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술산업 및 녹색성장의 중심지
대서양에서 50km 떨어져 ‘르와르 Loire’ 강과 ‘에흐드르 Erdre’ 강의 합류점에 자리잡은 낭트는 프랑스 서부를 여행할 때 베이스 캠프로 잡고 동.서.남.북을 다녀오면 좋은 곳이다.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일찍이 무역이 발달하였으며, 미래 기술산업 및 녹색성장의 중심지로 또한 현대 설치예술의 본고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고, 과거와 현대, 미래가 공존하는 특이한 도시이다. 1943-1945년에 낭트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피해를 입었지만, 전후 복구과정을 거쳐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낭트 역사
‘필립 오귀스뜨 Philippe Auguste’(재위 1180-1223)에 의해 브르타뉴 공작이 된 ‘삐에르 드 드뢰 Pierre de Dreux’는 낭트를 수도로 정하고, 성벽을 쌓아 1214년 영국의 무능한 왕 ‘죤 Jean sans Terre’에게 대항한다.
1341년 브르타뉴 공작 ‘장 3세 Jean III’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계승권을 놓고 친 조카인 ‘잔느 Jeanne’와 이복동생인 ‘장 드 몽포르Jean de Montfort’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데, 조카 ‘잔 Jeanne’의 남편 ‘샤를 드 블루아 Charles de Blois’는 프랑스 왕 ‘필리프 6세’(재위 1328-1350)의 조카이기에 프랑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이복동생 ‘장 드 몽포르Jean de Montfort’는 어쩔 수 없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도움을 청하고, 1342년 여름 영국 군대가 브르타뉴 지방에 상륙하여 전쟁이 벌어지는데, 1345년 영국이 지지하던 이복동생 ‘장 드 몽포르’가 사망하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어린 ‘몽포르’ 아들의 섭정을 맡아 양측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기나긴 백년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백년전쟁 후, ‘루이 11세 Louis XI’(재위 1461-1483)는 브르타뉴를 병합하려 했지만, 영주 ‘프랑스와 2세 Francois II’ 공작의 저항으로 무위에 그치고, 딸 ‘안느 드 브르타뉴 Anne de Bretagne’가 ‘샤를르 8세’(재위 1483-1498)와 1491년 강제로 결혼하면서 병합되어 자치권을 상실한다.
‘앙브와즈’ 성의 지하통로를 지나던 중, 돌 기둥에 머리를 찧고 사망한 ‘샤흘르 8세’ (재위 1483-1498)의 뒤를 이어 ‘루이 12세’(재위1498-1515)와 1499년 재혼하는 ‘안느 드 브르타뉴’는 자치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브르타뉴를 물려받은 딸 ‘끌로드Claude de France’가 ‘프랑스와 1세’(재위 1515-1547)와 결혼하면서, 브르타뉴 영지는 영원히 프랑스로 귀속된다.
프랑스 대혁명의 행정개혁을 통하여 1790년 브르타뉴 지방에서 ‘빼이 드 라 르와르 Pays de la Loire’ 지방으로 바뀐다. 1793년 프랑스 서부의 ‘방데 Vendée’ 지방에서 시작된 반란군을 공화군의 ‘까리예 Carrier’ 장군이 르와르 강에 익사시킨 잔혹한 역사가 있다.
브르타뉴 공작의 성 Château des ducs de Bretagne
13-15세기 브르타뉴 지방을 다스리는 공작의 거주지로 고딕양식과 르네상스양식이 혼합되었다. 브르타뉴의 영주 ‘프랑스와 2세François II’ 공작이 자신의 영지 브르타뉴의 수도 역할뿐만 아니라, 프랑스와의 국경을 지키는 튼튼한 요새로1466년 공사를 시작하여, 7개의 망루를 갖춘 성으로 완공된다.
프랑스 내부의 ‘30년 종교전쟁’(1562-1598)을 끝내는, 개신교 집회의 자유를 골자로 하는 ‘낭트 칙령’이 1598년 공표되었던 곳이다. ‘앙리 4세’(재위 1589-1610)가 즉위할 당시 프랑스는 신 ·구 양파의 종교적 대립으로 국내는 양분되었고, 혼란이 극도에 달하였는데, 신교(위그노)에게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약 30년간 지속된 내전을 종식시킨다.
생 삐에르 대성당 Cathédrale Saint-Pierre-et-Saint-Paul
1434년 브르타뉴 공작 ‘장 5세 Jean V’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지만, 격동의 세월 속에서 중단되었다가 457년 만인 1891년에 완공한다. 측랑에는 브르타뉴 지방의 마지막 영주라고 볼 수 있는 ‘프랑소아 2세 François II’와 ‘마르그리트 드 프와 Marguerite de Foix’의 횡와상은 정의 Justice, 힘 Force, 절제 Tempérance, 신중 Prudence을 상징하는 입상들에 둘러싸여 있다.
주요 행사
- 에스뚜에르 낭트 생 나자르(Le parcours Estuaire Nantes Saint-Nazaire):.
3회를 맞이하는 에스뚜에르는 강 어귀와 생 나제르(Saint-Nazaire) 주변의 60 km의 코스에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이다. 8개의 작품이 새롭게 설치되었다. 총 17개의 착품이 9곳의 코뮨에 위치해 있다. - 페스티발 엘페스트(Festival Hellfest , 클리송 Clisson) : 6월
- 르 브와야쥬 아 낭트(Le Voyage à Nantes), 행사: 여름
- 페스티발 레 구 유닉(Festival Les goûts uniques): 여름
- 카루젤 데 몽드 마랑(Carrousel des Mondes Marins): 7월
- 랑데부 드 에르드르(Rendez-vous de l’Erdre): 8-9월 / 야외에서 즐기는 재즈 축제
- 노엘 오 샤또(Noël au Château): 12월
- 노엘 도 네프(Noël aux nefs): 12월
- 페스티발 라 폴 주르네(Festival La Folle Journée): 2월 / 클래식 음악 축제
미식
프랑스 다른 여느 대도시와는 차별적으로 낭트는 상징적인 레시피로 요리를 규정짓지 않는다. 낭트의 요리에는 호기심, 교류, 여행…을 담고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바다와 육지의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는 낭트에는 단맛과 짠맛, 채소와 육식, 브르타뉴(Bretagne)와 벙데 에 루아르(Vendée et Loire)가 공존한다. 항구 도시의 전통을 간직한 낭트에는 탐험가들과 선원들을 통해 수 세기를 거쳐 형성된 세계의 맛이 어우러져 있다.
- 짠 맛(Les saveurs salées): 야채(콘 샐러드, 당근, 파 등), 해산물(게, 바다 가재, 굴, 홍합 등), 생선(정어리, 농어…), 루아르 강 민물 고기(곤들매기, 정어리, 장어, 새끼 뱀장어…), 치즈(뀌레 낭떼(curé nantais), 마슈꿀레(mâchecoulais…).
- 단 맛(Les saveurs sucrées): 브랜드 BN 또는 LU의 비스켓, 사탕, 카라멜 오 뵈르 살레(caramels au beurre salé), 푸아스(빵의 일종), 케이크, 초콜렛, 낭틸레(nantillais 칵테일 일종)
- 드라이 와이트 와인과 낭트 지방 발포성 와인: 르 뮈스카데 쉬르 리(Le Muscadet sur Lie)
자료: 프랑스 관광청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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