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2천의 퐁트브로 마을은 프랑스와 영국역사 속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수도원과 이곳에 안치된 두 영국왕의 무덤으로 유명하며, 13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은 유럽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그랑 무띠예Grand-Moûtier’ 뿐이다. ‘그랑 무띠예’는 중세 수도원의 전형적인 안마당 ‘쌩뜨 마리 Cloitre Sainte-Marie’로 불리는 회랑을 중심으로 좌측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인 ‘교회 Eglise abbatiale’, 수도원 부엌, ‘쎙 브느와 예배당 Chapelle Saint-Benoit’과 참사원 회의실, 16세기 증축된 간호병동이 현존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으로 길이가 84m에 달하는 ‘교회 Eglise abbatiale’의 내부는 대형기둥으로 받쳐있고, 19세기에 ‘비올레 르 뒥 Viollet-le-Duc’이 복원하면서 설치한 8개의 채광창이 높이 솟아있고, 난방으로 사용하였던 벽난로의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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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바닥에는 ‘플랑타즈네 Plantagenêts’ 가문의 묘소가 있는데, 영국왕 ‘헨리 2세 Henri II d’Angleterre’, 왕비 ‘알리에노흐 Alienor d’Aquitaine’, 둘 사이의 아들 사자심왕 ‘리차드 1세 Richard 1er Coeur de Lion’, 무능한 실지왕 ‘존 Jean’의 부인 ‘이자벨 Isabelle d’Angouleme’의 관 상판을 볼 수 있다. 중세에는 귀족과 왕족의 관 상판에 살아생전의 모습을 조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습이었기에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16세기 벽화가 있는 참사실, 로마네스크 양식 벽에 홍예문이 장식된 대형 공동식당, 아울러 수도원의 상징인 8각형 ‘에브로탑 tour d’Evraud’(12세기 부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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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트브로 수도원 역사

중세 봉건시대에 프랑스 서부 ‘앙주 Anjou’ 지방과 ‘브르따뉴 Bretagene’ 지방에서 ‘가난한 이들의 대변자’로 불리던 수도사 ‘아흐브리쌜 Robert d’Arbrissel’(1050-1117)의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따른다.

십자군 원정을 일으킨 장본인 ‘우르바노 2세 Urbain II’ 교황이 1096년 ‘앙제 Angers’를 방문하였을 때 알현하고, 교황의 설교자로 공식 임명되어 방랑 수행자로 설교를 하면서 떠 돌아다니는데, 그의 신앙과 설교자로서의 명성에 힘입어 수 많은 추종자들이 따르자, 데브로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불리던 ‘퐁뗀느 데브로 Fontaine d’Evraud’에 정착하여 노동과 기도를 중심으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건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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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들이 기거하였던 ‘그랑 무띠예Grand-Moûtier’ 승원과, 남자수사들의 ‘생 장 드 라비 Saint-Jean-de-l’Habit’ 승원이 같은 영지에 담장 하나로 구분된다. 나병환자들을 수용하던 ‘생 나자흐 Saint-Nazare’ 수도원과, 죄수들을 수용했던 ‘마들렌느 Madeleine’ 승원이 추가로 건설되어 총 4개의 수도원으로 구성되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 현재는 수녀를 위한 ‘그랑 무띠에’ 승원과 나환자를 수요하던 곳인 ‘생 나자흐’ 수도원 2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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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주 지방의 ‘풀끄 5세 Foulques V’ 공작이 수도원의 후원자가 되고, 그의 딸 ‘마띨드 Mathilde d’Anjou’가 2대 수도원장에 오르면서 지원을 받아 급성장하고, 또 다른 강력한 후원자 ‘플랑타즈네 Plantagenêts’ 가문이 영국 왕에 등극한 뒤에는 영국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수도원으로 번성하였다.

영국의 ‘플랑타즈네’ 왕조를 세운 ‘헨리 2세’와 왕비 ‘알리에노흐’는 두 아이의 교육을 이 곳에 맡기는데, 후에 영국 왕이 되는 무능한 실지왕 ‘존Jean’도 이곳에 의탁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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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인 ‘알리에노흐’의 사주로 아들들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하여 반역을 하는데 부자간에 치른 전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고, 기나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육체적으로 지친 ‘헨리 2세’가 1189년 ‘쉬농 Chinon’ 성에서 쓸쓸히 혼자 사망하자, 막강한 후원자의 예우로 이 곳에 묻힌다.

제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영웅이 되었던 아들 사자심왕 ‘리차드 Richard Coeur de Lion’가1199년 4월 6일 허무하게 사망하자, 자신들의 영토 ‘아키텐느’와 ‘쁘와뚜’ 지방의 경계에 위치한 퐁트브로 수도원을 ‘플랑타즈네’ 가문의 묘소로 만들 의향이던 어머니 ‘알리에노흐’의 결정으로 아버지 옆에 묻힌다. 자신이 몰아내려던 아버지 옆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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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상태에서 동생의 죽음을 보고 너무 슬퍼하던 ‘잔느 Jeanne’도 1199년 7월 11일 이 곳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여 묻힌다.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결혼하여 프랑스 왕비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였으며, 이혼 후 1152년 헨리 2세와 재혼하여 영국 왕비가 되었던 역사상 희대의 여걸 ‘알리에노흐’가 자신들의 노르망디 영지를 프랑스에 빼앗기는 것을 보면서 1204년 ‘쁘와티에 Poitier’에서 사망하자, 남편 ‘헨리 2세’와 큰딸 ‘잔느’, 아들 사자심 왕 ‘리차드 1세’와 나란히 묻히었고 그 후손들도 지속적으로 이 곳에 장례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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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년 ‘잔느’의 아들이 묻히었고, 영국의 무능한 실지왕 ‘존 Jean’의 부인 ‘이자벨 당굴렘 Isabelle d’Angouleme’의 유해가 아들 ‘헨리 3세 Henri III’에 의하여 1254년 이 곳으로 모셔져 온다.

하지만, 프랑스 서부와 북부, 영국을 차지한 막강한 후원자이던 ‘플랑타즈네’ 가문의 무능한 실지왕 ‘존’이 프랑스에 모든 영지를 빼앗기고, 지배권이 영국으로 축소되면서 퐁트브로 수도원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백년전쟁의 격동기를 지나면서 극심한 재정결핍으로 폐쇄될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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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조에 합병된 퐁트브로 수도원은 1491년 ‘부르봉 가문’의 여자 수도원장이 임명되면서 왕조의 재정적 후원을 바탕으로 수도원을 새롭게 개편하였고, 시설보수와 증축공사를 시행한다. 후임 수도원장도 ‘부르봉 가문’에서 선출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루이 15세 Louis XV’는 4명의 딸의 훈육을 수도원에 일임했고, ‘몽테스팡’ 부인은 퐁트브로 수도원에서 1년 정도 칩거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1790년 국유화된 수도원은 모두 분할되어 매각되면서 종교적 기능을 상실하고 폐허 상태로 버려졌던 이 곳을 1804년 ‘나폴레옹 1세’가 황제가 감옥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1963년까지 감옥으로 이용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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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트브로 수도원 복원과 문화

1975년 ‘서부 문화 센터 Centre culturel de l’Ouest’를 설립하고 지방정부의 참여로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퐁트브로 수도원의 역사적 중요함을 중시하면서도 현대에 걸맞게 다양한 ‘문화 리조트’로 변모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다양한 전시회, 연주회, 영화 상영과 컨퍼런스가 열리며, 수도원 내부에 중세시대의 야채와 주변지방의 재료만을 고집하는 독특한 신토불이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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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i-Bar’는 중세 건물에 현대적인 디자인감각으로 장식이 되어있으며, 식탁 전체가 터치스크린으로 되어 있어서, 간단한 음료를 마시면서 퐁트브로 수도원의 역사와 문화, 정보를 검색하거나 게임을 즐길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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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도원 내부에 나환자를 수요하던 곳인 ‘생 나자흐’ 수도원에는 고급 호텔로 이용하고 있는데, 수도원을 밤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르와르 고성 지대를 여행하면서, 여유가 된다면 퐁트브로 수도원을 방문하여 레스토랑에서 중세 식사를 즐기고,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금남의 여자 수도원을 거닐어 보시길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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