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따뉴 지방‘의 ‘모르비앙 만 Golf du Morbihan’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야외극장처럼 위치한 반느 도시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프랑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숨은 명소이다. 아름다운 목골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운하에는 배들이 좌우로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땅과 하늘과 바다가 이루는 풍경이 백미!!! 광장 주변의 꾸불꾸불한 좁은 골목길과 역사적으로 귀중한 유적 물들……

 

반느 역사 Histoire

대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중세도시를 보호하는 고즈넉한 모습의 성벽이 드물게 그대로 간직된 곳… ‘골 Gauloise’ 족의 수도이었고, 대대로 ‘주교좌 主敎座’이며 ‘브르따뉴 공작 Ducs de Bretagne’이 가장 좋아하던 도시 이었단다.

반느 안느 브르따뉴

‘브르따뉴 공작’의 유일한 혈육인 ‘안느 드 브르따뉴 Anne de Bretagne’가 평화를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의 병약한 왕 ‘샤흘르 8세 Charles VIII’와 정략결혼을 하는데, ‘브르따뉴 지방의 주인은 프랑스 왕이 아닌, ‘안느 드 브르따뉴’의 소유로 남는 조건으로……

안느 드 브르따뉴 샤흘르 루이비록, 영토 확장을 위하여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였지만, 절름발이 왕비를 진정으로 사랑한 ‘샤흘르 8세’…. 불행하게도, 두 사람의 보금자리인 ‘앙브와즈 성’을 건설하는 중에 낙마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평소 사촌형수인 왕비를 사모하던 ‘루이 12세 Louis XII’가 왕이 되자, 자신의 첫 부인과 이혼하고,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하여 브르따뉴 공국과 프랑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한다. ‘안느 드 브르따뉴 Anne de Bretagne’는 현숙함과 헌신적인 내조로 존경 받는 왕비로 살다가, 1514년 두 딸을 남기고 37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큰 딸 ‘끌로드 드 프랑스 Claude de France’에게 ‘브르따뉴 지방‘이 유산으로 남겨지는데, 프랑스의 ‘르네상스‘ 문예부흥을 일으키는 ‘프랑스와 1세 Francois I’와 결혼하면서, 지참금으로 브르따뉴 공국을 바친 것 이다.

반느

1532년 ‘브르따뉴 지방‘이 프랑스의 영토로 완전 합병되는 것을 선언한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평화를 축하하는 축제가 열렸었다고……

 

운하 Le Canal

모르비앙 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 도시는, 19세기까지 어부들의 조업이 활발하던 곳 일뿐만아니라 해상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다. 성곽도시 안으로 무역상품들, 특히 포도주의 유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생 뱅상 Saint Vincent’ 성문과 항구를 연결하는 운하를 1624년 건설한 것이라고……

반느

 

성벽 Les Remparts

로마제국 시대부터 세워져 1,5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외곽 성벽은, 이 도시 경관의 핵심요소이다. 3세기 말경에, 5헥타르 크기의 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벽을 만든 것 이란다.

반느

중세 봉건시대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초기도시를 중심으로 도시가 팽창하면서, 오히려 도시성장 장애요소로 변하자, 브르따뉴 공작 ‘쟝 4세 Jean IV’의 명으로 1370-1390년에 성벽 확장공사를 하여, 성벽 내부의 도시면적을 약 두 배 정도로 키운것 이다. 15세기에 대포를 발사할 수 있는 포문과 해자를 설치하여, 방어 시스템을 강화한 모습이 남아있다.

반느

 

쌩 뱅상 성문 Porte Saint Vincent

‘쌩 벵상 문 Porte Saint Vincent’을 통과하여, 시간이 멈춘 중세의 도시로 들어가보자. 1928년 ‘프랑스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된 문으로, 현존하는 6개의 성문 중에 아마도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단다. 운하항구에 위치한 ‘여행자 정보센터’에서 지도를 구한 후, 이 중세도시를 여행 시작하기에 좋은 지점이다.

반느

운하와 연결되는 도시의 남쪽에 1620-1624년 성벽을 쌓고 이 성문을 만들지만, 바다가 범람하여 파괴된 것을 1747년 ‘Duchemin’이라는 기술자에 의하여 ‘바로크 Baroque’ 양식으로 재 건설된 모습이 남아있는 것이란다.

 

리스 광장 Place des Lices
17세기의 건물들을 지나면, 1532년 합병을 기념하여 기사 창시합이 열린 ‘리스의 광장 Place des Lices’에 다다른다. 한 귀퉁이에는 이 도시의 수호성자 ‘생 뱅상 훼리에 Saint Vincent Ferrier’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고, 골목길로 조금 들어가면 이 성자가 1419년 사망한 집이 있단다.

반느

반느와 부인 Vannes et sa femme

15세기에 지어진 목골가옥이 즐비하게 늘어선 길의 한 모퉁이에, 옛 복장을 한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누구를 모델로 조각한 것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6세기에 만들어 진 것이라는데….지나는 행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이 조각상이, 이제는 이 도시의 상징으로, 모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포토라인!!!  찰카~ㄱ!!!

반느

 

쌩 벵상 훼리에 성자 Saint Vincent Ferrier

반느 성자1350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17세에 ‘도미니끄 Dominicains’ 수도원에 들어간다. 종교이론에 밝은 이 수도승이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전파하며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여행할 때 수 많은 추종자들이 따른다.

이교에서 내려온 대중들의 믿음과 기독교적인 신앙을 혼동하는 주민들을 계몽할 목적으로, ‘쟝 5세 Jean V’ 브르따뉴 공작이 도미니끄 파의 위대한 수도사이자 이론가인 ‘생 뱅상 훼리에 Saint Vincent Ferrier’를 초청하여, 1418년 68세의 나이로 ‘브르따뉴 Bretagne’ 지방에 도착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영토전쟁으로 생활은 궁핍하고, 유럽에 번진 죽음의 병 ‘페스트'(흑사병)와 기근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을 계몽하다가, 1419년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이 도시에서 숨진다. ‘베드로 성당 Cathédrale Saint-Pierre’에 유해가 안장되고, 1455년 ‘Calixte III’ 교황에 의하여 ‘시성 Canonisation’ 된다고……

 

베드로 성당 Cathédrale Saint-Pierre

언덕 위에 세워진 ‘베드로 성당 Cathédrale Saint-Pierre’은 이 중세도시에서 유독이 눈에 띄는 곳으로, 꼭 들려볼 가치가 있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1419년 이 도시에서 사망한 ‘생 뱅상 훼리에 Saint Vincent Ferrier’ 성자의 유해를 이 성당에 모시자, 전 유럽에서 몰려드는 순례행렬을 맞이하기에는 너무 비좁게 된단다.

반느

1450 – 1520 사이에 대대적인 공사를 통하여,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어우러진 외관 및 본당을 크게 넓히고, 버팀벽을 설치하여 측랑을 증축하는데, 세월이 흘러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건물의 상태가 악화되어 원형을 보존하기 보다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건축가인 ‘비올레 르 뒥’에 의하여 재건된 것 이라고…..

 

빨래터 Lavoir de la Garenne

아름답게 정리된 정원 끝에 위치한 이 빨래터는 이 도시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곳. 외관상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817 – 1821년 사이에 건립된 것이다. 목골구조에 기와 지붕을 얹힌 건물은 굽이치는 개울을 따라서 휘어졌으며,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 쉽게 개울물에 닿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고, 빨래판도 만들어 놓았다.

반느 빨래터

 

유람선 Les croisières

‘모르비앙 반도 Golfe du Morbihan’를 잘 관광하려면, 차로 한 바퀴 도는 것 보다는 유람선 이용하기를 강추!!!! 도시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옛 항구에 유람선 회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섬들 사이를 지나치면서 구경하거나, ‘수도사들의 섬 Ile aux Moines’에 잠깐 내리는 프로그램 등을 추천하고 있으니 각 회사별로 비교하여 선택하면 좋을 듯……

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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