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남동쪽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랑 데스트 Grand Est’ 지방의 ‘트루아’는 센느 강의 지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도시를 지날 때 두 개의 지류로 나뉘며 주변의 도시를 지나 들어오는 몇 개의 하천과 합쳐진다. 하늘에서 보면 도시의 중심부가 흡사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 모양으로 생겼기에, ‘샴페인 마개 Le bouchon du champagne’ 라고도 부르는 중심부의 목골가옥이 즐비한 중세모습이 아름답다.
추천 여행 1524년 대 화재와 2차 대전 독일군의 폭격이라는 2차례의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완벽하게 복원된 도심에서 고딕양식의 대성당을 위시한 10 개의 종교 건축물과 비스듬한 경사의 목골가옥들, 옛 포도밭 지역에서 ‘트루아’의 정취를 느껴보도록 하자.
트루아 최초의 주교 ‘생 루 Saint Loup’는 451년 ‘아틸라 Attila’가 이끄는 훈족의 흐름을 바꾸어 도시를 구한다. 12-13세기에 물류 교환의 중심지로 번창하고 샹파뉴 백작의 보호로 유태인들이 정착하여 상업과 금융, 교육으로 명성을 얻는다.
15세기 말-17세기 중반까지 서구예술의 중심지였던 트루아는 이곳 출신의 수많은 건축가와 조각가, 화가들에 의해 르네상스기에 유명한 트루아 학파가 탄생하였고,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이 번창하여 현재 프랑스에 현존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1/3이 트루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트루아 도시에는 10개의 유서 깊은 종교건축물이 현존하는데, 도시의 중심인 ‘생 장’ 지역에 자리잡은 ‘생 뛰르벵 대성당 Basilique Saint-Urbain’은 트루아 출신으로 교황에 오른 ‘우르바노 4세 Urbain IV’에 의해 1262년 시축되어, 고딕양식으로 건설되었으며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장엄하고도 우아하다.
‘생 장 성당 Eglise Saint-Jean’은 영국의 ‘헨리 5세 Henry V’와 프랑스의 미친 왕 ‘샤흘르 6세 Charles VI’의 딸 ‘까뜨린느 Catherine’가 결혼하여 낳은 아이가 영국과 프랑스를 다스리는 것으로 계약하고 결혼식을 거행한 곳이다. 영국과의 백년전쟁 중, ‘아쟁꾸르 전투’에서 대파한 프랑스는 영국이 제시한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을 수 밖에……
‘생 삐에르와 생 뽈 대성당 Cathedral Saint-Pierre-et-Saint-Paul’은 1208년 후면 공사를 시작으로 16세기 초반 정면이 완성되었고, 1638년 탑이 추가됨으로써 현재의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1429년 7월 10일 ‘랭스 Reims’ 대성당의 대관식에 앞서 ‘잔다르크’와 ‘샤흘르 7세’가 이곳을 방문하였다.
‘생 루 수도원 Abbaye Saint-Loup’은 17-19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현재 도서관과 고고학 박물관,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3개의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