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가장 아늑한 시민공원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들로 색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가까이에는 ‘팡테옹’, 소르본 대학 및 법대가 있고, 유명 고등학교가 있는 8학군(?)에 위치한 뤽상부르그 공원은 철마다 색다른 다양한 모습으로 파리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을 사로잡는다.

 
추천 여행 사람들이 나무 아래 그늘에서 쉬면서 꽃을 감상하거나 아이들이 보트를 빌려서 연못에서 놀고, 프랑스의 전통 쇠구슬 놀이인 ‘빼땅크’를 하기도 하고,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도 있다.

‘릴케 Rilke’, ‘보들레르 Beaudelaire’가 즐겨 찾던 산책 장소이던 뤽상부르그 정원은 도심속의 오아시스를 연상시키는 차분하고 여유 있는 공간으로, 관광객이 아닌 진짜 파리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상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뤽상부르그 궁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 Marie de Medicis’에 의해서이다.

 

뤽상부르그 역사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를 볼 때 자주 언급되는 ‘메디치’ 가문 출신인 ‘마리 드 메디치’는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시집을 왔는데…… 당시 왕궁으로 쓰이던 ‘루브르 궁전’에서의 생활에 즐거움을 찾지 못한 그녀는 1612년 ‘앙리 4세’가 서거하자 ‘프랑소와 드 룩상부르그 Francois de Luxembourg’의 성과 그 주변을 사들여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려 했단다. 이탈리아 문화가 훨씬 앞서 있었으니 개발도상국이던 프랑스에 시집 온 것을 한탄하며, 1615년 성을 사들인 왕비는 건축가 ‘클레망 Clement’을 시켜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플로렌스’의 ‘피띠 Pitti’ 궁전을 본 따서 성을 개축하도록 하였단다.

1625년 아직 성을 완공하지 않은 상태에, 이곳에 입주한 왕비는 당대의 거장 ‘루벤스 Rubens’를 초청, 생애 중요한 일화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부탁하여,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24점의 그림이 성안을 장식하였다. 뤽상부르그 궁에 애착을 가지고 만년이나마 고향의 분위기를 느껴보려 했던 왕비는 5년 만에 권력 암투에서 밀려, 친 아들인 ‘루이 13세’의 명령으로 독일의 ‘쾰른’으로 유배를 가고 그 곳에서 사망한다고…..

뤽상부르그 궁이 완성된 것은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635년에 건축가 ‘쟈크 르메르시에 Jacques Lemercier’에 의하여 완공된다. 왕비가 사망하자 성의 소유권이 아들인 국왕 ‘루이 13세’에게 돌아가고, 왕은 정원을 부분적으로나마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18세기에 이르러 시민들 사이에 산책 및 연애 그리고 사색의 장소로 커다란 인기를 누리게 된다.

한편 ‘루이 13세’의 동생인 ‘가스통 도흘레앙 Gaston d’Orleans’ 공과 그의 딸이 성의 소유주가 되었고, ‘프랑스 대혁명‘ 때까지 왕실 가족과 귀족들이 소유하였었다. 1793년부터 혁명 정부가 대 숙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수 많은 정치범들을 수용하기 위한 감옥으로 사용된다.

프랑스 대혁명‘이 끝나가는 1795년에는 집정관 정부의 제1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 1세’가 자신의 거처로 사용하다가, 1800년 ‘튈르리 정원 Tuileries’에 인접한 튈르리 궁전으로 옮긴 후부터 뤽상부르그 궁은 상원 건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7월 왕정 때는 317 명의 상원 의원들이 동시에 회의할 수 있는 거대한 회의실이 마련되었다.

1835년 ‘지조흐 Gisors’는 정원 쪽의 입면을 증축하고, 1886년부터 1937년까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던 ‘오랑즈리 Orangerie'(온실)을 세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제2 제국이 들어서자 ‘뤽상부르그 궁’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로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듯한 이곳에서 황제 자신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대 무도회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편 뤽상부르그 궁은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사령관이 집무를 보는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그 때문에 파리 탈환 전투시에는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801년에 이르러 ‘샬그랭 Chalgrin’에 의하여, ‘옵세르바투와르 Observatoire 분수’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정원이 완성되었다. 지구를 나뉘는 자오선이 지나가는 곳이 바로 이 곳!!!  파리 자오선!!!

 

뤽상부르그 연못과 조각

뤽상부르그 궁이 지어질 당시에는 이탈리아 식 분수와 동굴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졌고, 화려했던 옛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1861년 ‘살로몬 드 라 브로스 Salomon de la Brosse’에 의하여 ‘메디치 분수’가 완성된다. ‘마리 드 메디치’의 이름을 딴 이 분수 주변의 사색적인 분위기에는 흑백 사진이 잘 어울린다.

여름철 더운 날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여 이곳으로 몰려와서 독서를 하거나, 관광객들은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궁전 앞 부분의 연못 주변에는 프랑스 왕비들과 유명한 여인상들이 줄지어 서있고, 공원 곳곳에는 문인들, 예술가들의 동상이 있어서 19세기 조각의 야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유명한 것으로 꼽히는 것이 ‘들라크로와’의 동상이다. ‘달루 Dalou’의 작품인 이 동상 밑에는 ‘들라크로와’ 자신의 작품인 ‘예술, 시간, 영광’이라는 조각 작품이 놓여있다. ‘죠르즈 상드 Georges Sand’,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모파상 Guy de Maupassant’, ‘스땅달 Stendhal’등의 유명인들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1886년 조각가 ‘바르똘디 Barholdi’가 만든 오리지널’ 자유의 여신상이 비둘기 똥을 맞으며 서 있다가, 복원을 위하여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져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에펠탑’을 건설한 ‘귀스타브 에펠 Gustave Eiffel’이 구조 부분에 참가하여 오리지널 작품을 크게 확대하여 보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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