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리옹은 프랑스의 북부가 끝나고 남불이 시작되는 일종의 경계지로 프랑스 동서남북의 중심으로 일찍이 산업의 발달과 함께 금용 자본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이 문학 활동을 펼친 도시이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된 문화와 역사의 도시 리옹은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 ‘푸르비에르 Fourvière’ 언덕을 중심으로 그리고 ‘손 Saône’과 ‘론 Rhône’ 강이 흐르는 리옹은 이천 년간 성장해온 도시이다. 프랑스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리옹!!!
지형상으로는 잔잔한 ‘손 Saône’과 ‘론 Rhône’ 강이 만나는 곳이며, 지리적으로는 프랑스의 중부, 동부, 북부의 각 지역과 근접하면서 남으로 이태리로 향하는 길목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뛰어난 지리적인 이점으로 15세기 이래 동방에서 들어오는 비단교역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직물산업과 거래로 부를 일구었고 이후 화학 섬유와 야금 인쇄술로 번성하였다.
대단위 공업 도시이며, 대학과 의학 산업의 중심지로, 프랑스 최고의 음식, 리옹 출신의 인형 제조업자가 최초로 고안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기뇰 Guignol’ 인형극, 전통 주점인 ‘부숑 Bouchon’, 좁은 거리와 ‘트라불 Traboule’이라는 집들 사이의 건축 양식들로 특별한 도시의 감성을 지닌다.
리옹 역사
리옹은 기원전 43년 ‘시저 César’(카이사르)의 한 부관 ‘Lucius Munatius Plancus’이 세운 ‘루그두눔 Lugdunum’에서 시작되었다. 원주민이던 켈트족의 언어로 ‘태양신 Lug’과 ‘언덕 dúnon’을 합친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도하는 장소로 신성시 되었던 곳이다. 이후 로마 황제들에 의해 화려한 도시로 변모되었으며 갈리아의 상업적, 군사적 수도 역할을 담당했다.
푸르비예르 언덕에 펼쳐진 2개의 대형 야외 극장이 로마문명의 영향을 알려준다. 2세기 중엽 갈리아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출현하여 177년 리옹 교회 창설자인 ‘생 뽀뗑 saint Pothin’과 ‘생뜨 블랑딘느 sainte Blandine’가 순교한다. 이후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로 변모, ‘생 쟝 대성당’과 푸르비예르 대성당이 축조된다.
막강한 재력과 조직력을 시기하여 십자군기사단을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동시에 체포한 ‘필립 4세 Philippe IV le Bel’에 의해 1312년 프랑스에 병합된다. 왕의 보호를 받으며 발달한 견직업을 중심으로 부를 쌓았고, 파리와 함께 출판·인쇄업의 중심지로 학문과 예술도 발달하여,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이 이곳에서 활동을 폈다. 산업의 발달과 함께 금융자본의 중심지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크레디리요네 Credit Lyonnais’도 이곳에서 발족하였다.
‘손 Saône’ 강의 우안에 위치한 푸르비예르 언덕 밑자락과 강 사이에 펼쳐진 구시가지는 화려한 저택, 박물관, 식당, 상가들로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돋보이는 ‘생 쟝 대성당 Cathedrale Saint-Jean’은 1165년 후진 공사를 시작, 1245년 4개의 신도석이 완성되었으며, 1245년과 1274년에는 리옹 공의회가 이 곳에서 열렸고, 1600년에는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시스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노트르담 드 푸르비예르 대성당 Basilique Notre-Dame de Fourvière’은 ‘성모의 무원죄 잉태Immaculée Conception’를 기념하기 위하여 1872년 공사를 시작하여 로만 비잔틴 양식으로, 175m 높이의 푸르비예르 언덕 위에 축조되어 리옹의 모든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상징물이 되었다.
빛 축제 Fête des Lumières
산업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어 위생환경이 불안정하여 잦은 페스트의 출현으로 극심한 피해를 보았던 리옹은1643년부터 페스트가 도시를 피해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던 것이 유래가 되어 매년 9월 8일 수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1852년 9월 8일에 맞추어 종탑 위에 성모 마리아 상을 완성하기로 하고 공사를 진행하였지만, 제작이 늦어지고 홍수로 강이 범람하여 완공식을 12월 8일로 미루었단다. 막상, 12월 8일 악천후로 도저히 행사를 강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오후부터 날씨가 개이기 시작하여 무사히 공사가 완공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두 창문에 촛불을 밝히던 것이 현재 세계인들이 기다리는 12월 한달동안 리옹을 아름답게 수 놓는 ‘빛 축제Fête des Lumières’의 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