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방문하는 모든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샹젤리제 거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개선문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 자리에 세워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이 개선문이 파리에 세 개나 있다는데……자, 그럼 지금부터 프랑스 테마 여행가 안 완기의 알고가자 프랑스를 통하여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높이 50 미터, 폭 45 미터의 개선문은 1805년 12월 4일 ‘오스떼르리츠 Austerlitz’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대승을 거둔 그 다음날 병사들에게 사기를 고무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명명 하였다. “제군들은 승리의 개선문을 통하여 집으로 돌아가도록 될 것이다. Vous ne rentrerez dans vos foyers que sous des arcs de triomp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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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동안에만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한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나폴레옹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병사들에게 영광을 주고,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한 선전물이 당연 필요하였다. 옛 로마에서 승전한 장군과 군대가 돌아올 때 개선문을 만들어 환영하던 전통을 그 대로 따르고 싶어했던 것이다.

개선문 샹젤리제

파리를 압도하면서도 나폴레옹이 좋아하는 고대 로마양식으로 설계된 개선문은 본래 오스트리아 전투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맞이하도록 파리 중심에서 동쪽의 ‘바스티유 Bastille’ 광장에 세워질 계획이었지만, 샹젤리제 거리의 현 위치에 1806년 건축가 ‘샬그랭 Chalgrin’ 이 로마의 ‘티투스 Arc de Titus’ 개선문을 본떠서 1806 년에 착공한다.

전 세계에 세워진 개선문은 크게 두 가지의 모델에서 유래하는데, 기원전 81년에 세워진 ‘티투스 Titus’ 개선문은 아치가 하나이고, 서기 315년에 세워진 ‘콘스탕탱 Constantin’ 개선문은 중앙의 큰 아치와 양쪽으로 두 개의 아치를 갖는다.

개선문

1814년 나폴레옹이 유배를 가고 왕정복고의 격동기에 정책이 바뀌면서 공사가 중단 되었다가, 프랑스의 마지막 왕 인 ‘루이 필립’에 의하여 나폴레옹 제국의 후광을 입고자 1836년 완공된다.

참고로,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방계가문 출신인 ‘루이 필립’은 국민들에게 선심성 행사를 많이 하는데,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궁전을 박물관으로 변경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였으며, 멀고도 먼 외딴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 묻혀있던 나폴레옹의 유해를 프랑스로 갖고 와서 ‘앵발리드’ 돔 성당에 모신다. 또한, 이집트에서 선물 받은 오빌리스크를 대대적 행사로 현재의 꽁꼬흐드 광장에 세운 프랑스의 마지막 왕이다.

 

살아서 통과한 두 사람 ??? 

1. ‘나폴레옹 1세’의 두 번째 부인인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 Marie Louise가 1809년 통과. 정적인 오스트리아와 평화를 이루고, 직계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한 정략적인 결혼…..

2.
1944년 2차 세계대전 때에 개선 장군으로 입성한 드골 장군– 연합군으로부터 ‘왕따’ 당하던 ‘드골 장군’이 대기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서둘러 입성하였다는데….

연합군의 명령을 어기고 개선장군이 되기로 결정한 장소는 어디일까????

개선문

 

죽어서 통과한 두 사람 ???

1. 만들라고 명령을 내린 ‘나폴레옹 자신
유배지인 ‘쌩 뗄렌느 Sainte Hélène’ 섬에서 1840년 개선문을 통과하여 ‘앵발리드 Invalides’ 에 딸린 ‘돔 성당 Tombeau de Napoléon’에 안장되었다.

2. 세계적인 대문호이면서 프랑스 정치의 혁명가인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의 유해가 하루 밤을 ‘개선문’에서 지내고, 프랑스 영웅들의 전당인 ‘팡테옹 신전 Pantheon에 묻힌다.

 

개선문 역사

개선문개선문 광장은 1970년 ‘드 골 장군’이 죽으면서 ‘샤를르 드 골 에뚜왈 Charles de Gaulle Etoile’로 불리어지지만, 본래 18세기 초에는 ‘수플로 Soufflot’가 만든 5 갈래의 길이 만나는 ‘에뚜왈(별) Etoile’ 광장으로 불리었단다.

‘나폴레옹 3세’의 의도로 파리 시내를 재개발 하면서, 1854년 ‘오스만 Haussmann’ 이 7 갈래의 길을 추가하여, 지금은 12 갈래의 길이 만나 프랑스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동차 경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로터리를 도는 차가 우선권이 없고, 오른쪽에서 로터리로 진입하는 차가 우선권이 있어서, 랜트차량으로 여행하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햇갈리는 장소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간이 큰 사람에게 우선권이 생긴다. 먼저 차 머리 부분을 집어 넣으면 된다나????

 

라 마르세이즈 La Marseillaise

‘샹 젤리제 거리에서 바라볼때 오른쪽의 부조가 ‘프랑스와 휘드 François Rude’의 작품 ‘라 마르세에즈 La Marseillaise 이다.

현재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이에즈’ 를 작곡한 사람은 ‘스트라스부르그 Strasbourg에서 군복무를 하던 루제 드 리슬 Rouget de Lisle’ 가 작사 작곡하여 ‘라인강 군대의 노래’로 이름 붙였던 노래이다.

개선문 라마르세이예즈

이 노래가 우리나라 부산에 해당하는 남부 항구 도시인 ‘마르세이 Marseille’ 의 의용군들이 혁명 이후에 파리로 상경하면서 불렀기에, 이 노래를 처음 접하는 파리 시민들이 ‘마르세이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라는 뜻으로 ‘라 마르세이에즈’ 라고 이름을 붙인 것!!!!

1810년 비엔나에서 평화 협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신들에 둘러 싸인 ‘시저’ 복장의 ‘나폴레옹’을 조각한  ‘꼬흐또 Cortot’ 의 작품도 있다.

 

저항과 평화

‘라 데팡스 La Défense 쪽으로 ‘개선문’이 완공되던 1836년에 제작된 ‘에떽스 Etex’의 < 평화와 저항 > 이라는 작품이 양쪽에 나란히 붙어있다.

<평화 >라는 작품은 국가의 신이 뒤에서 당당히 서 있을때 아이는 엄마의 젖을 먹고, 학생은 공부를 하며, 농부가 수확을 하는 모습으로 ‘평화’를 상징하였다.

<저항 >은 외부의 위협에 일심동체가 되어 단결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국가적인 위기에 혁명정신을 발휘하는 프랑스인들의 근성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다.

개선문 평화 저항

또한, 부조물 위에는 프랑스 군대가 대승을 거두었던 전투 장소와 장면이 개선문을 빙 돌아서 조각 되어 있으며 공화국의 영웅들 모습도 보인다. 어쨋든 자주 국방은 중요하니까…… 힘을 키우자는 의미인지????

 

장군들의 이름

안쪽 벽면에는 나폴레옹 1세를 모시던 697명의 장군들의 이름과 174 전쟁터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15 센티미터 길이로 밑줄이 그어져있는 이름은 전사한 장군들이란다.

개선문

전망대

284 계단을 올라가면, ‘샹 젤리제 거리의 모습을 포함하여 방사선으로 뻗은 12갈래의 길 이름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빛낸 전쟁터와 중요 인물들에게 헌정되었다.

제 1 개선문으로 불리는 루브르 박물관 앞의 ‘까루젤 Carouselle’ 개선문에서 시작되어 ‘뛸르리 Tuilerie’ 정원을 지나 ‘꽁꼬흐드 Concorde’ 광장을 거쳐 샹젤리제 거리를 통하여 개선문을 관통한 후, 리데팡스의 ‘제 3 개선문 Grand d’Arc’에 이르는 10.6 km의 직선 축을 갖는다. 야경이 멋있기는 한데….. 올라갈때는 씩씩하게 잘 올라가지만, 내려올때는 다리가 후들 후들 하니까 체력을 고려하면서 올라가세이~잉.

개선문 전망대

개선문 건설이 한창이던 1834년에 이미 마케트와 조각들을 전시하기 위하여 마련된 ‘La salle de l’Attique’는 전망대 바로 밑에 위치하여 있다. 무영용사들에게 바쳐진 청동으로 제작된 야자수 잎이 벽에 걸려있디. 건설과정과 1833-1836년 20여명의 예술가들이 작업한 조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충혼의 불꽃

바닥 가운데는 ‘나폴레옹 1세‘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장이 위치하고, ‘드골’ 장군의 포고문, ‘인도 차이나’에서 희생된 전사들 추모 비와,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무명 용사들을 추모하는 ‘충혼의 불꽃’ 이  1923년 11월 11일 국방장관이던 ‘앙드레 마지노 Andre Maginot’에 의하여 점화되면서 지금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충혼의 불꽃이 타오른다.

개선문 충혼의 불꽃

외국의 국빈들이 대부분 이 곳에서 추모 헌화를 하고, 오후 5시 30분 퇴역 군인들에 의한 헌화식을 볼 수 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충혼의 불꽃에서 라데팡스 쪽으로 바닥을 유심히 보노라면, 올 6월에 박아 넣은 동판이 보이는데, 내용인즉은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무명 용사들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즉, 6.25 동란때 우리나라를 도와줄려고 군대를 파견했다는 말씀!!!!!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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