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절대 왕권의 상징인 ‘루이 14세’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50년 동안 총력을 기울인 대궁전이다. 1682년 ‘루이 14세’가 왕궁을 국민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갖기 위하여, 현재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용되는 ‘루브르 궁전’에서 이곳으로 옮긴다.

 
추천 여행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가 혁명군에 의하여 강제로 파리의 ‘루브르 궁전’으로 궁정을 옮기기 전까지, 107 년간 프랑스의 정치적인 통치 본부이자 유럽 문화의 중심 이었다. 프랑스가 가장 강력하고 화려하였던 옛날 옛적…..

1870년 보불전쟁 이후, 승리한 프러시아 군사령부가 주둔하였으며, 1871년에는 프러시아의 ‘빌헬름 1세’가 황제 대관식을 이 곳에서 갖기도 하였다. 이런 굴욕의 역사를 복수하기 위하여,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장식한 연합군은 독일과의 강화조약을 바로 이 곳에서 맺는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만든 이유

5살이던 해에, 흥분한 파리 시민들이 자신들의 황태자 얼굴을 보고자, 당시 머물고 있던 ‘빨레 호얄 Palais royal‘ 궁전의 침실로 한 밤중에 처 들어 온 폭도들(프롱드의 난)을 겪은 ‘루이’는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왕권을 누렸던 태양 왕 ‘루이 14세’는 파리 시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야만 한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여, 아버지인 ‘루이 13세’의 사냥터였던 곳에 화려한 궁전을 짓고 방대한 정원을 조성하여 왕궁을 이곳으로 옮기고는,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 시킬 필요성을 느꼈으리라…..


 

역사적 배경 

‘루이 13세’는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 사이에서 1601년 태어나, 겨우 9살이던 1610년 10월 17일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성인이 되던 1617년까지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치’가 뒤에서 섭정을 한다. 유럽의 패권을 놓고, 스페인이 독주하는 것을 막고, ‘리슐리외 Richelieu’라는 재무장관을 발탁하여, 황폐화된 프랑스의 경제부흥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흉년이 들어 식량난에 허덕일 때에, 재무장관인 ‘리슐리외’의 긴축정책으로 국고는 넉넉해지고, 감자를 프랑스에 소개하여 식량난을 없앴으며, 일 주일에 한번은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풍요로움을 선사하였단다. 주로 일요일에 먹는 ‘꼭오뱅 Coq au Vins’ 요리가 이때 생기었다.

사냥을 좋아하던 왕은, ‘공디’ 가문의 영지인 베르사이유에 관심을 갖고, 1624년에 매입하여 사냥을 위한 작은 별장을 짓도록 한다. 청색의 석반석으로 된 지붕과 흰색의 돌, 붉은 벽돌 벽으로 아담하게 지어졌기에 ‘카드로 만든 성’이라는 별명이 붙었단다. ‘루이 14세’는 부왕의 사냥 별장을 보존하면서, 건물을 증축하여 지금의 베르사유 궁전을 만든다. 아버지에 대한 향수?????

1662년부터 1715년까지 5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탄생한 궁전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던 건축가 ‘르보 Le Veau’가 설계하고, 정원 계획가인 ‘르 노트르 Le Notre’가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고,왕실 화가인 ‘샤를르 르 브룅 Charle Le Brun’이 실내 장식을 하였다.

두 번째 건축가 ‘망사르 Mansart’에 이르러, 길이가 610 미터나 되는 궁전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Bonne Visite!!

 

베르사이유  연병장

본래 왕실 근위병들이 훈련을 하던 ‘연병장 Place d`Armes’을 지금 현재 주차장으로 이용하는 곳에는, 1837년에 ‘프랑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루이 필립’이 설치한 ‘루이 14세’의 기마 동상이 관광객을 맞이하는데, 최근 복원공사 전에는, 궁전 내부의 안뜰에서 손님 맞이를 하다가, 손님은 ‘봉’이라는 서비스 정신으로 대문 밖까지 마중을 나오게 되었다. ^_^

맞은편에 말발굽 형태의 쌍둥이 건물은, 왕실 마구간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현재는 ‘마차 박물관’과 ‘건축 학교’로 이용한다.


 

 베르사이유 궁정 안뜰  Les Cours d’honeur

근위병이 지키는 금빛 철책을 통과하면, 성직자 및 귀족들이 마차나 말을 타고 들어 오던 ‘명예의 뜰’로 들어서는데, 좌우 양측에 말에서 쉽게 내리도록 돌을 세워 놓은 것이 옛날의 권위를 보여 주는 듯….

최근 복원 공사를 통하여 세워진 금빛 찬란한 철책은 왕족의 마차가 들어가는 ‘왕족의 뜰’을 경계 짓는다. 요즘, 천정부지로 오르는 금값을 생각해 보면 진짜 금은 아닐 듯 ^_^

유리처럼 매끈한 ‘대리석의 뜰’에는 ‘카드의 성’으로 불리는 검은 석판석의 지붕에 붉은 벽돌로 지은 ‘루이 13세’의 사냥 집이 있는데, ‘루이 14세’의 의도로 이 건물을 보존하며 건물을 증축하였고, ‘왕의 뜰‘로 불리워질 정도로 색다른 공간이며, ‘루이 16세’는 이 곳에 새장을 설치하였었다.


 

2. 왕실 예배당 La Chapelle Royale

‘생 루이 Saint Louis’에게 헌납된 이 예배당은 1708년 사망한 프랑스의 건축가 ‘아흐두앵 망사르 Jules Hardouin-Mansart’의 걸작품이다. 1699년 공사를 시작하여, ‘망사르’의 죽음으로 그의 처남인 ‘호베흐 드 꼬뜨 Robert de Cotte’에 의하여 길이 44 미터, 폭 17.8 미터, 높이 26 미터의 공간에 장식이 화려하게 1710년에 완성된 것이다.

이 성당의 주재료인 흰 대리석은 여러 문양의 대리석 바닥, 금도금된 제단, 하늘나라의 모습을 묘사한 화려한 천장화들의 상관관계로 더욱 희게 보여진다.

‘루이 14세’의 죽음을 5년 앞두고 ‘바로크 양식’으로 완공된 이 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다른 건물 군과 확실하게 구별된다. 흰 대리석과 황금빛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아래 층은 관리들과 귀족들을 위한 예배당이고, 왕족만을 위한 예배당은 2층에 자리잡고 있다. 독실한 카톨릭 신도인 ‘루이 14세’는 매일 아침 일찍 ‘아침 조례’를 마치자마자 ‘거울의 방’을 거쳐 ‘큰 방들’과 ‘헤라클레스의 방’을 통과하여, 왕족 전용 공간인 성당 2층에 자리잡고 새벽 미사에 참석을 하였단다. 백합 3 송이가 새겨진 양탄자가 바로 왕의 자리…

1710-1789년 까지 성령의 이름으로, 프랑스 왕자들의 세례식이 거행되어진 곳이며, ‘루이 15, 16, 18세’와 ‘부르봉 가문’의 마지막 왕 ‘샤를르 10세’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파이프 오르간의 명인 ‘호베흐 끌리꼬 Robert Cliquot’에 의하여, 1711년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은 1995년에 보수하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있으며, 그 밑으로 제단에는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코흐네이 반 끌레브 Corneille Van Clève’의 작품이 화려하다. 장식적인 그림들은 구약, 신약의 내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둥근 천정에는 성부와 성자, 성령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성자 – 파이프 오르간 윗 부분의 천정화는 ‘샤를 드 라 포스 Charles de La Fosse’의 < 부활하는 예수 Résurrection du Christ >이고,
성부 – 중앙 부분의 천정에는 ‘앙뚜완 꾸와펠 Antoine Coypel’이 그린 < 구원의 약속을 갖고 오시는 하나님 Le Père Eternel dans sa gloire apportant au monde la promesse du rachat >이 광채와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다. 등장 인물들은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부각되어 있는데 형태보다는 색채를 더 중시하였으며, 하나님의 후광만이 유일한 빛으로 처리되었다.
성령 – 왕족의 자리 윗 부분에 ‘쟝 주브네 Jean Jouvenet’의 < 성모와 장로들에게 성령강림 La Descente du Saint-Esprit sur la Vierge et les apôtres > 작품이 있다.

 

왕의 아파트 Grands Appartements du Roi

베르사이유 궁의 극에 달한 사치와 향락 생활이 화려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데….. ‘왕의 외실’은 한편으로는 왕과 왕비의 공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과, 다른 한편으로는 ‘헤라클레스의 방’, ‘큰 방들’이라 불리는 6개의 살롱과 그 유명한 ‘거울의 방’으로 구성된 리셉션 장소로 구분된다.

1670년대에 완성된 장식들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피티 궁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데….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우주론을 따라서, 국왕의 상징인 태양과 주변의 행성들을 상징하도록 의도하여 ‘루이 14세’의 절대권력을 표현한다. 지동설에 따라 각 행성들을 상징하는 방들로 구성하였다.

‘바로크 양식’으로 금 장식을 한 구리, 청동, 대리석 등 고급스런 재료들을 주로 사용한 ‘루이 14세’ 스타일의 화려한 건축물로서, 일주일에 월, 수, 목요일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던 장소라고…

 

3. 헤라클레스의 방  Le Salon d`Hercule

‘왕실 예배당’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왕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1739년 ‘루이 15세’의 딸인 ‘루이즈 엘리자베뜨’와 스페인 왕자인 ‘필리페’의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사용되었단다.

1769년에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의 부친인 ‘필립 에갈리떼’의 결혼식을 축하하던 장소로 이용되는데, 역사의 장난으로, 20년 뒤 ‘프랑스 대혁명’때, 자신의 종형제인 ‘루이 16세’에게 ‘기요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드는 ‘필립 에갈리떼’…..

방에 들어서면서 맞은편 벽에 보이는 거대한 작품은, 1664년에 베네치아 공국이  ‘루이 14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베로네즈 Véronèse’의 걸작인 < 시몬 집에서의 만찬 Le Repas chez Simon >이라는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거장 ‘베로네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작품과 마주보고 전시된 가장 거대한 벽화 ‘가나안의 혼인잔치‘를 그린 화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향료로 닦고 있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장식 및 천장화를 이 작품과 같은 톤으로 완성하였다고….즉, 이 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장화가 아니란 말씀!!!!!

1736년에 ‘프랑스와 르 므완느 François Lemoine’가 완성한 < 헤라클레스의 결혼식 Apothéose d`Hercule >은 단일 천정화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천정화이다. 314평방미터!!!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와 질투의 여신 ‘헤라’가 중앙에 있고, 영웅에게 걸맞는 청춘의 여신 ‘헤베카’를 ‘헤라클레스’에게 인도하는 장면이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삼지창의 ‘포세이돈’. 또한, 영웅의 12가지 시련을 암시하는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다.

142명의 등장인물을 포함하는 대작을 2년 만에 완성한 화가 ‘프랑스와 르 므완느’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이 작품 완성 후 자살을 하였다.

 

4. 풍요의 방  Salon de l`Abondance

이 방은 1680년에 완공된 곳으로 ‘루이 14세’의 침실과 연결되는 비밀문이 있었다. 내실에서 만찬이 열리는 날이면, 실컷 놀고 밤참으로 먹을 수 있도록 이 곳에 커피,코코아,각종 과일과 포도주 등을 풍성하게 차려 놓았다.

왕실의 귀중품과 왕이 수집하는 메달을 넣는 함이 있었고, ‘루이 14세’가 수집한 진귀한 보물들을 진열한 전시실과 연결하던 통로로 사용되다가, 1710년 ‘예배당’이 완공되면서 ‘헤라클레스의 방’으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바뀐다.

천정에는 풍요의 여신이 우아한 모습으로 축복과 은혜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헤네 앙뚜완느 우아스 René-Antoine Housse’의 작품인 천정화 중앙에 왕가의 영원을 상징하는 풍요의 여신과, 가장 자리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여신이 있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

또한, ‘루이 16세’가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귀중품 및 메달을 소장하던 진열장이 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수집품 중에서 가장 진귀한 메달은 현재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볼 수가 없다.

이 방에 걸려있던 ‘베로네즈 Véronèse’와 ‘니꼴라 푸생 Nicolas Poussin’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그 자리에는 ‘루이 14세’의 첫째 아들 ‘대 왕세자 Le grand Condé’의 초상화와 그의 아들 즉, ‘루이 14세’의 첫째 손자 ‘부르고뉴 공작 Duc de Bourgogne’의 초상화가 보인다.

또한, ‘루이 14세’의 둘째 손자로 스페인의 왕 ‘필립 5세 Pillippe V'(앙주공작)의 모습도 보이고, ‘루이 14세’의 증손자로써 왕통을 이어받는 ‘루이 15세’의 초상화들이 차례로 걸려있다. 부르봉 가문의 3대에 걸친 초상화…  Vive le Roi !!!

 

5. 비너스의 방  Le Salon de Vénus

1677년에서 1680년 사이에 ‘사절단의 계단’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이 방에는 독특한 점이 있는데, 양쪽의 벽화에 있는 대리석과 실제의 대리석이 함께 교묘히 공존하고 있어서, 방문객들을 일순간 당황하게 만드는 눈속임 기법이 사용되어 공간의 연속 감을 준다. 좁은 공간이 더 넓게 보이도록…..

‘헤네 앙뚜완 우아스 R.-A. Houasse’가 그린 천정화는 공중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주고 ‘루이 14세’ 시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고대 역사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올림푸스 산에서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헤리아토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꽃 왕관을 받는 미의 여신 ‘비너스’와 그의 아들 ‘큐피터’가 그려져 있으며, 하늘을 향해 열린 입구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 신성을 받는 비너스 Vénus assujettissant  les divinités et les Puissances > 천장화가 일품이다.

정면에는 1672년 왕실 조각가로 임명된 ‘쟝 바랭 Jean Warin’이 조각한 고대 로마군의 복장으로 무장한 ‘루이 14’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문 사이의 벽화는, 결혼하면 불행하여 진다는 신탁을 받았으나 ‘힘포메데스 ’와 결혼하여 암 사슴과 숫 사자로 변하여 불행에 빠진 ‘아틀란타 Atalante’를 표현 한 것.

오른쪽 벽화는 생명이 장작과 연결되어 있어서 장작이 다 타고나면 생명이 다하는 그리스의 영웅 ‘멜레아그로스 Méléagre’를 주제로 하여 ‘자크 루소 Jacques Rousseau’가 눈속임기법으로 완성하였으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실물인 것 같은 착각을 유도하였다.
 

6.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방  Le Salon de Diane

‘비너스의 방’과 함께 ‘외국 사절단의 계단 Escalier des Ambassadeurs’으로 통하는 입구 역할을 했었지만, ‘외국 사절단의 계단’이 없어지면서 ‘루이 14세’가 벨벳 천으로 장식된 당구대를 놓고 게임을 하던 방으로 사용되었다. 흰색 바탕에 여러가지 색깔이 들어가 있는 대리석으로 치장이 되어 있고, 천장에는 당시의 영광을 보여주는 화려함이 가득하다.

‘가브리엘 블랑샤흐 Gabriel Blanchard’의 작품  < 항해와 사냥을 주관하는 다이아나 Diane présidant à la navigation et à la chasse >’가 천장의 중앙 부분에 위치하고, 아치의 상부에는 ‘끌로드 오드랑’과 ‘샤흘르 드 라 포스’가 역사화풍으로 그린 작품이 들어있다.

벽 상단에는 ‘블랑샤흐’의 < 다이아나와 엔디미온 Diane et Endymion >이 있으며, ‘라 포스 La Fosse’의 < 이피제니의 희생 Le Sacrifice d`Iphigénie >이 있다. 정면에는 섭정 ‘마자랭 Mazarin’의 수집품인 8개의 흉상에 둘러 싸인 27세 당시의 ‘루이 14세’ 흉상이 놓여있는데,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니니 Le Bernin’가 파리에 잠깐 머물면서 제작한 것이라고….

 

7. 전쟁 신, 마르스의 방  Le Salon de Mars 

정면의 벽난로 위에는 ‘라파엘 Raphäel’의 작품 < 하프를 켜는 다윗 왕 David jouant de la harpe >의 신실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왼쪽에는 최근에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금 공개되는 작품 ‘샤를르 르 브룅 Charles Le Brun’의 < 알렉산더 대왕 앞에 무릎 꿇은 다리우스 가족 La famille de Darius aux pieds d`Alexandre >이 국왕을 영웅화 시켰고….

오른쪽으로는 ‘베로네즈 Véronèse’의 작품 < 엠마우스의 순례자들 Les Pèlerins d`Emmaüs >가 보인다. 문 위쪽에 걸려있는 4개의 작품은 본래 ‘생 제르맹 엉 레이 Saint-Germain-en-Laye’ 성에 있던 ‘시몬 부에 Simon Vouet’의 작품 < 절제 La Temperance >, < 신중 La Prudence >, < 정의 La Justice >, < 힘 La Force >을 옮겨 온 것 이란다.

양쪽 벽면에는 ‘반 루 Van Loo’의 작품인 < 루이 15세 Louis XV >와 왕비인 < 마리 레진스키 Marie Leczinska >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끌로드 오드랑 Claude Audran’의 천정화에는 < 두 마리의 늑대가 이끄는 마차를 탄 군신 마르스 Mars sur un char tiré par des loups >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에서는 소문의 여신 ‘파마’가 전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는 ‘역사와 전쟁의 신’을 대동하고 있는데, 무기를 들고 있는 아이들의 발바닥과 늑대의 배가 보이도록 위로 올라가는 원근법이 사용되었다.

천장화의 왼쪽에는 ‘장 밥티스트 주브네 Jouvenet’의 작품 < 풍요와 행복의 신이 보좌하며, 헤라클레스의 부축을 받고 있는 승리의 여신 La Victoire soutenue par Hercule suivie de l`Abondance et de la Félicité >이 화려함을 뽐내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르네 앙뚜완 우아스 Houasse’의 < 지상의 세력을 압도하는 공포, 두려움, 불안 La Terreur, la Fureur et l`Epouvante s`emparant des puissances de la terre >이 있다.

 

8. 전령 신, 머큐리의 방  Le Salon de Mercure

국왕의 공식적인 침실이기도 했던 이 방은 ‘루이 14세’ 시절의 왕실 소장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화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8개의 샹들리에가 비추는 은으로 만든 난간에 둘러싸인 왕의 침대, 금과 은으로 장식되었던 화려한 왕의 침대는 ‘루이 14세’의 명으로 녹여서 전쟁 기금으로 모금하였다는데….

2000년부터 이 방에 전시되고 있는 왕의 침대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 Louis-Philippe’이 베르사유 궁전을 박물관으로 바꾸고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왕의 침실에 설치하였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짝퉁이라는 뜻!!!!

왕실 가족의 놀이방으로 사용되었다가, 국왕이 하야(죽음) 하면 왕의 관을 안치하였던 곳 이라고…… 하지만, 권력의 중심인 왕이 살아 생전에는 가까이 못 가서 안달이던 사람들 조차도, ‘루이 14세’가 죽었을 때는, 온 몸의 종기에서 썩는 냄새 때문에 다 도망가더란다.

‘쟝 밥티스트 드 샹빼뉴 Jean-Baptiste de Champaigne’가 1672년 완성한 천장화 중앙에는 새벽 별과 함께 < 두 마리의 수닭이 이끄는 수레에 오른 ‘머큐리 신’ Mercure sur son char tiré par deux coqs >을 볼 수 있다.

벽면에 그려진 4점의 벽화 중에 < 인도 대사를 맞이하는 알렉산더왕 Alexandre recevant une ambassde d`Indiens >, < 학자들과 대화하는 프톨레마이오스 Ptolémée s`entretenant avec des savants dans sa bibliothèque >, < 역사를 기술하도록 이상한 동물들을 가져온 알렉상드르를 맞이하는 아리스토텔레스 Alexandre et Aristote qui reçois de ce prince divers animaux étrangers dont il écrit l`histoire > 등의 고대 에피소드들은 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뜻에서 그려진 것들이다.

여러 개의 은제 가구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1706년 ‘앙뚜안느 모랑 Antoine Morand’이 ‘루이 14세’에게 바친 황금빛 청동과 상감세공으로 장식된 시계가 전시되고 있다. 유리로 처리된 시계의 상부에서 시간에 맞추어 독수리, ‘프랑스의 국조‘ 수닭이 날개를 치고, 왕에게 관을 씌워주는 인형들이 튀어 나온다고…. 믿거나 말거나^_^


 

9. 아폴론의 방  Le Salon d`Apollon

건축가 ‘르 보’가 죽고난 후, 1670년에 착공하였다. 태양의 신 ‘아폴론 Apollon’에게 바쳐진 이 방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방이다. 권력의 중심인 왕을 상징하는 방이니 당연!!!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용맹과 지혜를 묘사한 그림들이 화려하고, ‘샤를 드 라 포스 Charles de La Fosse’가 천장 중앙에 그린 ‘사계절 신들의 호위 속에 4두 마차에 오른 아폴론 Apollon sur son char tiré par quatre chevaux et accompagné des saisons’ 천장화는 보는이들을 압도한다.

왕이 일상적인 신하들 접견을 하던 장소였으며, 겨울철에는 왕의 공식 침실로 이용되기도 하였기에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 아침 문안 인사와 저녁 취침 인사를 하기 위하여 줄 지어 늘어 선 귀족들을 연상하면서 관람하면 재미 있을 듯…. (진짜 잠 자는 곳은 다른 곳)

‘전쟁의 방 Le salon de la Guerre’이 완성되면서 국왕의 침대를 ‘머큐리의 방 Le salon de Mercure’으로 옮기고, 대신 옥좌를 놓고는 일상적인 접견을 이곳에서 하였다고….

내실에서 만찬이 열리면, 춤을 좋아하던 왕이 이곳에서 무도회를 감상하고는 하였다는데, 춤 추기를 좋아하던 ‘루이 14세’가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왕좌에 앉아 구경하면서 사치풍조를 조성하고 귀족들 사이에 경쟁심을 유발시킨다. 콧 방뀌 꽤나 뀐다는 지방 귀족들의 재력을 무력화 시켜, 중앙 집권을 이룰 속셈!!!

최고급 대리석을 사용한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가구가 유명한 이방은 ‘베르사유 궁’에서 가장 화려하며, 계절이 바뀔때마다 호사스런 벽지를 교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른쪽 벽면 벽난로 위에는 ‘이아생트 리고 Hyacinthe Rigaud’의 작품인 ‘루이 14세’의 대관식 복장 모습의 작품이 걸려 있었지만, 원작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기고 현재는 복제품이 걸려있다. 맞은편에는 대관식 복장을 한 ‘루이 15세’의 초상화가 걸려 있던 자리에 ‘깔레 Antoine-François Callet’의 작품 ‘루이 16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비록,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는 하였지만….

 

10. 전쟁의 방 Le Salon de la Guerre

태양계를 본따서 ‘주피터의 방’으로 만들어진 것을 ‘전쟁의 방’으로 변형하면서 주피터를위한 주요 장식들은 다른곳으로 옮겨졌다.

1678-1689년에 건축가 ‘아르두앵 망사르 Mansart’와 실내 장식가 ‘르 브룅 Le Brun’에 의하여 완공된 ‘거울의 방 Galerie des Glaces’을 중심으로, 다른 쪽 끝에는 ‘평화의 방 Salon de la Paix’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가짜 벽난로 입구에는 < 국왕의 역사를 서술하는 클리오 Clio écrit pour l`avenir l`histoire du Roi >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그 위로는 ‘앙투완 쿠와즈보 Coysevox’의 작품 < 적들을 짓밟는 루이 14세의 기마상  Louis XIV à cheval foulant aux pieds ses ennemis>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천장에는 ‘르 브룅’의 작품 < 승리의 신이 호위하는 구름에 앉은 프랑스 La France armée assise sur un nuage, entourée de Victoire >, 오른쪽 벽에는 <‘루이 14세’가 그려진 방패를 들고있는 프랑스와 군대의 힘을 보여주는 장식이 벽면을 치장하고 있다. 외국 사신들이 왕을 알현하기 전에 대기하던 용도로 이용되었는데, 기선이 제압되던 곳이다. 까불면 깔아 뭉갠다~~~~

천정에는 1672년 프랑스에 대항하여 동맹을 결성한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 네덜란드가 그려져 있다.

 

11. 거울의 방 La Galerie des Glaces

궁전 내에서 그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는 거울의 방은 방문객들의 탄성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화려한 샹들리에의 흔들리는 촛 불 아래, 탐욕스런 귀부인들과 귀족들, 왕족들이 화려한 옷 차림으로 무도회를 열던 장면을 상상하면서 관람하시길!!!!

1687년 ‘망사르 Mansard’의 설계와 ‘샤를르 르 브룅 Le Brun’가 장식한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한, 정원의 아름다움과 대 운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서 ‘루이 14세’가 기상과 동시에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 이 방을 지나갔다. 주로 궁정 축제와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거나, 주요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고, 1차 대전을 종식시켰던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된 곳도 이곳이다.

길이 75미터, 폭 10미터, 높이 12미터의 넓은 방을 ‘루이 14세’가 직접 친정을 한 17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7개의 벽면으로 나누고 17개의 거울 벽면과 17개의 유리창으로 구성 되어 총 578개의 거울로 장식되어 있다. 1681-1684년 ‘르 브룅’에 의하여 완성된 천장화는 ‘루이 14세’가 16세의 나이로 친정을 시작한 때부터, 1678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쟁을 종결시킨 ‘네이메헨 조약’을 통하여 유럽 최고의 통치자가 되기까지의 업적을 묘사한 작품들이다.

일반적인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는 별도로, 왕은 고대의 신들, 영웅들, 위대한 인물들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도록 인물 배치를 하였다. 고개를 들어 우러러 보아야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 분할을 하였고,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을 무시하고, 오로지 작품 속의 ‘루이 14세’에게서만 빛이 나오는 듯한 기법을 사용하였다.


 

12. 평화의 방  Le Salon de la Paix

왕비들이 출산을 하였던 ‘왕비의 침실’을 포함하여 접견실 등 4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왕비의 주거 공간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거울의 방’을 중심으로 ‘전쟁의 방’과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이 방부터 왕비의 공간으로 나뉘어진다. ‘루이 15세’의 왕비인 ‘마리 레진스키 Marie Leczinska’는 음악회를 이 곳에서 열었고,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뚜와네트 Marie-Antoinette’가 놀이방으로 이용하면서 벽난로 앞의 사자상을 설치하였다고…..

벽난로 위에 < 유럽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루이 15세 Louis XV donnant la paix à l`Europe>라는 이름으로, 1729년 ‘프랑스와 르므완느 François Lemoine’에 의하여 제작된 벽화가 걸작인데…. 유럽의 군주들이 버린 무기를 밟고, 유럽의 여신에게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 가지를 거만한 모습으로 건네주는 루이 15세를 묘사하고 있다.

여러 장의 거울, 대리석, 황금 빛 장식물들은 ‘거울의 방 Galerie des Glaces’, ‘전쟁의 방 Salon de la Guerre’과 더불어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 전개되고 있다.

‘르 브룅 Le Brun’의 천장화 < 연합군에게 올리브 나뭇가지를 주는 승리의 프랑스 La France victorieuse offrant un rameau d`olivier aux Puissances qui s`étaient unis contre elle > 작품은 ‘루이 14세’의 영광을 표현하면서 이 곳에서 종결을 맺고 있다. ‘평화’와 ‘결혼’의 신은 프랑스를 호위하고 있으며, ‘영광’의 신은 불멸을 상징하는 관을 씌워주고 있으며, ‘위엄’의 신은 설계 도면을 하사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는 의미!!!!

연합국인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는 ‘행복’과 ‘평화’의 신을 맞이하고 있으며, 전 유럽은 ‘정의, ‘신앙심’, ‘예술’을 찬양하며 전쟁을 상징하는 무기를 버리고 발로 밟고 있는 장면은 ‘부르봉 가문 Les Bourbons’의 힘과 영광에 의하여 되찾은 유럽의 평화를 의미한다.

 

13. 왕비의 침실  Chambre de la Reine

‘마리 앙뚜와네트’가 사용하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천장에는 왕비의 덕목인 자비, 풍요, 정숙, 신중함을 상징하는 그림이 있는데….. 부족하니까 채우라는 뜻인지???? 거울 위로는 ‘마리 앙뚜와네트’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철혈 ‘마리 떼레즈’의 시골 풍의 초상화와, 오스트리아 황제인 ‘요셉 2세’의 양탄자 초상화가 걸려 있다. 침대 위의 닫집에는 ‘프랑스의 국조인 수탉‘이 놓여 있고, 파리시가 ‘마리 앙뚜와네트’에게 선물한 보석상자가 있다. 침대 옆 벽면을 자세히 보면 ‘소의 눈’이라는 비밀 문이 보이는데, 바로 왕의 아파트로 연결이 된다.
벽 장식과 장식용 커튼은 매년 여름,겨울 두차례에 걸쳐 바꾸는데, 여름에는 밝고 시원한 사틴 천으로, 겨울에는 온화한 색조의 빌로드 천으로 계절에 따라 실내의 분위기를 맞추었다고….

이 침실은 왕비가 왕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세자비가 들어 오는데, 세 명의 왕비와 두 세자비의 침실이었으며 훗날의 스페인 필리비 5세, 루이 15세 등 19명의 왕자와 공주들이 태어난 방이란다. 아이를 바꿔치기 할 수 없도록, 궁정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산을 하였다.

 

14. 귀족의 방  / 대기실 Pieces des Nobles 

왕비가 귀족 부인들과 서로 모임을 갖고 소개하던 방으로 사용하였다. 천장의 장식만이 루이 14세 왕비 ‘마리 떼레즈’때 것이고 벽장식과 가구는 1785년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뚜와네뜨’를 위해서 다시 바꾸어 놓았다. 천장화는 ‘꼬르네이오’에 의해 그려진 과학,예술,상업의 신 머큐리를 보여주고 있다.

 

15. 공식 만찬실 전실  Antichambre Grand Couvert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이 28종의 각종 진수성찬 요리를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식사하던 곳으로, 독극물을 이용한 시해를 피하기 위하여 왕의 식기를 넣어두던 금속 함을 바로 옆방의 근위병 실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공식 만찬이 있을 때마다 식탁에 올려 놓았다.

벽에는 ‘마리 앙뚜와네트’와 자녀들의 초상화가 있다. 가운데의 어린아이는 채 2살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왼쪽의 큰 딸은 ‘대혁명 기간에 땅플 감옥에서 외가집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후, 프랑스쪽을 보고는 소변도 안 보았다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장차 왕이 되어 프랑스를 다스렸을 오른쪽의 남자 아이는 탕플 감옥에서 옥사하는데, ‘프랑스 왕족‘의 시신은 장기를 분리하는 전통에 따라, 주치의가 보관하고 있던 심장이 몇 년전에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생 드니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벽난로 맞은편 벽에는 음악인들이 식사 동안에 음악을 연주하곤 하였는데, 1764년 1월 1일 신동으로 소문난 8살의 ‘모차르트 Mozart’가 ‘루이 15세’에게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폴란드 왕녀인 왕비 ‘마리 레진스카 Marie Leszczinska’가 ‘모차르트’와 독일어로 대화를 하면서 왕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16. 경호원들의 방  Salle des gardes de la Reine

용맹한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된 왕실 경호대가 발포할 것을 염려한 시민군들이, 부녀자들을 앞세우고 여장을 한 남자들이 숨어서 함께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진격을 하는데….. 용병들은 차마 부녀자들에게 발포하지를 못하고 후퇴하다가, 1789년 10월 6일 새벽 < 왕비를 구하라 Sauvez la Reine >라고 외치며, 변장한 남자들의 손에 처참하게 학살된 곳이다.

왕의 외실 부분에서 ‘다이에나 Salon de Diane’의 방과 대칭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1층의 왕비 아파트, 세자, 세자비의 방으로 연결되는 ‘왕비의 계단 Escalier de la Reine’이 벽난로 오른쪽에 있다. 벽난로 위에는 ‘노엘 끄와펠’의 작품 < 제우스에게 드리는 제사 Sacrifice à Jupiter >가 걸려있다.

 

17. 나폴레옹의 방 

천재 화가 ‘다비드’에 의하여 그려진 3점의 대작이 전시되어 있고, ‘루브르 박물관‘에도 전시되고 있는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장면과 모든 부분이 똑같지만 유일하게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무엇일까???

19년이라는 격차를 두고 그려졌으며, 이 작품은 파리가 아닌 브뤼셀 망명 생활 중에 그려졌다는데,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그렸다고……. 한 여인의 옷 색깔만이 다른 이유는????

 

전쟁 갤러리 Galerie des Batailles 

‘루이 필립’ 왕때 왕자들이 사용하던 방들을 개조하여, 1837년 문을 연 전시실로 프랑스가 교회를 지키기 위한 소명 의식을 갖고 싸운 전쟁들 그리고 자기 왕권의 합법성을 보이기 위해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을 비유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자기도 왕족의 피를 타고 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497년 ‘메로뱅 왕조‘ 최초로 개종한 ‘클로비스’가 똘비악 전투에서 승리하는 모습부터 1810년 나폴레옹 전투까지 기록되어 있다. 갤러리 안에 진열된 흉상들은 대원수급 이상의 프랑스 역대 군인들과 왕족의 혈통을 가진 장군들을 보여준다.

 

궁중 오페라  Opéra 

가브리엘의 설계에 따라 1768년 착공되어 1770년 완공되었다. 당시 최고의 궁중 오페라로서 약 700명의 수용능력을 특수조작에 따라 배가 시킬수 있었다고…. 타원형 공간으로 뛰어난 음향효과를 자랑하는 이 오페라의 장식은 화가 ‘뒤라모’, 조각가 ‘빠주’가 맡았고 관람석의 높이를 무대높이로 조절할수 있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뜨’의 결혼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던 이곳은 오스트리아 황제 ‘요셉 2세’, 영국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드’ 여왕 방문시 찬탄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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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h-17h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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