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교량 위에 집을 짓지 않은 순수한 교량목적의 “새로운 양식의 다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역설적으로, 파리의 센느강에 건설된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410 살!!!

‘아홉의 다리’라고 번역된 우리나라 관광 가이드 책은 ‘Nef’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사전적으로 해석을 하였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 16세기까지, 파리의 센느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치한 ‘씨떼섬 Île de la Cité’을 지나야만 하였다는데, 이미 설치된 4개의 다리는 너무 낡았고, 파리 인구가 증가하면서 늘어난 통행량을 수용하기 위하여, 새로운 다리 건설이 필요하게 되었단다.

1577년 ‘앙리 3세 Henri III’에 의하여 센느강의 다섯 번째 다리인 퐁뇌프 다리 건설 공사가 시작되어, 30년이 지난 1607년 ‘앙리4세 Henri IV’ 때에 완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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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 다리

유럽에 ‘흑사병’이 번져 인구의 절반을 앗아간 사건 이후로, 당시의 의사들은 도시에 바람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갖은 전염병이 생긴다고 왕에게 전언하자, ‘앙리 4세’가 센느강의 다리 위에는 집을 짓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하여, 최초로 가옥이 없는 순수한 교량 역할의 새로운 양식으로 완공된 것이다.

센느강 좌안에서 시작하여 ‘씨떼 섬’의 끝자락을 지나, 센느강 우안으로 연결되는 퐁네프 다리의 교각을 유심히 보면 385 개의 사람 얼굴이 다리를 받치고 있는데 같은 인상이 하나도 없다.

퐁네프 다리

20 개의 반원형 돌출부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서, 건설 초기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산책과 사교의 장소로 인기가 높았단다.

다리 중앙의 광장에는 ‘앙리 4세’의 부인으로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시집온 ‘마리 드 메디치 Marie de Medicis’의 동상이 서 있었지만, ‘프랑스 대혁명‘의 격동기인 1792년에 파괴되었고, 1818년에 ‘프랑스와 프레드릭 레모’가 만든 ‘앙리 4세’의 기마동상이 서 있다.

퐁네프 다리

동상 뒷편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섬의 끝자락이 센느강과 맞닿고 있는 ‘베흐 갈랑 Le square du Vert-Galant’ 광장에서 조용히 휴식을 하고 있는 파리의 연인들을 볼 수 있는데, 이 광장은 중세 시대에 마녀들을 처형하거나 중죄인들을 화형에 처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으며, ‘프랑스 대혁명‘ 이후부터 이곳은 점차 시민들의 휴식처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란다.
찰랑거리는 센느강 물결과 바람에 흩날리는 수양버들 사이로 세계 각국에서 파리를 여행 온 사람들이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이 운치를 더해준다. ‘퐁네프의 연인’처럼… 또는 ‘파리의 연인’처럼…
퐁네프와 예술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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