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의 진주 La perle de la Normandie>로 불리는 옹플뢰흐 도시는 사구가 끝나는 초원의 경사지에 밀집되어 있다. 이 경사지에서, 하구의 전경과 센느강 우안의 백색 절벽, 아울러 하구의 공업 단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옹플뢰르 항구 – 노르망디 지방의 진주 Honfleur [유튜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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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플뢰흐 도시는 항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중세의 군사항, 16세기 이래의 탐험가들의 정박항, 신대륙의 발견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상업항, 해적의 본거지 등등 다양한 항구의 역사를 지닌 여성적인 도시이다. 알고가자, 옹플뢰흐!!!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옹플뢰흐

또한,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찾던 항구 도시! 매우 활기찬 ‘옹플뢰흐’는 17-18세기의 ‘노르망디 지방‘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수 많은 갤러리들을 기웃거려보고, 도시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어슬렁 거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옹플뢰흐

어부들이 그 날 잡은 물고기를 파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방 음식인 홍합 요리에 ‘깔바도스‘ 또는 시드르 한잔을 곁들이면, ‘노르망디 지방’만의 독특한 항구 도시를 만끽할 수 있다. ‘옹플뢰흐’의 자랑인 ‘회색 새우 Crevette gris’를 전식으로……

옹플뢰흐

예술가들과 옹플뢰흐

센느강 하구의 경치와 현란한 빛으로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를 비롯하여 ‘인상주의’ 화가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고, 소설가들도 많이 찾았단다. 요즘은, 그림을 좋아하는 유럽 관광객들이 그 뒤를 잇고 있고, ‘꼬로 Corot’가 <하늘의 왕 Le roi des ceils>이라고 말하던 ‘부댕’ !!!!

옹플뢰흐

‘끌로드 모네’의 사부인 ‘부댕’이 태어난 곳 이다.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부댕 박물관 Musée Eugène Boudin’을 놓칠 수는 없다 !!!! 이 고장 출신인 ‘부댕’은 ‘옹플뢰흐’의 바닷가와 노르망디의 절벽, 항구들을 그리면서, ‘모네 Monet’와 ‘종킨드 Jongkind’와 더불어 그들이 모이던 장소의 이름을 따서 “생 시메옹 학파 Ecole de Saint-Siméon”를 만든다.

옹플뢰흐

사실주의’ 화가 ‘꾸르베 Courbet’, ‘바질 Bazille’, ‘피사로 Pissarro’, ‘르느와르 Renoir’, ‘세잔느 Cézanne’, ‘시슬리 Sisley’등의 화가들이 1864-1870년 사이에 드나들었단다.

옹플뢰흐

옹플뢰흐 역사

역사적으로, ‘옹플뢰흐’는 ‘백년전쟁‘ 당시 중요한 거점이었기에 1346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 Edward III’에 의하여 정복되지만, 1360년 ‘브레띠니 협약 Traité de Bretigny’으로 1369년 수복된다. 1503년 ‘곤느빌 Gonneville’의 브라질 상륙과 ‘드니 Jean Denis’가 이 곳을 출항하여 ‘뉴펀들랜드 Terre-Neuve’를 점유한다고……

옹플뢰흐

1517년 ‘프랑스와 1세 François I’가 가까운 ‘르 아브르 Le Havre’에 항구를 개설하여 많이 위축되었지만, ‘쇼벵 Chauvin’과 ‘뒤뽕 그라베 Dupont-Gravé’에 이어 1603년 ‘사무엘 드 샹쁠렝 Samuel de Champlain’이 이 곳에서 캐나다로 출항하여, 1608년 ‘퀘벡 Québec’을 세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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