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5년 파리 시내의 ‘레 알 Les Halles’ 지역의 ‘결백한 자들의 무덤 Cimetiere des Innocents’을 이전하면서, 유골들을 15개월 동안 발굴하여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게 된 것이 유래인데, 그 후에도 파리 시내의 여러 성당 묘지의 유골들이 이전되면서, 현재 600만 이상의 이름없는 유골들이 지하 20 미터의 갱도에 쌓여 있다. 알고가자, 지하세계 까따꽁브!!!

이 갱도들은 18세기까지 지하에서 암석을 채취하던 곳이었고, 현재 납골당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1 헥타르에 1,500 미터 정도의 통로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 면적의 1/15 정도가 방문객을 맞는다.

까따꽁브

파리의 까따꽁브 지하묘지는 로마의 까따꽁브와는 기원부터 다르지만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죽은 자들의 제국’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90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20 미터의 스산한 공기에 허옇게 드러난 무명의 유골들을 볼 수 있고, 한 여름의 더위가 가시면서, 인생에 대하여 반문하게 된다.

까따꽁브

 

 

까따꽁브 역사

18세기까지 ‘결백한 자들의 무덤’에 파리 시민들이 묻히면서 포화상태에 이르고, 수 많은 시체가 부패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시민들이 탄원하자, 1785년 ‘루이 16세’의 명령으로 1786-1788년 사이에, 현재 ‘몽수리 공원’의 풀밭 밑에 위치한 버려진 암석 채취 갱도로 ‘샤를르 악셀 기요모 Charles Axel Guillaumot’의 감독 하에 유골들을 밤에만 이장시켰다고….

까따꽁브

검은 장막이 씌워진 짐수레에 유골을 싣고 흰옷을 입은 사제들의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긴 여정을 마치고 옛 채석장에 도착하면, 일꾼들은 큰 뼈들로 앞쪽에 벽을 쌓고는 자질구레한 뼈들은 뒤죽박죽 던져서 채우는데 어떤 곳은 두께가 몇 미터에 달하기도 한단다.

“멈춤 ! 이 곳은 죽은 자들의 왕국 Arrete! C`est ici l`empire de la mort»

까따꽁브

18세기 후반부터 ‘나폴레옹 3세’ 시절의 파리 재개발 때까지 파리 지역의 여러 공동묘지에서 유골을 옛 채석장으로 옮기었고, 1810년부터 지하 묘지로 불리었고, ‘나폴레옹 1세가 이 거대한 지하 묘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개방을 결정하였고, 후에 ‘샤를르 10세’가 되는 ‘아흐트와 백작 Comte d`Artois’,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랑스와 1세 Francois 1’, 프러시아의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 Bismarck’, 나폴레옹 3세 등이 방문을 하였다고….

까따꽁브

 가장 운이 나쁜 사람으로는 ‘필리베흐 아스패흐 Philibert Aspairt’를 꼽을 수 있는데,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혼자서 까따꽁브를 산책한다고 들어가서 길을 잃어버리고, 11년 뒤에 그의 유골이 발견되었단다. ㅎㅎㅎ

까따꽁브

800 미터 길이에 갱도로 나뉘어진 납골당의 총 면적은 11,000 평방미터에 달하고, 완전한 미궁인 통로는 기념비와 예배당, 광장, 무시무시한 장식들로 표시가 되고 있고, 간혹 방문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글귀가 보인다.

« 아침에는 혹시 저녁까지 가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저녁에는 아침까지 못 갈 것을 생각해라. »

까따꽁브

 

유골을 보존하기에 적합한 온도와 조건을 자연적으로 갖춘 지하 묘지는 180년 동안 끊임없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매년 160,000 명이 죽은 자들의 세계를 방문하자 습도와 온도 조절의 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 1995년 파리 시는 환기장치와 냉방장치를 설치하여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였고, 2001년 3-6월 사이에 전기 시설을 새로이 보수하였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철 피서지로 적격!!!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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