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ais en vain, toujours en vin 헛된 것은 없다, 항상 와인을!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마을은 ‘부조’(Vougeot)이다. ‘본 로마네’(Vosne-Romanée) 마을과 ‘샹볼 뫼지니’(Chambolle-Musigny) 마을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이 지역 땅을 증여 받은 ‘시토’(Citeaux)회 수도승들이 1111년 ‘피노 누와’(Pinot noir) 품종의 포도를 심는다. 아주 가까운 곳이라도 포도밭의 위치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수도승들이 1330년경 포도밭 경계에 돌담을 세우는데, 이렇게 돌담으로 둘러싸인 포도밭을 ‘끌로’(Clos)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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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유수’(1309-1377)가 시작되는 ‘클레멍 5세’(Clément VI, 1342-1352)의 교황청에 납품되는 포도주를 선별하기위하여 ‘교황의 포도주’(Cuvée du pape), ‘왕의 포도주’(Cuvée du roi), ‘수도승의 포도주’(Cuvée des moines) 3단계로 포도밭을 구분하고 재배하여 ‘샹베르땅’(Chambertin)의 포도원과 함께 ‘부르고뉴’ 지방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포도산지로 만들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당시 소유권이 국가로 귀속되었다가, ‘나폴레옹 1세’의 재정담당 은행가 ‘가브리엘-쥴리앙 우바흐’(Gabriel-Julien Ouvrard)란 사람에게 팔린다. 이후 이 지역의 와인 상인 6명에게 분할 매각되었고, 그중 한 명인 ‘레옹스 복께’(Léonce Bocquet)가 성과 20h 포도밭을 구입하고 방치되었던 성과 포도밭을 복원한다.
현재는 50헥타르 면적의 포도밭을 80여 명의 소유주가 분할, 소유하고 있으며 포도밭 중앙에 우뚝선 신비로운 고성은 ‘라 꽁프레리 데 슈발리에 뒤 따스뜨방’(La Confrérie des Chevaliers du Tastevin) 기사단의 본부로 사용된다. 포도 압착기, 숙성장, 지하 저장실이 12세기 와이너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