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

사실주의

Réalisme 

눈에 비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경향으로, 1840-1880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사조 사실주의!!! ‘꾸르베’ 1855년 ‘살롱전’에 출품한 < 화가의 아틀리에 >가 거부되자, 자신의 작업실을 “사실주의 집 Pavillon du Réalisme” 이라고 명명한 것에서 이름이 온단다. ‘꾸르베’에 의해 천명된 19세기 ‘사실주의’는 현실의 구체적인 모습을 이상화하거나 미화 없이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로서, ‘고전주의’의 이상화된 사실주의나 현실 도피적인 ‘낭만주의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사회 변화와 예술가들의 움직임

사실주의 사상이 대두된 1840년대 후반의 프랑스는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된 가운데, 1848년 2월 혁명은 노동계급이 최초로 자신들의 권익을 내세운 사회혁명의 성격을 띄게되는데…..

산업혁명 이후에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심각해진 빈부 격차에서 비롯된 사회 구조의 불균형 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나타나고, 문학인, 예술인, 철학자 등의 지식인들이 사회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한편 자연과학의 발달은 ‘실증주의적’ 태도를 낳았고, 문학과 미술에도 반영되어 당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보들레르 Bodelaire’로부터 당대의 생활에서 주제를 취하도록 권고 받은 화가들은 주변의 현실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발명된 사진기도 현실을 순간 포착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위기에 가세하였다고…..

‘꼬로 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 ‘루소 Théodore Rousseau’ (1812-67), ‘도비니 Charles-François Daubigny’ (1817-1878) 등의 화가들이 ‘바르비종에 정착하여 처음으로 야외의 빛과 대기를 풍경화에 담는다. 영국 풍경화가 ‘콘스터블 John Constable’ (1776-1837)의 영향을 받아서, 과거의 이상화된 고전주의 풍경화를 버리고, 자연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한단다.

‘바르비종파’가 주도한 근대 풍경화는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로 이어졌으며,  ‘인상주의로 나아가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사실주의’는 근대 시민사회에 호응하는 근대 정신의 각성이었다. ‘꾸르베’는 평생 “자신이 보지 않은 것은 그릴 수 없다”는 신조를 고수하면서 < 돌 깨는 사람들 >, < 오르낭의 매장 >등의 대표 작품들에서 일상에 몰두한 서민들을 꾸밈없이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