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와르 강변의 ‘상트르 Centre’ 지방에 위치한 인구 약 200 여명의 작은 마을 ‘라바흐댕’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르와르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古城) 가운데 하나로, ‘방돔 Vendôme’ 시와 ‘샤또덩 성 Château de Châteaudun’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선사시대의 돌도끼와 화살촉을 비롯한 신석기 시대의 각종 유물들이 출토되면서 일찍이 토착민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갈로 로망 시대의 문화유적들이 보존된 유서 깊은 마을은 백묵가루처럼 하얀 언덕과 자연적으로 생긴 석회암 동굴, 폐허로 남은 옛 고성의 망루가 르와르 강변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울창한 숲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폐허의 고성이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 프레스코화가 잘 보존된 교회와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과 목골가옥, 고딕양식의 석조다리 덕분에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 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에 선정되었고, 1900년대부터 화가들이 즐겨 찾는 숨은 관광명소이다.

라바흐댕

평화롭게 흐르는 르와르 강에 드리워진 고딕양식의 오래된 다리를 건너 라바흐댕 마을로 들어서면, 이 지역을 한 눈에 내려보는 듯한 형상으로 우뚝 서있는 방어용 성채가 폐허로 남아있는 옛 성터, 잔존하는 성벽, 방어용 탑과 아직도 당당한 위용을 보이는 동종을 보노라면 신비로움마저 준다. 4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난공불락의 요새를 상상하며 시간여행을 즐겨보자.

라바흐댕

라바흐댕 성 Château de Lavardin 역사

라바흐댕 영주의 명으로 높은 둔덕에 목조탑과 영주의 저택만 있던 소규모 요새로11세기 초에 처음 건립되어, 1130년경 ‘방돔’ 백작의 영지에 합병되면서 라바흐댕 성은 돌로 축성된 성벽과 견고한 망루들이 첨가되면서 강력한 요새로 탈바꿈한다.

노르망디에 정착하여 프랑스 전역을 노략질하던 해적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10세기경부터 요새화 하기 시작하고 11세기에 돌로 건설된 최초의 동종(원형탑)을 건설한다.

라바흐댕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와 결혼하여 15년 동안 왕비로 있다가, 제 2차 십자군 원정 길에서 서로 갈라선  ‘아키텐의 알리에노흐Aliénor d’Aquitaine’가 1152년 이혼하고, 8주 후 앙주 지방과 노르망디 지방의 영주이던 ‘영국의 헨리 2세 Henri II d’Angleterre’와 결혼하는데….. 영국 ‘플랑타즈네Plantagenet’ 왕조의 시작 !!!

행운인지 불행인지, 2년 후 ‘헨리 2세’가 어머니의 왕위 계승권을 받아 영국의 왕으로 등극하면서 역사상 유례없이 두 나라의 왕비를 지낸 ‘알리에노흐’의 아들인 ‘사자심왕 리처드’가 라바흐댕 성에 주둔하며, 프랑스 왕 ‘필립 오귀스트Philippe Auguste’와 전투를 벌인 곳이다.

라바흐댕

1380년 가까운 ‘방돔 Vendôme’ 도시의 영주 ‘장 7세’가 라바흐댕 성을 더욱 보강하여 재건하였고, 백년전쟁의  ‘샤흘르 7세’ 왕과 그의 애첩인 ‘아그네스 소렐 Agnès Sorel’이 1448년 라바흐댕 성을 거점으로 삼아 전투를 하면서 ‘르망 Le Mans’의 영국군을 몰아내어 휴전협정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카톨릭 귀족인 ‘기즈 Les Guise’ 가문이 ‘샤를 9세’ 왕의 모후인 ‘까트린 드 메디치 Catherine de Medicis’와 결탁하여 신교도를 탄압하면서 불붙은 종교전쟁(1562-1598) 당시 라바흐댕 성은 방돔의 공작이자 신교도들의 수장인 ‘앙리 드 부르봉 Henri de Bourbon’(1553-1610)의 소유였기에, 구교는 그를 견제하기 위해 성을 수 차례 공격한다.

라바흐댕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신교와 구교간의 대립을 종식시키면서 프랑스 왕위에 오른 ‘앙리 4세’(재위 1589-1610)는 구교도들이 라바흐댕 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군대를 보내어 함락시키고, 자신의 영토내부에 난공불락의 요새를 꺼림칙하게 생각한 왕의 명령으로 1589년 라바흐댕 성을 파괴하고, 지금도 16세기 무너져 내린 모습 그대로의 폐허 상태로 남아있다.

라바흐댕

무너진 돌무더기는 주민들이 주택건설에 이용하며 역사에서 수 백 년 동안 잊혀지다가 나폴레옹 3세 시절, ‘라바흐댕 성’과 파리 북쪽의 ‘피에르퐁 Pierrefonds’ 고성 중에 하나를 선정하여 복원을 하는데, 고민을 하던 ‘비올레 르 뒥’이 ‘피에르퐁’ 성을 선택하면서 ‘라바흐댕’ 성은 폐허 상태로 그냥 버려둔다. 오히려 복원하지 않은 것이 잘 된 듯……

라바흐댕

폐허가 된 요새

라바흐댕 마을과 르와르 강을 굽어보는 언덕의 바위 위에 튼튼하게 자리잡은 중세고성은 1945년 11월 21일부터 프랑스 문화재로 등재되었고, 복원건축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더더욱 시간으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라바흐댕12-13세기에 건축된 이중 성벽으로 보호되는 이 곳은 작은 성과 망루들로 구성되어 실질적인 방어역할을 하던 곳으로, 성과 외부를 연결하는 도개교와 성문을 보호하는 튼튼한 성벽과 망루가 남아 있다. 화살을 쏠 수 있는 총안과 대포를 배치하여 방어하던 성문을 통과하면 마주 보이는 윗 단의 성벽을 받치는 바위 벽에 문이 보이는데, 포도주 저장고와 창고, 주거로 이용되던 곳이다. 대장간과 부엌, 창고, 우물 등의 부속건물 흔적이 보인다.

라바흐댕

두 번째 단에는 숙소와 병기창고, 근위병들의 막사와 동종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고, 최 상단에는 한쪽이 무너져버려 내부가 훤히 보이는 12세기의 동종이 있다. 길이 14미터에 폭7미터, 높이 26미터의 동종의 아랫층에는 고딕양식의 나선형 계단이 흔적만 남아있고, 천정의 궁륭 흔적도 보인다. 동종의 2층은 백합꽃  장식과 가장 큰 벽난로가 있던 곳으로, ‘샤흘르 7세’가 영국군과  ‘라바흐댕 휴전협정’을 맺은 곳이다.

라바흐댕

천정이 높은 3층에는 고딕건축의 특징인 궁륭볼트가 보이고, 부르봉 가문과 방돔 가문이 결혼으로 맺어지면서 합쳐진 두 가문의 문장이 돌 벽에 새겨져 있다. 4층은 각각 벽난로를 갖춘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동종의 최고 위쪽에서 바라보는 르와르 강변의 파노라마는 절경이다. 강추 !!!

라바흐댕

로마 예술의 보고, 생 즈네 교회 Eglise Saint-Genest

폐허가 된 고성의 맞은편에 수수한 교회는1040년경에 시작되어 고딕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서쪽의 사각형 종탑에 교회의 정문을 두는 독특한 형식과 벽 속으로 들어간 로마양식 반원아치를 갖는 문은 15세기 앙리 4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라바흐댕

여유를 갖고 교회를 한 바퀴 돌면서 외부 벽을 찬찬히 살펴보면, 영광의 예수와 부활하는 예수의 부조를 비롯하여, 작은 기둥들과 뱀을 닮은 이무기, 찌푸린 머리모양의 까마귀 조각과 여러 가지 장식들이 벽에 박혀있는데, 아마도 초기 교회를 재건축하면서 조각들을 재사용한 것이리라….

라바흐댕

내부에는 각종 식물의 모습과 상상의 동물들로 장식된 사각형 기둥 위에 5개의 거대하며 완전한 반원 아케이드가 본당의 천정을 구성한다.

라바흐댕

반구형 천정과 원형 기둥으로 구성된 성소를 비롯한 교회 내부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 세족식, 기도하는 예수와 성자들의 모습을 그린 프레스코가 볼 만하다. 초기 교회가 지어지고 12-15세기까지 점진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현재 보이는 벽화들은 20세기 초반 ‘필떼Pilté’ 수사에 의하여 복원된 것이다.

라바흐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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