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XVII 수수께끼의 루이 17세 ????
루이 17세 왕좌에 등극하여 프랑스를 다스렸을 ‘루이 샤를 Louis Charle’!!!!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사이에 태어난 황태자 ‘루이 샤를’은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95년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의 자손들은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소문의 정체는???? 알고가자, 루이 17세!!!
‘프랑스 대혁명‘의 격동기에 국왕 부부가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을 때 ‘루이 샤를’은 투옥되어 혁명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가, 1795년 6월 8일 10세의 나이로 ‘탕플 감옥’에서 수감 중에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가 죽은 후, 생전의 황태자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5명의 검시관들은 황태자가 틀림없다고 증언하였단다. 하지만, 같은 감옥에 갇혀 있던 황태자의 누이는 시체 확인 과정에서 제외되었고, 동생이 사망한 사실도 훨씬 나중에 듣게 된다는데….
장례식이 거행되었을 때,
나이 어린 아이의 관으로는 관이 너무 크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여러 가지 사실들이 알려짐에 따라 시체를 바꿔 치기 하지 않았나 하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황태자를 지키는 간수로 임명되었던 부부가, 1794년 1월 19일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황태자는 몸이 튼튼한 아홉 살 난 소년이었다는데, 약 7개월 후 ‘바라스’ 장군이 황태자를 방문했을 때에는 ‘루이 샤를’이 중병에 걸린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었다고…..
황태자를 감시하던 여자 간수가, 20년 후 병원에서 자기를 간호하던 수녀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하면서, “우리 황태자님은 돌아가시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녀와 남편이 감옥을 떠나던 날에 다른 소년을 옥중으로 데려와서 바꿔 치기 했다는…..
감옥을 방문한 ‘바라스’ 장군이 (나폴레옹 1세의 부인이된 조세핀의 정부) 황태자를 전국에 긴급수배한 것이 후에 밝혀지면서, ’쁘띠 띠발’이라는 유력한 은행가는 황태자의 사망진단서는 가짜였다고 비난하다가 1년도 안되어 그의 전가족이 몰살당한다.입막음???. 그렇다면 옥중에서 죽은 아이는 누구였을까?
1846년 발굴된 유해를 검시한 2명의 의사는 10 세라기보다는 15-16세 된 소년의 유해라고 발표하고, 1894년에 유골을 다시 조사한 결과 16세에서 18세 사이 소년의 유골이라는 일치된 감정이 나온 두 번의 조사 결과는 관속의 소년은 황태자 ‘루이 샤를’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 받침 해준다. 그렇다면…..???
얼마전에, 유골의 DNA 조사결과 황태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측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과연, 황태자는 죽은것일까??? 아니면 바꿔치기 당하여 왕당파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어디에선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후손이 있는걸까??? 어쨌든, 시체에서 심장을 분리하는 왕실관례를 따라 ‘루이 17세’라고 믿었던 사람의 심장을 보관하고 있다가, ‘프랑스 왕들‘의 무덤인 ‘생 드니 대성당‘에 몇년 전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