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드는 중세의 역사,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적 영감이 한데 어우러진 곳입니다.
- 고르드 성의 위엄과 견고함
- 세낭크 수도원의 고요한 아름다움
-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이 선사하는 환상적인 풍경
프로방스를 여행한다면, 고르드는 꼭 들러야 할 보석 같은 마을입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에 선정된 곳으로, 길바닥에 돌을 세로로 세워서 박았기에 비가 오거나 눈이 쌓여도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이 지방 사투리 ‘칼라드’(Calade)의 좁은 길을 따라 거닐면서 중세로의 시간여행 강추!!!
추천 여행
‘프로방스’(Provence) 지방, 보끌뤼즈(Vaucluse) 지역의 뤼베롱 지방공원(Parc naturel régional du Luberon) 에 자리한 고르드(Gordes) 는 인구 약 2,000명의 작지만 매력적인 중세 마을입니다.
라벤더, 올리브, 토마토, 해바라기 밭이 펼쳐진 풍경 속에 자리한 이 마을은 프로방스 전형적인 농가인 마스(Mas) 와 강렬한 원색의 대비로 방문객을 매료시킵니다.
역사 속 고르드 성(Château de Gordes)
마을 중심의 높은 언덕 위에 웅장하게 자리한 고르드 성은 이 지역의 상징입니다.
- 건축: 원래 중세 요새였으나, 1525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며 방어용 구조와 우아한 장식이 조화롭게 결합되었습니다.
- 특징:
- 지역의 견고한 석회암인 몰라스(molasse) 로 지어져 내구성이 뛰어남
- 특히, “고르드의 돌(Pierre de Gordes)” 은 벽난로나 오븐 건축 자재로 유명하며, 그 아름다운 색감과 질감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오늘날: 버려진 암석 채취장이 예술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고르드의 역사 속 이야기
중세 시대
- 13세기: 고르드는 사부아(Savoie) 공작령의 지배를 받으며 전략적 요새로 활용되었습니다.
- 백년 전쟁(1337~1453) 당시,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마을은 성벽을 강화하고 높은 지형의 이점을 살려 적의 침입에 대비했습니다.
위기의 순간들
- 1709년: 흉년과 혹한으로 인해 농작물이 대량으로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습니다.
- 1712년: 마르세유(Marseille) 항에서 시작된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강타, 고르드 역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며 마을은 한때 폐허로 변했습니다.
부활의 시작
- 18~19세기:
- 누에고치 재배를 통한 비단 산업이 활성화되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 올리브, 아몬드, 무화과 재배가 확산되며 농업이 다시 번성했습니다.
- 그러나 전통 가죽신발 수공업은 양발을 동일한 형태로 제작하는 고집으로 인해 산업화 시대에 뒤처지며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의 시련
- 지진과 혹독한 겨울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되었고, 많은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고르드의 저항
레지스탕스(Resistance) 운동이 활발했던 고르드는 독일군의 보복 공격을 받으며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 독일군 만행:
- 피난하지 못한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마을 곳곳이 파괴되었습니다.
- 독일군은 언덕에 대포를 설치하고 마을을 조준하여 무차별 폭격을 가했습니다.
- 이로 인해 20여 개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특히 마을 입구와 교차로 주변이 집중적으로 손상되었습니다.
전후 복원과 예술가들의 헌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난 고르드는 예술가들의 헌신으로 다시 빛나게 되었습니다.
- 샤갈(Marc Chagall) 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복원 작업에 참여하며 마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 안드레 로트(André Lhote), 장 데이롤(Jean Deyrolle),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폴 마라(Pol Mara) 등이 이 마을의 재건에 기여하며, 고르드는 오늘날 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낭크 수도원(Abbaye de Sénanque)
고르드에서 서쪽으로 차로 약 10분 거리에는 남프랑스를 대표하는 명소, 세낭크 수도원이 있습니다.
- 설립: 1148년, 시토회 수도원(Abbaye cistercienne) 으로 건립되었으며, 수도자들의 금욕적이고 단순한 삶의 철학이 건축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 양식: 로마네스크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두터운 석벽과 간결한 선이 특징입니다.
- 후원자:
- 까바이용(Cavaillon) 지역 대주교 알팡(Alfant) 의 지원으로 건립되었으며,
- 프로방스 & 바르셀로나 백작 라몽 베랑게 2세(Ramon Berenguer II) 가 후원하였습니다.
라벤더와 수도원의 조화
- 수도원은 라벤더 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풍경은 프로방스 관광 책자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 오늘날에도 수도원은 본래의 수도원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도자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수도원 내부에서는 성서 필사본, 양봉, 라벤더 에센셜 오일 생산 등 전통적인 수도원 생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보리 마을 Village des bories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보리’ 마을은 여름철 목동들이나 농부들이 농사철에 이용하던 외양간, 빵 굽는 화덕, 포도주 저장고, 농작물을 타작하던 마당과 돌로 지은 주거들이 모여있습니다.
최소 3천년 전, 청동기 시대부터 지속된 주거형태로 강력한 미스트랄(돌풍)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튼튼하고 흔한 재료인 돌을 몰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린 이 집들은 예전의 생활모습과 농기구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