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알려진 인류가 그린 최초의 회화는 32000년 전의 ‘쇼베 동굴’, 14000년 전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프랑스 중부의 조그만 마을 ‘몽띠냑’(Montignac) 남쪽 언덕에 자리잡은 ‘라스코’ 동굴을 꼽는데, 수렵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에 풀을 찾아 이동하던 초식 동물들을 뒤쫒아 따라다니며, 변변한 무기도 없이 사냥에 나서는 인류들은 어떤 주술적 염원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선사시대 생활을 엿 볼 수 있는 라스코 동굴!!!
라스코 벽화를 왜 그렸을까?
구석기인들이 이 벽화를 왜 그렸을까? 이들에게 사냥은 생명과 종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을 터인데, 사냥도구가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돌칼을 들고 동물에게 덤벼드는 사냥은 늘 두려움과 공포가 존재하였으리라….
그렇다면, 사냥이 좀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냥의 대상이 되는 짐승들을 그리 넣고는 먹이 감을 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지극히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사냥의식을 지냈다고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라스코 동굴의 발견
1940년 9월12일 목요일, 프랑스 서남부 ‘누밸 아키텐'(Nouvelle-aquitaine) 지방의 ‘몽띠냑’ 마을에서 ‘마르셀’(Marcel Ravidat 17세), ‘조르주’(Georges Agnel 16세), ‘자크’(Jacques Marsal 15), ‘시몬’(Simon Coencas 15) 네 명의 청소년들이 ‘베제르’(Vézère) 골짜기에 있는 라스코 언덕의 큰 소나무가 쓰러지면서 생긴 지름 60㎝쯤 되는 구덩이 둘레를 파기 시작했다. 근처의 옛 성으로 통하는 중세 시대의 비밀 통로이기를 바라며…..
두 시간쯤 풀을 뽑고 입구를 넓히자, 어두컴컴한 터널이 나타났고, 나이가 가장 많은 ‘마르셀’이 먼저 납작하게 엎드려 배를 땅에 깔고 기어서 10 미터 정도를 들어가자, 꽤 넓은 동굴이 나타나면서 드디어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이 남긴 벽화가 1만 8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다. 안타깝게도, 고고학자들이 미처 발굴과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곧 바로 관광지로 개발되어, 1948년 7월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에 서둘러 일반인들에게 문을 연다. 돈!돈!돈!
구석기인들의 정밀한 벽화를 보고자 수 많은 관광객이 드나들며 발생한 습기와 온도 변화로, 동굴이 병들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 곰팡이가 번식하면서, 바위 표면이 일어나는 등 동굴이 병들어가자, 벽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당시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의 결정으로 1963년 4월 20일 일반인 방문을 금지한다.
라스코 4 동굴 탄생
폐쇄 20년 만인 1983년 원래의 동굴과 200m 떨어진 곳에 ‘라스코’ 동굴의 <두 암벽>을 실제 크기로 정밀하게 복제한 “라스코 2”를 만들고 선사 인들이 사용한 재료를 이용하여 구석기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벽화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였으며, 2016년부터 “라스코 4” 동굴에는 1900점 정도의 동물상이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는데 말이 가장 많고 소, 사슴. 돼지, 이리, 곰, 새가 묘사되어 있다. 특히, 사냥하기에 위험이 따르는 뿔 달린 들소는 다른 동물보다 크게 그려져 있다. 포획의 염원이었을까??? 공포의 대상이었을까???
성수기에는 매일 방문이 가능하지만, 비수기에는 월요일 휴무, 또한 1월부터 2월 중순은 휴무 !!!!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일 관람객수를 2천으로 제한한다. 모조품이지만 워낙 정교하니까….^_^ Bonne Visi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