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누벨 아키텐 Nouvelle-Aquitaine’ 지방의 ‘꼬레즈 Correze’ 지역에 위치한 인구 약 490 명의 유서 깊은 작은 도시로 리무쟁에서 “25 타워의 요새 la cité aux vingt-cinq tours “라는 별명을 가진 가장 예쁜 마을이다. 15-16세기에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가옥들로 형성된 마을 전체가 붉은 색인데, 마을 주변의 푸른 밤나무와 포도밭과 어우러진 모습이 가히 절경이다. 석양이 드리워질 때를 상상해 보시길…

 
추천 여행 1965-1996년 까지 이 마을의 시장을 오랫동안 지냈던 ‘샤흘르 쎄이약 Charles Ceyrac’의 제안으로 뜻있는 몇 명이 모여서 ‘꼴롱즈 친구들 Amis de Collonges’ 협회를 만들고, 1982년 만들어진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 협회에 첫해부터 등재되어 수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마을의 역사 Histoire

리모쥬의 ‘호제 Roger’ 백작의 후원으로 8세기경에 ‘프와뚜’ 지역의 ‘샤후 수도원 Abbaye de Charroux’ 의 수도사들이 기도원을 세우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된다.  844년 ‘뛰렌 Turenne’ 백작의 영지에 편입되고, 백작이 이 마을에 감세혜택을 주는 이민지원정책으로 농민들이 정착하고 장인들과 상인들도 정착하면서 마을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세운 성벽 주변으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인근의 ‘로카마두르 Roccamadour’를 통하여 ‘꽁포스텔 Compostelle’로 가는 순례 길목에 위치한 연유로 확실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

16세기 종교전쟁 당시에 마을의 방비를 위하여 종탑과 성당, 마을을 둘러싸는 성벽을 건설하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프랑스 전역을 광기로 몰아넣었던 30년 종교전쟁 동안에 꼴롱즈는 구교와 신교 주민들의 평화적인 해결책으로 무사히 넘어간다. 교회의 본당을 카톨릭과 개신교 두 진영에서 공존하면서 함께 평화적으로 사용하여 물리적인 충돌을 피한 거의 유일한 사례이란다.

루이 15세 치하의 1738년 프랑스 왕실에 합병이 되면서 감세혜택이 없어지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기도실이 파괴되었으며, 근대 산업혁명에 뒤쳐지면서 주민들이 떠나가고 마을이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암석채취 장으로 바뀌어간다.

 

왜 붉은 색일까 ?

흰색의 석회암 대륙판과 철 성분이 많은 쥐라기 시대의 사암 토양 대륙판이 만나는 곳에 가까이 위치하여, 산화 철 성분이 많이 들어간 암석으로 건축물을 지으면서 온 마을이 붉은 색을 띠게 된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1 억 6000 만년 전의 페름기 (유럽과 미국이 하나였고 지구상에서 가장 큰 격변을 겪은 기간은 해양 생물의 96 %와 육상 생물의 75 %가 멸종 된 기간) 격변 이후, 수백만 년 동안 두 판이 서로 마주치면서 조금씩 융기되어 페름기 시대의 암반과 쥐라기 시기의 암반이 함께 발견된다. 산기슭에서 수 많은 화석뿐만 아니라 암석에 흔적을 남긴 파도의 존재를 발견 할 수 있다.

 

인어의 집 La maison de la sirène

건물의 오른쪽 모퉁이에 인어조각이 있는데 한 손에 거울을 다른 손에는 빗을 든 모습이다. 왼쪽 모퉁이에는 긴 머리를 가진 남자가 돌고래를 타는 모습의 조각이 있다. 오늘날, 이 집에는 4 개의 객실로 나뉘어져 있는 미술 박물관과 전통 박물관이 있다. 두메산골 춥고 긴긴 겨울철에 벽난로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이 지방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곡물 및 와인 홀 La halle aux grains et au vins 

성당 바로 앞에는, 비바람을 피하기 위하여 지붕을 얹힌 넓은 공간에 재래시장이 열리는데, 한쪽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빵 굽는 화로가 남아있다. 16세기에 지은 것으로 사암과 석회암 지붕이 덮인 넓은 시장터이다.

 

베드로 교회 L’église Saint-Pierre

이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랜드마크적인 상징성을 갖는 ‘베드로 Saint-Pierre’ 교회는 11-15세기에 걸쳐 지은 것으로 이 작은 마을에 이처럼 크고 화려한 성당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 특히 리무쟁 Limousin’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위용을 자랑한다.

11 세기에 4 개의 기둥 위에 장방형으로 지어지고, 약 1 세기 후 돔 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을 증축하면서 서쪽 입구의 현판에는 ‘뚜렌 Turenne’의 석회암 부조 장식을 만든다. 이 마을 전체가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게, 이 성당의 팀판은 독특하게도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다. 12세기에 조각된 11명의 제자들과 성모 마리아 상과 함께 예수의 승천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성상파괴를 하던 30년 종교전쟁 당시에 숨겨져 있어서 다행히 파괴되지 않았고, 교회 복원공사 중에 발견되어 1923년에 다시 설치되었다.

13 세기에 교회의 본당에는 고딕양식의 ‘첨두형 아치’ 창이 설치된다. 14 세기와 15 세기에 남쪽과 북쪽에 측랑을 건설하는데, 마침 영국과의 백년전쟁으로 경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방어를 위한 요소들이 첨가되면서 전체적인 조화가 파괴되고, 영국군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감시 역할을 하는 정사각형의 높은 타워가 세워진다.

30년 종교전쟁을 하던 시기에 개신교와 카톨릭이 공존하던 시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본당에서는 개신교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좌측의 측랑 부분에서는 카톨릭 교인들이 미사를 드렸단다.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나무를 대고 고작 커튼으로 두 공간을 나누었으니 서로 경쟁적으로 찬송을 불렀단다. 결국 아름다운 기도로 봉헌한 셈이라고… 지금도 성당의 기둥에는 커튼을 걸기 위하여 홈을 파놓은 흔적이 남아있다.

좌측 측랑 부분에 구교도 카톨릭 성도들이 미사를 드리던 장소에는 성모에게 헌정된 화려한 성소가 인상적이고 특히 강렬한 햇살이 스테인드 글라스의 통하여 실내로 들어오는 영롱한 빛의 향연을 놓치지 마시길.

 

참회 자의 예배당 La chapelle des pénitents 

15세기에 건설되어 ‘검은 참회자들의 형제 la confrérie des pénitents noirs’ 가 정착하면서 이 곳은 꼴롱즈의 상징적 장소이다. ‘검은 참회자 형제단’은 죽은 자를 무료 자원봉사로 장례를 치러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 여성도 회원으로 참여가 가능하며 모두 검은 옷을 입는데 유일한 차이점은 남성은 검은 색 허리띠, 여성은 흰색 허리띠를 착용한다.

 

벵게스 성 Le château de Benges

이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1560 년경에 세워졌다. 우리는 나선형 계단, 탑, 포탑, 우아한 창 르네상스 양식의 창들이 보인다. Benges 진입하기 직전 왼쪽에는  가까운 ‘로카마두르 Rocamadour’ 또는 ‘카오르 Cahors’로 향하는 순례자에게 정보를 주던 곳이다. 마을 맨 끝에 위치하여 놓치기 쉽지만,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따라 마을의 정취를 즐기면서 어렵사리 찾아가노라면 충분한 기쁨으로 보상을 해주는 곳이다.

 

깡뚜 식당  Le cantou

이 지방의 전형적인 집의 현관을 들어서면 ‘깡뚜 Cantou’라고 불리는 벽난로를 중심으로 가족의 공동생활 공간이다. 식당겸 거실로 유일하게 난방이 되는 장소이기에 추운 겨울철 가장 중시되는 공간이다. 이 이름을 사용하며 전통지방 음식을 맛 보는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주소 & 담당자

주소:

rue de la Barrière 19500 COLLONGES-LA-ROUGE

GPS

45.06052769689377, 1.654156654773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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