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야르 성’은 12세기에 지어진 난공불락의 요새로, 파리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레 장들리 Les Andelys’라는 조그만 마을의 언덕에 있는데, 센느 강변 석회암반 위에 우뚝 솟은 요새는 영국의 왕이면서도 노르망디 공국을 다스리던 ‘리차드 사자심왕 Richard Cœur de Lion’ (獅子心王)이 프랑스의 ‘필립 오귀스트 Philippe Auguste ‘ 왕에게서 공국을 지켜내기 위하여 세운다.

 
추천 여행 1189년 리처드는 부왕 ‘헨리 2세 Henri II Plantagenêt ‘의 뒤를 이어 영국 왕으로 등극하면서, 할머니로부터 노르망디 지역을, 아버지의 ‘앙주 Anjou’ 지방과 영국을, 어머니 ‘알리에노흐 다키텐 Aliénor d’Aquitaine’으로부터 ‘아키텐’ 지방을 함께 상속받는데, 노르망디 지방의 공작이기도 한 리처드가 다스리는 영토는 프랑스 국왕보다 3배 정도 더 크다.

1190년 제 3차 십자군 전쟁에 프랑스의 왕 ‘필립 오귀스트’와 함께 참가하지만, 프랑스 왕은 병을 핑계로 일찍 귀환하여 영토확장 전쟁을 하면서, 리차드의 땅을 야금 야금 빼앗는다. 한편,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 Saladine’과 평화협정을 맺고 후퇴하다가 오스트리아에 포로가 된 리차드는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자마자, 프랑스의 ‘오귀스트 필립‘에게 빼앗겼던 땅을 되찾고, 노르망디 지역을 지키기 위하여 국경지대에 1197년부터 이 성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1198년에 완공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1199년 ‘리처드 사자심왕’이 리모쥬 자작과의 전투에서 사망하고, 동생인 ‘실지왕 존 Jean sans Terre’이 등극하자 1203년 9월부터 1204년 3월까지 ‘샤토 가이야르’를 포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노르망디 지역을 빼앗아 버린다.

세월이 흘러, 영국과 프랑스가 왕위 계승문제로 1337년부터 시작한 영국과의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419년에는 영국에게 빼앗겼고, ‘잔 다르크 Jeanne d’Arc’에 의하여 1430년에 다시금 찾아왔다.

백년전쟁 이후, 영국군이 물러나고 30년 종교전쟁 이후로는 산적 떼들의 소굴이 되자, 주민들의 청원으로 ‘앙리 4세 Henri IV’가 성을 파괴하였고, 아랫동네의 수도원 건설에 성의 돌들을 이용하도록 허가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남는다. 폐허의 모습이 애잔하게 아름다운 ‘샤또 가이야르’….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서 가까이에 위치한 곳으로, 아름다운 센느 강변 언덕 위에 폐허로 남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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