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게 풀을 뜯는 가축들을 보면서,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은 ‘프랑스의 스위스’라고 할 정도로, 구릉지대가 연속되며 평화로움과 정겨움을 느끼게 해 준다. 12 세기 수도원의 모습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하고, 얼마전 ‘프랑스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되어,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숨은 명소이다. 우리나라 단체 패키지 여행객에게는 아직은 먼~~~곳!!!!
퐁트네 수도원 역사 Histoire
추천 여행 1118년 ‘베르나흐 Bernard’ 성자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프랑스에서 ‘시토 수도회 Cisterciens’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이다. 청빈을 주창한 ‘베르나르’ 성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든 장식과 문양을 배제한 매우 검소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수도원은 16세기까지 번성하다가 30년 종교전쟁 이후 침체하였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제지 공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아름다운 건물을???? 대혁명 당시에는 귀족과 성직자 계급이 국민들의 공적이 되면서, 종교 건축물들이 파괴되거나 용도 변경되었다고….. 이 때에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도 봉재공장, 건초더미 창고로 이용되었었다니까!!!!
퐁트네 수도원 교회 Eglise abbatiale
‘노르비치의 주교 Evêque de Norwich’이면서 ‘퐁뜨네 수도원’에 피신하였던 ‘에브라흐 Ebrard’의 도움으로 건설되었다는데, 프랑스에서 ‘시토회’ 수도원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며, 가장 잘 보존된 곳 이다. 장식을 배제한 단순미가 특징인 십자형 구조의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길이 66 미터, ‘트란샙트 Transept’의 길이 30 미터의 건물로 두 개의 기초용 축대 위에 세웠다.
자연 채광으로, 번지듯 스며드는 빛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의 분위기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고, 한국 고 건축의 특징인 은은한 반사광이 성당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제단 오른 편에는 14세기의 영주 ‘멜로 데쁘와스 Mello d`Epoisses’와 부인의 생전 모습이 관 뚜껑에 조각된 무덤이 있다. 석조로 된 제단화는 13세기 ‘고딕양식‘의 성당에서 옮겨온 것이고, 오른 쪽에 나무 계단을 오르면 옛날 수도승들의 침실을 구경할 수 있다.
수도승들의 공용 침실 Dortoir
공동침실은 당시 40-50 명의 수도승들이 낮은 칸막이로 둘러싸인 땅 바닥에 지푸라기 매트(?)를 깔고, 그 위에 한 겨울철이라도 난방 없이 잠자던 곳이다. 노동과 기도, 잠, 새벽 4시에 기상하자마자 곧 바로 기도실로 갈 수 있도록 옷을 입은 채로 취침하였다. 알몸을 드러낸 목조 들보는 15세기 작품이고, 프랑스 건축에서 지붕에 ‘기와 Tuile’를 앉히는 방법을 이해할 수있다. 엄격한 일과에 따라, 시간을 통제하는 쇠종이 천장에 매어 달려 있다. ‘시토회’ 수도승들의 고행과 절제를 느껴보자!!!! 편안한 것을 금기로 여겼다고…..
안뜰 회랑 Cloître
외부와 완전 차단된 안뜰의 ‘회랑 Cloître’은 명상과 기도를 위한 산책로로 이용되었다. 낮게 깔린 로만 양식으로, 총 250개의 크고 작은 기둥들로 받쳐져 있는 ‘회랑’의 열주들은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풍긴다. 별천지!!! ‘시토회’ 수도원의 특징은 사회로 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참선과 고행을 추구하였기에 이러한 내부 공간이 필요하였다. 노동을 끝내고 휴식하면서…..
참사회의 실 Salle capitulaire
수도승들이 매일 모여 교단 문제와 교리를 학습했던 곳으로 ‘교차 홍예아치 Ogive Croisée’ 구조의 현란함과는 달리 의외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준다. 천장은 첨두식으로(12세기 중반) 예전에는 4각이었으나 동쪽 3개의 기둥보는 없어졌다고 하는데, 반사광에 알몸을 드러낸 구조의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필사본 실 Scriptorium
참사회의 실과 아름다운 아케드로 연결되어 있는 이 곳에서 수도승들이 성서를 직접 손으로 베끼는 작업을 하였다. 오른쪽 문을 열면 겨울철 부엌 이외에 유일하게 난방용으로 불이 허용되던 휴게실로 연결된다. 추운 겨울철에 필사본을 베끼면서 꽁꽁 언 손을 녹일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라고… 난방은 사치에 속한다나????
대장간 Forge
수도원 바깥에 흐르는 냇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을 얻기 위하여, 냇가에 평형되게 세워진 대장간은 중세 시대의 농기구 제작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자급 자족을 하던 당시 ‘시토회’의 원칙에 따라 이곳에서 수도승들이 직접 연장을 만들던 곳이라고….. 중세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아이들 교육 자료로도 유용힐 듯. 또한 ‘고딕 건축‘의 특징인 ‘버팀벽 Arc-boutant’의 출현을 예고하는 듯한 버팀벽이 대장간 건물을 받치고 있다.
퐁트네 수도원 정원 Jardin
수도원 후면에 조용한 분위기의 정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수도승들이 약초를 키우던 밭, 자급자족의 농사를 짓던 채마밭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 ‘규엘 공원 Parc Guel’에서 보는 모티브들이 축소되어, 고색 창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은 웬일????? 표현주의의 대가인 ‘가우디’가 ‘퐁트네 수도원’의 정원을 보고 모방한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 여러분께서 비교해 보시길….. 시간으로의 여행!!!!!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