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개막식에 ‘국조인 수탉 Le Coq de France’을 날리고 경기를 시작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힘없고 나약하게 보이는 닭이 국조로 선택되는 과정을 알고가자!!!! ‘중세 봉건시대‘에 ‘골 족 Gaule’의 닭은 희망과 믿음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의미로 널리 알려지고, ‘르네상스 시대‘부터 국가와 연관되기 시작한다.
’발르와 Valois’ 왕조와 ‘부르봉 Bourbons’ 왕조는 왕의 이미지를 상징하기 위하여 닭을 사용하였고, 동전에 왕의 얼굴과 함께 새기면서 프랑스의 상징으로 발전한다. 1789년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 기간동안에 닭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쓰여지지만, 유럽을 통일한 ’나폴레옹 1세 Napoleon I’는 황제의 권위와 제국의 힘을 나타내고, 로마제국의 힘과 ‘프랑크’ 왕국의 ‘샤를르마뉴 대제’를 모방하여, 나약한 닭보다는 강렬한 독수리를 군대의 휘장에 사용하고 프랑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닭은 힘이 없으며, 그것은 프랑스와 같은 제국을 상징할 수 없다.
Le coq n’a point de force, il ne peut etre l’image d’un empire tel que la France.
프랑스의 마지막 왕인 ‘루이 필립 Louis Philippe’이 1830년에 ‘국민 근위대 Garde Nationale’의 휘장과 군복의 단추에 닭을 새기라고 명령하여 국가를 상징하지만, 1848년 대혁명으로 실권하고, ‘나폴레옹 3세’가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통치하던 4년간은 닭을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1852년 쿠데타로 제정으로 돌아가면서,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삼촌인 ‘나폴레옹 1세’처럼 독수리를 사용한다. 제 3공화국 때는 대통령 궁인 ‘엘리제 Elysée’ 왕궁의 창살에 닭을 조각했는데, 요즘도 그 ‘닭의 창살’을 볼 수 있으며,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닭의 애국심을 내세워서 항독 운동과 프랑스인의 용기를 상징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