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대학이 위치한 ‘성녀 쥬느비에브’ 언덕에 높이 솟은 돔 지붕의 ‘팡테옹 Pantheon’은 프랑스를 빛낸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는 전당인데,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까? 근대역사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기는 위인들을 살펴보면 프랑스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추천 여행 특이하게도, 4명의 이탈리아인과 네덜란드인 1명, 스위스인 1명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1세에 의하여 팡테옹에 묻힌 경우도 있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대 웅변가 ‘미라보 Mirabeau’와 피의 공포정치를 하다가 목욕탕에서 암살당한 ‘마라 Jean-Paul Marat’는 영광스럽게 묻히었다가 후에 재평가를 받아서 퇴출된 사례로 꼽힌다.

 

역사

5세기경 유럽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훈족이 파리로 진격할 때, 성벽을 보강하고 단결하여 침입을 막도록 이끌었던 ‘성녀 쥬느비에브’의 신전이 이 자리에 세워졌다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폐허 상태로 있었다. 1744년 ‘매츠 Metz’를 순시하던 ‘루이 15세’가 갑작스런 와병으로 고생하면서, 만일 이 병이 낫게 해주면 파리의 수호성인 ‘성녀 쥬느비에브’를 기리는 거대한 성당을 지어 헌납하겠다고 서원기도를 했다고 한다. 기도 덕분으로(?) 완쾌한 ‘루이 15세’의 명으로 건축가 ‘수플로 Soufflot’에 의해 1758년부터 공사가 시작되고, 평소 중세의 고딕 양식과 고대의 그리스 양식에 관심을 보이던 ‘수플로’는 이 두 양식을 결합한 절충주의 형식으로 성당을 설계한다. 완공을 보지 못하고 ‘수플로’는 1780년에 사망하고, 건축가 ‘롱들레 Rondelet’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1790년에 완공된다.

 

성당에서 무덤으로

이제 막 완공된 ‘성녀 쥬느비에브 성당’은 프랑스 대혁명 세력에 의하여 공화국에 공헌한 위인들의 납골당으로 바뀌면서,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들을 모시는 신전이라는 의미의 ‘팡테옹’으로 이름이 바뀐다.

1791년 혁명가 ‘미라보 Mirabeau’가 이곳에 최초로 묻히면서 건물 앞면에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황금빛 문구가 새겨진다. ‘나폴레옹 3세’때 본래의 성당 기능으로 돌아가지만, 1885년 대 문호이자 정치가인 ‘빅토르 위고 Victor Hugo’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이곳은 현재까지 위인들의 묘지로 사용되고 있다.

 

외부

‘팡테옹’은 위에서 보면 가로 세로의 길이가 비슷한 그리스 식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십자가 가운데에 하늘로 솟아 오르는 돔은 높이가 무려 83 미터에 달한다. 32개의 기둥으로 떠 받쳐진 듯 보이는 돔은 구조를 보강하기 위하여 3중으로 지어진 것이다.

‘팡테옹’ 정문은 로마의 ‘팡테옹’을 연상시키는 22 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들이 있으며, 그 위로 삼각형의 부조는 ‘다비 당제르 David d’Angers’의 작품으로 조국을 빛낸 이들에게 공화국의 여신이 자유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씌워주며 프랑스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조각이 보인다.

공화국 여신의 왼편에는 프랑스를 빛낸 과학자와 문학가,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를 비롯한 철학자, 화가 ‘루이 다비드’를 포함한 예술가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오른편에는 역사를 상징하는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미래를 짊어질 최고의 인재들인 ‘에꼴 폴리테크닉크 École polytechnique’ 학생들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내부

‘팡테옹’은 화려한 조각과 부조, 벽화는 방대하고 다양한데, 기원전 로마가 골 족의 땅을 식민지화 만들 때 로마의 시저 군단에 끝까지 저항하던 골 족의 영웅 ‘배흐생제토릭스 Vercingétorix’의 모습과 훈족으로부터 파리를 지킨 ‘성녀 쥬느비에브의 삶’이란 제목의 거대한 벽화가 보인다.

또한, 공화국을 건설하는데 이바지한 위인들의 조각, 프랑스 대혁명 전사들에게 바치는 헌정사가 새겨져 있으며, 거대한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에베흐 Hévert’ 작품의 모자이크화가 걸작이다.

 

푸코의 진자

돔에 매어 달린 푸코의 진자는 제 2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역사와 과학에 빠져있던 ‘루이 나폴레옹 Louis Napoléon Bonaparte’의 허락으로, 1851년 3월 물리학자 ‘푸코 Léon Foucault’가 지구의 자전운동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고안해 낸 장치이다. 팡테옹의 돔에 길이 67m의 강선을 내려뜨려 28㎏의 추를 매달고 흔들면, 진자에 작용하는 힘은 중력과 실의 장력뿐이므로 동일한 선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진동시키면 자전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선을 그리며 돌게 된다. 이는 지면이 회전하는, 다시 말해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 이후로 지구가 자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반인들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제작된 최초의 장치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같은 해 12월 2일 쿠데타로 세워진 제 2제정이 팡테옹을 성당으로 이용하면서 푸코의 진자는 철거된다. 1996년부터 팡테옹의 돔 천장에서 내려오는 67m 길이의 줄에 매달린 지름 20 cm, 무게 28 kg의 금도금한 진자는 ‘자크 프와레 Jacques Foiret’가 제작한 것으로, 팡테옹 상단부분의 보수공사를 위하여 철거되었다가 얼마 전 다시 설치되어 운동을 시작하였단다. 강추!!!

 

지하 납골당에 모셔진 위인들

‘미라보’(퇴출), ‘볼테르’, ‘루소’ 등의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유 사상가들과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등의 문호 그리고 ‘퀴리 부부’ 등의 과학자들을 중요 인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1995년 ‘소 묘지 Sceaux’에서 이장된 ‘마리 퀴리’와 ‘삐에르 퀴리’는 이곳에 묻힌 위인들 중에 두 명 모두 영웅으로 인정된 유일한 부부이다.

여자로서 처음으로 팡테옹에 묻히는 영광을 차지한 ‘소피 베흐틀로 Sophie Berthelot’는 남긴 업적을 평가 받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남편덕분에 묻히었단다. 위대한 화학자 ‘마흐슬랭 베흐틀로 Marcellin Berthelot’가 사랑하던 부인이 사망하자 너무 슬퍼한 나머지 1시간 만에 부인을 따라 사망하자, 두 사람을 갈라 놓을 수 없다고 결정하고 합장을 하였다고….

‘빅토르 위고’와 동 시대의 인물이라서 빛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소설 ‘철 가면’으로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알렉상드르 뒤마‘가 ‘자크 시락’ 대통령의 지시로 이 곳에 이장되었고, 최근에는 ‘올랑드 Hollande’ 대통령의 지시로 4명이 이장되는데, 남녀평등을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두 명의 여성이 위인들의 전당에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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