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남쪽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1만 7천 헥타르의 어마어마한 퐁텐블로 숲에 위치한 궁전은 나폴레옹 1세가 천혜의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Sainte-Hélène’ 섬에서 퐁텐블로 궁전을 회상하며 « 몇 세기에 걸친 왕들의 진정한 집이다 »라고 표현한 것처럼 프랑스를 다스리던 왕들이 가장 선호하던 궁전이다.

“보아라! 건축가가 설계한 궁전은 아닐지라도 살기에 알맞도록 잘 계산된 왕들의 진정한 거처를…..  
Voilà la vraie demeure des rois, la maison des siècles ; peut-être n’était-ce pas rigoureusement un palais d’architecte mais assurément un lieu d’habitation bien calculé……”

퐁텐블로 성은 원래는 왕족들의 사냥 집이 있던 곳 이었는데, 프랑스 역대 왕들에 의해 증, 개축되어 중세에서 18세기 말까지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퐁텐블로

사냥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수행원을 거느린 왕이 선호하던 곳으로, 1137년 ‘루이 7세 Louis VII’가 정착하기 시작하여 1870년 나폴레옹 3세의 제 2제정까지 약 700년에 걸쳐 왕들의 거처로 이용되어, 당대의 유행과 왕의 선호에 따라서 왕궁을 증축하고 새로운 실내장식으로 치장한 것이 시대별로 남아있어서 흥미롭다.

퐁텐블로

성 안에는 예술 작품에 관심이 많던 왕들이 오랜 기간 동안 수집해온 수 많은 걸작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정원 역시 여러 세대의 왕들이 거치며 나름대로 아름답게 가꿔 왔으며, 무엇보다도 ‘퐁텐블로 성’의 매력은 성 주위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숲의 경관이라 할 수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여유를 갖고 주변 지역도 둘러 보기를 강추!!!

퐁텐블로

역사

영국과의 백년전쟁이 시작되면서 수도인 파리를 버리고 르와르 고성지대로 왕정을 옮기면서 퐁텐블로 궁전은 소외 당하지만, 다시금 파리를 정치의 중심지로 만든 왕은 ‘프랑스와 1세 François 1’(1494-1547) 이다.

스페인에 볼모로 잡혀있다가 돌아오자마자 루브르 궁전을 확장하고, 1528년부터 삶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하면서, 이탈리아 예술가 ‘로소 Rosso’, ‘르 프리마티스 Le Primatice’를 초청하여 프레스코화로 실내장식을 한다.

퐁텐블로

부르봉 가문의 시조인 ‘앙리 4세Henri IV’(1553-1610) 는 퐁텐블로 궁전에 유난히 집착하여 자주 이 곳에 머물면서 보수 및 증축 공사를 한다. 이 곳에서 태어난 아들 ‘루이 13세 Louis XIII’ (1601-1643)에 이르러 삼위일체 성당의 장식을 완성하고, 궁전의 첫 얼굴인 말발굽 형태의 계단을 완성한다.

퐁텐블로

베르사유 궁전 건설에 열중한 ‘루이 14세 Louis XIV’ (1638-1715), 루이 15세, 루이 16세도 매년 가을 9-10월 사냥철에 정기적으로 왕정자체가 머무르며 프랑스를 다스린다.

1804년 12월 2일 나폴레옹 1세의 황제대관식을 위하여 불러들인 교황 ‘비오 7세 Pie Vii’를 맞이하기 위하여 새로이 가구들을 들이고,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한다. 또한, 1812-1814년 동안에도 교황이 유배생활을 한다.

퐁텐블로

점차, 나폴레옹 자기자신과 황비 ‘조세핀Joséphine’ (1763-1814)의 거주를 위하여 가구와 장식을 갖추었고, 1810년 재혼한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 Marie-Louise’ (1791-1847)를 위하여 아름답게 탈바꿈시킨다.

퐁텐블로

왕이 사용하던 방을 ‘왕관의 방 Salle du Trône’으로 바꾸고, 공식적인 회의 및 사신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이용한다. 지금도 천정에는 왕조를 상징하는 백합문양을 비롯한 모티브들이 왕들의 침실로 사용하던 당시의 흔적들이다.

퐁텐블로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 Louis-Philippe’ (1773-1850) 은 방계가문에서 왕이 되었기에 더욱더 궁전을 화려하게 치장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으며, 제 2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지내다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 (1808-1873)도 궁전을 치장하는데 열중한다.

퐁텐블로

백마의 뜰 Cour du cheval blanc

금 도금된 독수리의 양날개가 화려하게 장식된 정문을 들어서면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에 둘러싸인 “ㄷ” 자 형태의 중정이 나오는데, 전쟁에서 패하고 황제 포기각서에 사인한 ‘나폴레옹 1세’가 1814년 4월 20일 ‘엘바 섬 Ile d’Elbe’으로 유배를 떠나면서, 황제의 친위대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며 울음바다로 변하였던 곳이기에 < 꾸흐 데 자듀 Cour des Adieux > (작별의 뜰)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이 < 꾸흐 뒤 쉬발 블랑 Cour du cheval blanc > (백마의 뜰)이다.

퐁텐블로

그런데, 왜 귤나무를???? 다른 성들도 대부분 귤나무를 화분에 심는 이유는??? 화분에 심어진 오렌지 나무는 왠지 황제의 근위병들이 사열하고 있는 듯 열을 지어 서 있다.  ‘나폴레옹’의 환생을 기다리 근위병들 처럼….. 오렌지가 익는 계절에 ‘퐁텐블로’를 방문하자!!!!!

퐁텐블로

내부

중국관

퐁텐블로 궁전을 입장하자마자 아랫층에 위치한 중국 박물관은 길이 14미터 폭 7미터의 큰 살롱은 으제니 황후가 자신과 친한 사람들과 편안한 대화를 하거나 놀이를 위한 방으로, 아시아에서 가져온 가구와 도자기, 장식들이 전시되어 있다.

퐁텐블로

1863년 나폴레옹 3세와 ‘으제니 Eugénie’ 황후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곳의 귀중품들은 1860년 프랑스 영국 연합군이 중국에 시장개방을 요구하며 북경을 함락하고, 여름궁전의 화려한 보물과 장식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나폴레옹 3세가 나누어 갖은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커다랗게 표현된 부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를 묘사한 것으로, 여름 궁전을 장식하던 것이란다.

1861년 퐁텐블로 궁전에 나폴레옹 3세를 방문한 ‘시암 Siam’(태국)의 사절단이 선물한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퐁텐블로

나폴레옹 박물관

1986년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곳으로, 나폴레옹 황제시절인 1804-1815년 동안의 유물들과 나폴레옹 형제자매와 두 명의 부인, 아들인 ‘애글롱’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완벽하게 복원된 야전 텐트, 그 유명한 프록코트와 삼각모, 그림, 조각, 가구를 비롯하여 보석으로 치장된 귀중품, 황제의 대관식 장면, 사용하던 잠옷, 메달과 화려한 무기가 황실의 영광을 보여주는 듯 하다.

폰텐블로

작품에서 보이듯, 금줄로 수 놓은 신발과 흰 비단옷, 나폴레옹의 문장인 벌이 수 놓여진 벨벳 외투, 흰 장갑, 머플러, 목에 걸었던 ‘레지옹 도뇌흐 훈장 Légion d’honneur’, 오른손에 들고 있는 홀, 의자 위에 올려져 있는 지구본과 정의의 손이 황제의 권위와 정통성을 보여준다.

퐁텐블로

나폴레옹이 대관식에서 입었던 흰 비단 튜닉이 바로 옆의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고, 대관식에 찼던 비단 허리띠와 금 도금된 검이 소장되어 있다. 1804년 12월 2일 황제 대관식에서 허리에 찼던 이 검은 황제가 되기 전, 제 1통령으로 선출된 나폴레옹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1801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황제 대관식에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부랴부랴 손잡이 부분을 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136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섭정 Regent’을 중앙에 박아 넣었다.

퐁텐블로

천상 타고난 군인이던 나폴레옹은 특별한 행사가 없는 평상시에도 군 복장을 즐겨 입었는데, 특히 나폴레옹의 상징처럼 각인된 모자와 긴 외투가 인상적인데, 이 곳에는 마지막 유배지 ‘생트 헬렌 Sainte-Hélène’에서 나폴레옹이 입었던 회색과 녹색 외투가 전시되어 있다.

퐁텐블로

로마의 왕으로 불리던 나폴레옹의 아들 ‘애글롱’이 태어난 1811년 3월 20일 파리시가 황태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하였던 요람은 현재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보관되어 있고, 이 요람은 뛸르리 궁전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퐁텐블로

프랑스와 1세의 갤러리

성 내부의 화려한 방들, 나무 바닥에 왕족의 문장이 새겨진 호두빛 천장, 우아한 장식, 빛나는 샹들리에…….. ‘퐁텐플로’에 정착했던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금 도금한 ‘프랑수아 1세 화랑’은 놓치지 말자.

퐁텐블로퐁텐블로 궁전에 정착했던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프랑스아 1세’ 갤러리에서 보이는 ‘F’는 프랑스와 1세를 나타내고, 왕의 수호동물인 불 뿜는 도마뱀이 보인다. 불을 끄는 능력도 갖춘 도마뱀은 분쟁을 다스리는 왕의 모습을 상징하고, 입에 문 보리이삭은 왕이 백성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퐁텐블로

잘려진 가죽이나 종이가 돌돌 말리는 모티브로 장식된 액자들 중에, 흰 코끼리는 옛 고대부터 고귀하고 지혜의 상징으로 신성시하던 동물로 프랑스와 1세를 나타낸다. 발치에 세 명의 인물은 우주를 구성하는 공기, 물, 불을 의인화한 것으로, 프랑스와 1세가 우주를 다스린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퐁텐블로

옆의 작품은 그리스 신화 중에 신들이 변장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납치하는 장면 이야기를 표현한 것으로, 오른쪽은 말로 변장하여 ‘필리흐 Philyre’를 납치하는 ‘사튀흔느 Saturne’ 를 묘사하였고, 왼쪽은 주피터가 황소로 변장하여 ‘유럽 Europe’을 납치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퐁텐블로

무작정 찾아가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역사와 예술사를 공부하고 ‘프랑스 왕들의 족보’를 공부하고 이 곳을 방문한다면 금상첨화 !!!!!

퐁텐블로

무도회장

무도회장의 입구는 앙리 2세 치세말기에 완성된 것으로, 상대적으로 비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자마자 100 평 정도의 넓은 공간에 화려하게 장식된 밝은 공간은 극적이다.

벽의 프레스코화 들은 1550년경에 ‘프리마티스 Primatice’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신들의 세계에서 음악의 신 아폴론과 뮤즈들의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연장면은 프랑스 왕국의 현실을 표현한다.

퐁텐블로

고대 반인 반수의 형상을 청동으로 본떠서 제작한 벽난로의 장식은 프랑스와 1세 시절에 만든 것으로, 프랑스 대혁명 때 파괴된 것을 1966년 로마에 현존하는 같은 모델에서 그대로 본을 떠서 복원한 것이다.

바닥과 천장에는 ‘앙리 2세 Henri II’를 상징하는 ‘H’와 왕비 ‘까드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édicis’를 상징하는 ‘C’, 왕의 애첩 ‘디안느 Diane de Poitiers’를 나타내는 ‘D’가 결합된 문양이 곳곳에 보인다.

 

정원

‘퐁텐블로 성’의 정원은 프랑스 양식의 정원과 영국 양식이 구분되어 있고, 왕족이 식사를 즐기던 정자가 ‘잉어 연못’의 조그만 섬에 위치하고 있어서, 당시의 생활과 궁정의 문화를 상상할 수 있다. ‘퐁텐블로 궁전’은 농민화가 ‘밀레’와 ‘사실 주의’ 화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던 ‘바르비죵’과 ‘루이 14세’가 시샘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보 르 비꽁트’ 성을 함께 방문하는 일정으로 잡는것이 좋다.
Bonne visite !!!! 알고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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