스 군대의 수장은, 돼지에게 곡식을 먹일 정도로 요새에 식량이 풍부하여, 포위작전으로는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철수하기 시작하였단다.

적이 물러나는 것을 본 공주가 승리를 자축하며 도시의 모든 종들을 울리게 하는데, 적의 한 병사가 종소리를 들으면서 “까흐까 공주가 종을 울리는군 Carcas sonne !!!”이라고 외친 것이 이 요새 이름의 유래란다.

까흐까 Carcas(공주 이름) + 손 sonne(울리다) = Carcassonne     믿거나 말거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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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흐까손 중세시대  L’époque féodale

12세기 전성기에 성을 체계적으로 건설하였으며, ‘고딕 양식의 유리창으로 유명한 ‘생 나제르 성당 Saint Nazaire’과 요새 속의 요새라고 불리는 ‘콩탈성 Château Comtal’도 이 시기에 지어진다. 남불 지역의 맹주 ‘트헝까벨 Trencavel’ 가문의 통치아래,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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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세속화되고 형식에 얽메이며 극도로 부폐한 로마교황청을 비판하면서, 세속적인 생활을 버리고 비폭력과 채식, 금욕생활을 통하여 구원을 추구하는 ‘까따흐 Cathare’(순수) 파가 11-12세기에 ‘랑그독 Languedoc’ 지방에서 급속도로 교세를 넓혀간단다. 교황청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부정하는 ‘카따흐 파’가 눈에 가시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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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영토확장을 꿈꾸는 프랑스 왕과 교황청이 손을 맞잡고, 1208년 교황청이 ‘까따흐’ 순수 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격을 한단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던 십자군들이, 신의 이름으로 같은 카톨릭 인들을 공격하는 요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

전략적 위치로 종교적 대립의 중심지가 된 이 곳에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2 천여명의 주민들을 산채로 화형에 처하는 마녀사냥이 자행되었단다. 1244년 최후까지 저항한 ‘까따흐’ 파의 225명 신자가 ‘몽세귀 Montsegur’에서 모두 몰살당하면서 ‘랑그독’ 지방의 종교전쟁은 끝을 맺는다.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여 악행을 저지른 셈!!!! 인종청소하고 땅 빼았고….

교황청의 묵인아래, 1226년 프랑스 왕령으로 병합되어 ‘아하공 Aragon’과의 국경수비에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잡으며, 현재와 같은 성곽의 모습을 갖춘다고…. 교황이 묵인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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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까흐까손  L’abandon de la Cité

원수처럼 전쟁을 하던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1659년 맺어진 ‘피레네 평화조약 La paix des Pyrenées’으로 ‘루이 14세 Louis XIV’와 스페인 왕녀가 결혼하는데, 신부가 지참금으로 땅을 갖고 온 덕분에 국경이 바뀐다. 국경이 피레네 산 쪽으로 이동되면서, 군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잃고 급속히 퇴락하여 폐허상태로 방치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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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La restauration de la Cité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 Louis Philippe’(1830-1848 재위)의 명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Nôtre Dame de paris’을 복원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 ‘비올레 르 뒥 Viollet-le-Duc’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시킨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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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르퐁 고성‘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지 않고, 건축가가 임의대로 변형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쩄든, 관광객들은 쏟아져 들어 온다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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