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드 프랑스 지역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된 유서깊은  ‘라 호슈 기용’은 노르망디 지방으로 흐르는 센느강이 교차하는 곳에 전략적인 요충지로 12세기에 노르망디 공작이 세운 성채에서 부터 유래하고 있다.

 
추천 여행 성 뿐만 아니라 센느강 인근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하여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넣어준 마을로 여러 화가들이 이 마을을 그림 속에 남기었으며 특히 클로드 모네, 세잔느, 브라크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모네의 작품인 ‘라 호슈 기용의 길’은 시각적인 효과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일본 도쿄의 서양화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라고……

파리에서 출발하여, 인상파의 거장 ‘끌로드 모네’의 정원과 집 ‘지베르니 Giverny‘를 방문하고, 바로 이 곳을 거쳐, 천재 화가 반 고흐의 안식처인 ‘오베흐 쉬흐 와즈 Auvers sur oise‘를 방문하는 하루 일정으로 추천할 만하다. 절벽 위의 망루와 성은 암벽 속에 240 계단을 통하여 연결되어 있는데,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센느강과 주변의 파노라마가 장관!!!!!!

센강 계곡의 하얀 절벽을 벽 삼아 서있는 아름다운 성으로 프랑스의 매우 중요한 1000 년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 이다. ‘라 호슈 La Roche’ 가문이 10-15세기 이 지역의 맹주이었는데, 1185년 ‘필립 오귀스트 Philippe-Auguste’ 왕이 이 성을 방문하여 머물면서, 충성심에 대한 선물로, 화물과 상품을 싣고 센강을 오르내리는 상선들에게 통과세를 받는 권리를 주었다. 12세기에 건립된 성은 폐허화 되었으며, 오늘날 보이는 성은 14세기에 새로이 건설한 것이다.

 

영국과의 백년전쟁 동안이던 1419년 영국군 손아귀에 떨어져서 다른 집안에 잠시 넘어갔다가, 1449년 다시금 본래의 주인을 찾는다. 1739년부터 낡은 중세시대의 건물들을 개축 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고, 제일 아래층 동쪽에 1740-45년 사이 건축가 ‘루이 빌라흐 Louis Villars’에게 마사건축을 맡기는데, 스타일과 크기, 중앙문 위에 새겨진 말 조각이 신기하게도 ‘샹티이 성 Chateau de Chantilly’의 마구간과 비슷하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반혁명군들이 이 곳을 점령하여 저항할 것을 우려한 정부의 명령으로, 감시 탑인 ‘동종 Donjon’(원형탑)을 파괴하는데, 절반정도 파괴되어 폐허로 남은 오늘날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위용을 상상하여 볼 수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방어하기 위하여 책임자로 임명한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 Erwin Rommel’의 참모부가 1944년 2월부터 이 성에 정착하여 사용한다. 당시의 주인이던 ‘라 호슈푸코 La Rochefoucauld’ 가족들은 2층을 사용하고, 아랫층의 발코니가 달린 커다란 응접실을 ‘롬멜’의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연합군의 공중폭격에 대비하여, 절벽을 파 들어간 동굴에 벙커를 만들고는 방탄용 문과 두터운 방어벽을 콘크리트로 건설하여 사무실 및 탄약고를 두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전쟁 막바지인 1944년 초부터, 뜻을 같이 하는 장교들이 ‘게쉬타포 Gestapo’의 감시망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에 모여 나찌정부를 성토하는 비밀 모임을 한다.나찌 정부의 피할 수 없는 실패를 인정하고, 어차피 지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하여 히틀러 암살을 계획하기도 하는데, 프랑스 주재 독일군 총책임자인 ‘칼 하인리히 Carl-Heinrich von Stülpnagel’ 장군과 비밀스런 회동에서 ‘히틀러’ 암살 후에 시민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롬멜’ 장군의 반대로 무산된다.

1944년 6월 4일, 노르망디 연안에 폭풍이 몰아친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히틀러’를 친견하고 자신의 부인 생일을 함께 보내고자 독일로 갔던 ‘롬멜’ 장군은 독일의 ‘울름 Ulm’ 에서 연합군 상륙소식을 접하고는 부리나케 ‘라 호슈 La Roche’로 되돌아 온다.
7월 17일 노르망디의 방어선을 순례하던 ‘롬멜’ 장군의 지프차가 연합군 전투기 2대의 집중포화를 받고는, 운전수와 부관은 숨지고 장군은 허리를 심하데 다쳐 5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롬멜 장군의 희망대로, 독일의 가족 곁으로 이송되어 병원치료를 받는다.

긴급한 상황인 만큼, ‘롬멜’ 장군의 후임자로 7월 19일 신속하게 부임한 ‘한스 군터 Hans Günther von Kluge’ 장군은 ‘히틀러’ 암살계획에 반대한다. 노르망디 연합군 진격으로 밀리는 전선에 대한 책임으로 8월 18일 부임한지 한달만에 장군이 자살을 함으로써, 사령관을 잃은 독일군은 사령부를 버리고 철수를 시작한다. 하지만,독일군이 철수한 것을 모르는 연합군은  8월 25일 이 마을에 64개의 폭탄을 투하하였으며, 8개의 폭탄이 이 성에 떨어져서 완전히 박살(?)을 내버린다.

한편, ‘히틀러’ 암살사건은 실패로 끝나고 독일의 가족 곁에서 요양 중이던 ‘롬멜’ 장군은 ‘히틀러’ 암살 사건과 관련하여, 나찌 정부로부터 10월 30일 가족을 전부 총살하는 대신 자살할 것을 강요 받는다.

 

정원과 채마밭 Jardin et potager du château

이 성에 부속된 채마밭은 대략 3헥타르 면적에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2009년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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