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므’에서 북쪽으로 약 25킬로미터, ‘아비뇽’에서 서쪽으로 약 4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위제스’(Uzès)는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Occitanie) 지방의 작은 중세마을이다. 이런 작은 마을에 40채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예술과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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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외르’(Eure) 호수에서부터 인구가 급증하는 신도시 ‘님므’(Nîmes)로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기원후 38년 공사를 시작하여 15년만에 완성한 ‘퐁 뒤 가르’(Pont du Gard)가 세워지기 이전인 기원전 1세기에 ‘위제스’(Uzès) 도시가 형성된다. 중세 요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꾸불꾸불한 골목과 좁고 자갈이 깔린 보행자 거리는 중세, 르네상스, 18세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위제스 공작의 성 Duché D’Uzès
1565년 ‘샤를 9세’(Charles IX)에 시절, 귀족들의 서열을 재정비하면서 ‘위제스’의 영주가 프랑스 최초로 공작(Duc) 타이틀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가문의 성이다. 프랑스 선왕이 사망한 것을 알리고 새로운 왕의 등극을 알리는 ‘Le roi est mort, vive le roi !‘라고 외치는 역할이 대대로 이 가문에 세습되어 왔다.
성녀 테오도라 대성당 Cathédrale Saint-Théodorit
성녀 ‘테오도라’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은 ‘위제스’ 대성당은 로마인들이 세웠던 신전 위에 1090년에 지어진 것으로, ‘클뤼니’(Cluny) 수도회의 영향을 받아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된다. 프로방스 지방을 찬탈하기위해 교황의 묵인아래 치러진 ‘알비 십자군’(Croisade des Albigeois) 동안이던 1177년 일부가 파괴된 것을 재건축하였다.
또한 구교와 개신교의 종교전쟁 동안에 종탑을 제외하고 완전 파괴된 것을 1642-1663년에 재건하였으며,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면은 1873년 완성한 모습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내부의 가구들은 대부분 분실되었지만 1685년에 제작한 파이프 오르간은 원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