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한 장면처럼 강물 위로 하얀 그림자를 드리우며 떠 있는 ‘쉬농소 성’은 지극히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이다. 6개의 아치 위에 지어진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쉬농소 성’이 ‘쉐르 Cher’ 강에 비치는 모습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르와르 계곡의 고성들‘ 중에서 연중 최다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추천 여행 포도 밭을 지나서 아름드리 플라타나스 나무들 사이로, 햇살 가득한 모습을 살포시 보이는 자태가 지극히 평화스럽고 여성적이지만, 이 곳에 두 여인의 사랑과 질투가 숨어있으며, 한숨과 회한의 눈물로 얼룩진 곳이라고….

 

쉬농소 성의 역사

‘샤를르 8세’, ‘루이 12세’, ‘프랑스와 1세’ 3대에 걸쳐 재정관을 지낸 ‘토마스 보이에 Thomas Bohier’ 와 그의 부인인 ‘까드린 브리소네 Katherine Briconnet’가 자신들의 성을 세우기로 결정한다.

13세기부터 존재하던 물레 방앗간의 주인이던 ‘마흐크 Marques’ 가문으로부터, 1512년에 방앗간을 매입하여 ‘동종 Donjon’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철거해 버리고 자신들의 건물을 새로 짓는다. 방앗간의 주인이던 ‘마흐크 Marques’ 가문의 흔적은 현재 기념품 가게로 이용되는 ‘Tour de Marques’(좌측 사진) 탑이 유일하고, ‘토마스 보이에’ (TB)와 ‘카트린 브리소네'(KB) 부부 이름의 이니셜은 성의 곳곳에 남아 있다.

1513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성을 지으면서, ‘토마스 보이에’는 당시의 프랑스 왕인 ‘프랑스와 1세’를 수행하느라 시간이 없었고, 그의 부인인 ‘카트린 브리소네’가 공사를 총감독 지휘하며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건물을 세운다. 여성적 세심함으로….

1521년에 드디어 성이 완성되어 이 곳에 정착하여 몇 년 살지도 못하고, 남편 ‘토마스 보이에’는 1524년에, 부인인 ‘카트린 브리소네’는 1526년에 사망한다. 아들인 ‘앙뜨완느 보이에 Antoine Bohier’가 유산으로 물려받지만, 생전에 마차 띄기(?)로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지면서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되었고, 빚을 탕감하기 위해 1535년 이 성을 왕인 ‘프랑스와 1세’에게 양도한다.

‘프랑스와 1세’의 뒤를 이어 1547년 왕위에 오른 ‘앙리 2세’는, 자신보다 18세나 많으면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망인 ‘디안느-드-쁘와띠에 Diane-de-Poitier’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이 성을 선물로 주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데, 지구 종말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1559년 ‘몽고메리’의 창에 눈이 찔린 ‘앙리 2세’의 임종 때, 본부인 ‘까드린-드-메디치 Catherine de Medicis’ 왕비는, 평상시 뒷전에 밀려 있던 신세를 복수하고자 벼르던 차에….

첩 ‘디안느-드-프와티에’가 이 ‘쉬농소 성’에 애착이 많은 것을 알고는, 왕으로부터 받은 모든 선물을 내놓으라며, 자신의 쇼몽-쉬르-르와르 Chaumont-sur-Loire’성을 주면서 ‘쉬농소 성’을 빼앗아 버린다. 또한, 미친 수도사 ‘작크 클레멍 Jacques Clement’에 의해 ‘앙리 3세’가 살해당하자, “흰 왕비 Reine Blanche”라고 알려진 ‘루이즈 드 로렌 Louise-de-Lorraine’이 정착하여, 왕의 죽음에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애도의 표시로 흰색과 검은 옷만을 입으며, 고행과 기도로 생을 조용히 마감하였던 곳 이기도…..

이후, 왕비의 조카 ‘프랑스와즈 드 로렌 Francoise de Lorraine’가 사용하여 5 왕비의 성으로 불린다.

 

근위병 실 La Salle des Gardes

왕실 근위병들의 방으로 16세기에, 떡갈나무로 만든 문에는 성을 지은 ‘토마스 보이에’, ‘까드린 브리소네’의 수호성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만약 성이 완공된다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S’il vient a point, me souviendra”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에서의 생활, 사냥 모습, 청혼 장면의 16세기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타피스리가 벽면을 장식하고 벽난로 위에는 ‘토마스 보이에’의 무기가 장식되어 있으며, 천장에는 ‘까드린 드 메디치’의 이니셜인 ‘C’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구석의 바닥을 자세히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숨은 그림찾기!!!

 

성 당 La Chapelle

근위병의 방에서 들어가는 문 위에 성모 마리아의 석상이 있고, 요한 복음의 내용을 표현하는 <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라 Avance ton doigt   ici > 의 예수와 <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입니다 Tu es mon seigneur et mon Dieu >라고 고백하는 ‘토마’의 모습이 떡갈나무에 새겨져 있다.

경비병들이 남긴 글씨를 벽에서 읽을 수 있는데, “인간의 분노는 신의 정의를 이루지 못한다   La colere de l’Homme n’accomplit pas la Justice de Dieu”, “악에 굴복하지 마라 Ne soyez pas vaincus par le Mal”는 내용이 유리판으로 보호되고 있다. 1944년 폭격에 파괴 된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1954년에 기술자 ‘막스 앵그랑 Max Ingrand’이 복원하였다.

 

디안느-드-쁘와띠에의 방 Chambre de Diane-de-Poitier

죽은 남편(왕실 주방책임자)에게 애도(?)를 표하는 검은 상복을 즐겨 입으며, 시인으로써 많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갖았던 ‘디안느-드-쁘와띠에’와 ‘앙리 2세’가 사용하던 방이다. 즉, 바람을 피우던 곳….

16세기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타피스리가 한쪽 벽을 장식하고,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인 ‘쟝 구죵 Jean Goujon’이 조각한 벽난로에, ‘H 와 C’가 겹쳐져 있는 문자는 왕과 왕비의 이니셜인 동시에 왕의 애인인 ‘디안느-드-쁘와띠에’의 이니셜인 ‘D’가 숨어 있다. 벽난로 위에는, 1559년에 이 성을 빼앗은 ‘까뜨린-드-메디치’ 왕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왕과 첩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옆으로는 17세기 이탈리아 학파의 < 옷을 빼앗긴 예수 Le Christ depouille   de ses vetements >가 보이며, 그 밑의 수납장에는 ‘쉬농소 성’에 관계되는 문서 보관함으로 사용된 가구에 ‘토마스 보이에’와 ‘디안느-드-쁘와띠에’의 서명을 볼 수 있다. 약 500년 전의…. 또, 가죽으로 된 ‘앙리 2세’의 의자도 놓여 있고, 벽에 드리워진 < 힘의 승리 Le triomphe de la force >와 < 자비심의 승리 Le triomphe de la charite   >라는 제목의 타피스리는 16세기 플랑드르에서 제작 된 것이라고….

 

녹색의 방 Cabinet Vert

‘앙리 2세’가 죽자 섭정이 된 ‘까뜨린-드-메디치’ 왕비가 서재로 사용하던 곳으로, ‘쉐흐’강과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는 이곳에서 프랑스를 다스리며 오늘은 어떤 정적을 없앨까(?)를 궁리하던 곳….

거의 원형을 간직한 16세기의 천장에는 왕비의 이니셜인 겹쳐진 ‘C’를 볼 수 있고, 출입문 좌우에는 이탈리아 장식 장이 놓여 있다.

벽에는
– Golsius < 삼손과 사자 Samson et le Lion >
– Poussin < 이집트로 피신 La Fuite en Egypte >
– Veronese < 여인의 머리 Etude de tete de femme >
– Jouvenet < 회당의 상인들을 쫓아내는 예수 Jesus chassant les marchands du Temple >
– Van Dyck < 열매와 아이 l’Enfant aux Fruits > 등등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이 방의 이름이 붙게 되는, 16세기에 브뤼셀에서 제작되어진 < 쥐방울 꽃   Aristoloche >이라는 녹색의 타피스리는,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짜여져 진 것으로 신대륙의 발견을 주제로 하면서 유럽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동물상, 식물상을 보여준다.

 

독서실 La Librairie

녹색 서재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왕비가 책을 읽던 곳이다. 모서리의 책상에서 ‘쉐르 강’의 경치와 ‘디안느의 정원’을 바라보며 독서를 하였단다. 천장은 1525년에 만든 것으로, 프랑스에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독특한 이탈리아 양식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건설자인 ‘토마스 보이에’와 ‘까뜨린 브리소네’의 이니셜인 ‘T, B, K’가 보인다. 문 위로는 Andrea del Sarto의 < 성 가족 Sainte Famille >, Bassano의 < 브뤼노 성자의 생애 Scenes de la vie de Saint Bruno >, Le Correge의 < 순교 Une Martyre >, Jouvenet의 < Heliodore >, 17세기 프랑스 학파의 두 메달 < 올림포스로 유괴되는 Hebe 와 Ganymede > 등이 보인다.

 

화 랑 La Galerie

6개의 아치를 갖는 다리를 ‘디안느-드-쁘와띠에’가 ‘쉐르 강’ 위에 만들었고, 성을 빼앗은 ‘까드린-드-메디치’ 왕비의 명령을 받아 1576년, ‘Philibert de l’orme’가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다리 위에 두개의 층을 갖는 화랑을 만든다. 첩이 건설한 다리 위에 왕비가 건물을 세운 셈…

1577년, ‘까드린 드 메디치’ 왕비의 아들인 ‘앙리 3세’를 위한 파티에 맞추어, 바닥에 사각형의 응회암과 석반석이 깔린 넓이 6미터, 길이 60미터에 18개의 창문을 갖춘 강 위에 떠 있는 무도회장이 완공된다. 양쪽 끝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벽난로가 두개 있지만, ‘쉐르 강’의 건너편으로 연결되는 남쪽 문의 장식용으로 이용된 가짜 벽난로라고….. 여름철에는 이 문을 열고 반대편 쪽으로 건너가 산책을 즐길 수 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성주인 ‘가스똥 메니에 Gaston Menier’가 자비 부담으로 이곳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도록 병원 시설로 내어 주었고,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쉐르 강’의 오른쪽 즉, 성이 위치한 지역은 점령지이었고, ‘쉐르 강’의 왼쪽 즉, 화랑의 끝쪽은 자유 지역이어서 ‘레지스탕’들이 많이 이용하였단다.

 

주 방 Les Cuisines

당시의 부엌 생활을 볼 수 있는 주방은 ‘쉐르 강’에 놓여진 첫 번째의 기둥을 형성하는 거대한 토대 속에 들어 있다. 16세기의 벽난로, 빵 굽는 기계, 집기 등을 보관하는 식기실은 식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경비병들의 식당과 하인들의 식당을 볼 수 있다.

벽난로 겸용의 화덕시설, 빵 굽는 가마와 당시에 사용하던 놋쇠 그릇들이 전시되어 있다. 갈고리와 칼 도마가 있는 고깃간도 있고….. 부엌으로 이동하면서 ‘쉐르 강’을 보노라면, 식량 보급을 하던 배를 대는 장소가 보이는데 이곳을 ‘디안느의 목욕탕’이라고 불렀다. 낚시하기에는 안성맞춤!!!

 

프랑스와 1세의 방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벽난로가 있고, 위 턱에는 “만약 성이 완공된다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S’il vient a point, me soviendra”라는 의미의 글이 새겨져 있다. 15세기 프랑스식의 찬장과 상아와 자개로 상감 조각된 화려한 가구는 ‘프랑스와 2세’의 결혼 선물로서, 그 섬세함과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못을 하나도 이용하지 않았다고…

벽에는 ‘반다이크 Van Dyck’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 1556년에 ‘쉬농소 성’에서 그려진 ‘Le Primatice’ < 사냥의 여신 복장의 디안느-드-쁘와띠에 > (앙리 2세의 애첩)
– Ambroise Dubois < 사냥의 여신 복장의 가브리엘 데스트레 > (앙리 4세의 애첩)
– ‘Van Loo’가 세 자매를 그린 < 우아한 세자매 Les Trois Graces > (루이 15세의 애첩 자매)등등이 있다.

 

루이 14세의 응접실 Salon Louis XIV

1650년 7월 14일에 ‘쉬농소 성’을 방문한 ‘루이 14세’는 방문 기념으로 자신의 배다른 삼촌인 ‘방돔 공작 Duc de Vendome’에게, ‘르포트르 Lepautre’가 제작한 화려한 화구에 ‘리고 Rigaud’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선물한다.

– ‘Rubens’의 < 아기 예수와 세례 요한 L’Enfant Jesus et Saint Jean-Baptiste >은 1889년에 ‘나폴레옹 1세’의 형이자 스페인 왕인 ‘조셉 보나파르트르’의 소장품 경매에서 구입한 것이다.

– ‘Van Loo’의 < 루이 15세의 초상화 Portrait du Roi Louis XV >

– ‘Nattier’의 < 호앙 공주 Princesse de Rohan >, < 뒤팽 부인 Madame Dupin de Francueil >
– ‘Netscher’의 ‘루이 14세’의 총리 < 샤미야흐의 초상화 Portrait de Chamillard >
– ‘Ranc’의 < 스페인 왕인 필립 5세 Portrait de Philippe V, Roi d’Espagne >
– Mignard의 ‘루이 14세’의 은행가인 < 사무엘 베르나르의 초상화 Portrait de Samuel Bernard > 등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벽난로 위의 불 도마뱀과 흰 담비는 ‘프랑스와 1세’와 왕비인 ‘끌로드 드 프랑스’를 상징한다. 18세기에 성주이던 ‘뒤팽 부인’의 인심이 후덕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기에서도 민중들이 이성은 건드리지 않아서 예술품들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많은 예술가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도 주요 손님이었다고 한다. 미인계????

 

현관과 계단 L’Escalier

현관의 천장에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사용된 독특한 배열의 교차 볼트가 보인다. 계단으로 통하는 문에는 ‘옛날 법’을 뜻하는 순례자의 지팡이책을 든 눈 가린 여인과 ‘새로운 법’을 뜻하는 종려나무와 성찬 배를 든 여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카트린 브리소네의 전실 Vestibule de Katherine Briconnet

계단을 통하여 1층에 올라서면, 조그마한 사각형의 타일이 깔린 바닥과 보들이 노출된 천장을 갖는 복도에, ‘Van der Meulen’이 사냥터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을 바탕으로 만든 여섯 개의 타피스리가 있다. 문 위에 있는 대리석 메달들은, ‘까드린-드-메디치 왕비가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으로 로마의 황제; ‘Galba, Claude’, ‘Germanicus’, ‘Vitellius’, ‘Neron’을 조각한 것이다.

 

다섯 왕비의 방 Chambre des Cinq Reines

덮개가 달린 침대와 가죽을 입힌 안락의자는 호사스러움으로 유명하고, 벽에는
– ‘Rubens’ < 박사들의 경배 L’Adoration des Mages > ; 완성작은 ‘프라도 박물관’ 보관.
– ‘Mignard’ < 오론느 공작부인의 초상화 Portrait de la Duchesse d’Olonne >
– 17세기 이탈리아 학파 < 아폴론 Apollon chez Admete l’Argonaute >이 걸려 있다.

벽에 드리워진 타피스리는 16세기에 플랑드르에서 제작 된 것으로 < 헬레나의 납치와 트로이 성 공격 >, < 다비드 왕의 대관식 >, < 콜리세움에서의 서커스 놀이 >, < 삼손의 생애 >를 담은 신화와 종교적인 내용들이다.

이 방에서 지냈던 ‘까뜨린-드-메디치’의 두 딸과 세 며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붙은 이름으로
– 딸, ‘마고 왕비 La Reine Margot’ : 위그노 파 이지만 카톨릭으로 개종한 ‘앙리 4세’의 첫번째 공식부인
– 딸, ‘엘리자베스 드 프랑스   Elisabeth de France’ : 스페인 왕 ‘필립 2세’의 부인
– 며느리, ‘마리 스튜아트 Marie Stuar’t : 만성 중이염으로 허약하던 ‘프랑스와 2세’의 부인
– 며느리, ‘엘리자베스 도트리쉬 Elisabeth d’Autriche’ : 위그노 학살을 허락한 ‘샤를르 9세’의 부인
– 며느리, ‘루이즈 드 로렌 Louise de Lorraine’ : ‘동성애 왕’이라 불리는 ‘앙리 3세’의 부인(왕 사후에 이 곳에 칩거)

 

카트린-드-메디치 왕비의 방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앙리 2세’에게 시집을 온 ‘카트린-드-메디치’는 지적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앙리 2세’가 ‘디안느-드-쁘와띠에’와 바람 피우는 것을 모른 척 하고 있다가….. 왕의 임종 순간에 왕비의 권한으로 ‘디안느-드-쁘와띠에’가 왕으로부터 받은 모든 예물과 ‘쉬농소 성’을 빼앗고 이 곳에 정착하여 사용하던 방이다. ‘쉬농소 성’의 동쪽 입구가 잘 보이며, 16세기에 조각된 화려한 가구가 있고, 플랑드르에서 제작 된 거대한 타피스리는 삼손의 생애를 표현한 것이다.

테두리에는 수많은 동물들 모습이 장식되어 있는데, 예를 들자면 < 수완은 술책보다 낫다 L’Habilete est superieure a la Ruse >등등의 교훈적인 격언이나   < 가재와 굴 L’Ecrevisse et l’Huitre > 이야기 또는 우화를 표현한 것이다.

침대 오른쪽 벽에는, 나무판 위에 그린 Le Correge의 < 사랑의 신의 교육 L’Education de l’Amour >가 보이고, 런던 국립 갤러리에는 캔버스 위에 그린 것을 보관하고 있단다.

 

쎄자르 드 방돔의 방 Chambre de Cesar de Vendom

‘앙리 4세’가 가장 총애하던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아들인 ‘쎄자르 드 방돔’이 1624년에 성의 주인이 되면서 사용하던 방이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진 벽난로는 19세기에 새롭게 단장을 하면서, 성의 건설자인 ‘토마스 보이에’ 가문의 문장을 넣었다.

서쪽 창문은 17세기에 두개의 나무로 만든 여인상 기둥이 받치는 격자 틀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창문 옆에는 ‘Murillo’의 < 조셉의 초상화 Partrait de Saint Joseph >가 걸려 있다. 17세기에 브뤼셀에서 제작 된 타피스리가 벽에 있는데, <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신화 >를 담고 있다. 어느 날,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자신의 아들인 ‘큐피터’에게 사랑의 화살을 지옥의 신인 ‘하데스’에게 쏘게 한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여자이며 열매의 신인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발견한 지옥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하계로 납치를 하는데, ‘제우스’의 중재로 6개월은 하계에서 ‘하데스’와 살도록 하고 6개월은 어머니인 ‘데메테르’와 살도록 해 주었다. ‘페르세포네’는 씨앗을 상징하며, 신화대로 땅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지상으로 나와 열매를 준다는 내용으로 계절의 변화를 상징한단다.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방 Chambre de Gabrielle d’Estrees

‘카트린 드 메디치’의 딸 ‘Margarite de Valois (마고)’와 결혼한 ‘앙리 4세’는, ‘프랑스 왕조 역사상 최고의 바람둥이로 56명의 애인 이름을 역사가들이 밝혀 내었다. 이 중에서 가장 총애하던 ‘가브리엘 데스테르’가 사용하던 방으로, 천개 침대 옆에는 16세기에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타피스리가 있다.

다른 3면의 벽에는 아주 희귀한 < 뤼까스 달들 Les Mois Lucas >이라는 타피스리가 있다.
– 6월, 게자리 < 양털 깎기 La tonte des moutons >
– 7월, 사자자리 < 매 사냥 La chasse au faucon >
– 8월, 처녀자리 < 수확꾼의 급료 La paye des moissonneurs >
문 위에는 ‘Francisco Ribalta’의 < 어린양과 아이 Enfant a l’Agneau >가 있고,
수납장 위로는 음악가들의 수호자인 ‘쎄실 성녀 Sainte cecile’의 초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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