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프랑스 동영상
낭만주의
Romantisme 낭만주의 미술에서는 회화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전체적으로 새롭고 자발적이며 주관적인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이성적 판단보다는 열정에 의존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풍경화가 많이 그려졌다. 낭만주의 사조는 ‘신 고전주의‘에 반발하여 이성적인 객관주의보다는 상상과 무한한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인 태도를 지향한,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전 유럽에 풍미했던 예술적 경향을 일컫는다. “그려지는 것”, 곧 주제보다는 “그리는 방법”, 즉 “주관적 표현”에 역점을 두어 이국적인 취향과 격렬한 감정의 표출을 위하여 폭력, 잔인함, 추함 등의 주제가 선호되면서 색감은 보다 다채롭고 풍요로워졌으며, 강한 명암 대조와 빠른 붓 터치로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낭만주의는 ‘으젠느 들라크르와 Eugène Delacroix’ (1799-1863)가 주도하였으나, 그에 앞서 ‘테오도르 제리코 Theodore Gericault’ (1791-1824)가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리코’는 ‘메두사의 뗏목‘과 정신병자들의 초상화에서 개인의 영웅적 행위와 고통을 묘사함으로써, 1820년경의 낭만주의 운동을 사실상 선도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들라크르와’에 이르러 자유분방한 색채, 유동적인 필치, 동감에 찬 구성을 갖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처럼 영웅적 작품 등이 낭만주의 미술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건축에서의 낭만주의는 주로 옛날 건축 양식의 모방과 “폴리 Folie”라고 칭하는 기괴한 건축물을 통해 표현되었다.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가진 영국과 독일의 건축가들은 중세 고딕 건축물에 매력을 느꼈고, 이렇게 되 살아난 ‘고딕 문화‘에 대한 관심은 결국 고딕 복고양식을 낳았다.
메두사 호의 뗏목 (제리코)
Radeau de la Meduse – Theodore Gericault 메두사의 뗏목 작품은 배가 침몰한 후 뗏목을 타고, 목마름과 죽음, 굶주림 속에서 바다를 표류하다가 구조되는 선원들을 그린 작품이다. 1815년 ‘나폴레옹 1세‘가 영국으로 망명할때 타고 갔던 함선 ‘메두사’ 호가, 1816년 ‘세네갈’ 해상에서 파선을 당하여, 뗏목에서 생활하며 선원과 승객 149명 중 15명이 기적적으로 살아 남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과 비슷하게도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하였단고….. 정부에서 쉬쉬 숨기던 이 희대의 사건을 접한 ‘제리코’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파선의 몸체를 연구하고, 실제로 목수를 시켜 뗏목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또한 살아 남기 위해 동료의 살을 먹은 이야기, 죽어 가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제리코’는 병원에서 시체와 병자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그림을 보면 흐린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돛을 단 배는 강풍과 높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터번을 쓴 남자는 사람들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 매고 있으며, 뗏목 여기저기에는 시체들이 흩어져 있다. 죽은 아들을 끌어 안고 있는 노인의 허망한 모습………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흑인부터 삶의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 돛대로 보이는 물체가 나타나자 물통에 올라가 옷을 흔들며 구원의 요청하는 사람들이 보이며, 일어나려 애쓰는 장면들이 보인다. ‘제리코’는 이 그림에서, 뗏목에 탄 사람들이 표류 끝에 구조를 받게 되는 순간의 환희를 담으려고 했다. 거대한 캔버스에 담긴 이 작품은 대각선이 서로 교차하는 동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인물들의 동작 또한 개성적이며 다양하다. 1819년 […]
민중을 이끄는 자유 (들라크루아)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 Eugène Delacroix 1830년 7월 28일 제 2차 혁명이 일어난다. ‘루이 16세 Louis XVI’의 동생이며, ‘부르봉 가문 Bourbons‘의 마지막 왕인 ‘샤흘르 10세 Charles X’에게 환멸을 느낀 시민들이 일으킨 7월 혁명은 3일 동안 지속된다. 왕정을 뒤엎고 공화정을 기대하던 국민들의 바램과는 달리, 8월 3일 ‘프랑스의 왕조‘의 마지막 ‘루이 필립 Louis-Philippe’이 국민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혁명이 끝났지만, 당시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 ‘프랑스의 3색기‘를 손에 들고 전진하는 모습의 여인은 누구일까?? ‘쟌 다르크’ ???? NO 민중을 이끄는 자유 여인은, 화가가 주창하여 현재 프랑스에 뿌리를 내린 ‘마리안느 Marianne‘라는 가장 프랑스적인 여인이다. 왼쪽에는 화가 자신이 장총을 들고 혁명의 선두대열에 서 있으며, 오른쪽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 ‘레 미제라블’에서 빵을 훔쳐 먹다가 죽은 어린아이 ‘가브로쉬’를 살려 놓아 혁명이 가져다 주는 흥분과 희망을 묘사하고 있다. 피어 오르는 안개와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배경과 밝게 빛나는 여인과의 강렬한 대비를 통하여 혁명의 숭고함과 신성함을 더욱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고, 정부군의 헐어 빠진 전투화를 통해서 당시의 참혹한 생활상을 보여주면서 혁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정부군의 군화가 헤져있으니, 일반 시민들은 얼마나 더 헐 벗었을까???
사르다나팔 죽음 (들라크루아)
La Mort de Sardanapale – Eugène Delacroix 기원전 7세기경, 고대 ‘앗시리아’의 왕인 사르다나팔 왕은 적에게 포위되어 약 2년 정도를 궁전에 갇혀 살게 되었는데, 적들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궁전에 쳐들어오기 전에 사르다나팔 왕은 그의 애첩들과 애마를 모두 죽이고, 그 스스로도 불 속에 타 죽었다는 이야기를 화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환상적으로 재현해낸 장면을 보여 준다. 알고가자, 낭만주의 거장 드라크르와의 사르다나팔 왕의 죽음!!! ‘사르다나팔’ 왕이 기대어 누워 있는 붉은 융단 침대 주위에는 관능적인 나체의 여인들이 살해 당하는 광란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데….. 코키리 머리 장식의 침대는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으며, 방바닥에 온갖 보물들이 어질어 있는 화면 왼쪽에는 흑인 노예가 왕의 애마인 백마를 끌고 화면 안으로 들어오려 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우측 상단의 뿌연 연기는 궁전이 불타고 있음을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궁전에 불을 지핀 병사도 같이 죽고 싶은지 화면으로 뛰어들고 있는데, 말과 이 병사의 움직임이 대각을 이루며 균형을 잡아준다.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펼쳐지는 대각선 구도가 눈에 띄인다. 특히, 목에 칼이 찔리는 여인의 얼굴에 하이라이트를 준다. 빛으로….. 격정과 죽음에 대한 고통을 ‘미켈란젤로’의 형식미로 표현했으며, ‘루벤스’의 영향을 받은 강렬한 색조를 통해 시각적인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 광란의 장면을 지켜보는 ‘사르다나팔’ 왕의 우울함과 더불어 죽음에 몸을 뒤트는 여인의 풍만한 관능미는 에로티즘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면서, ‘사르다나팔’ 왕의 이야기를 뛰어난 환상미로 표현하고 있단다. 고전적이고 성경적이고, 아름다운것만 그림의 주제로 선택하던 당시에 […]
솔라나 후작부인 (고야)
Comtesse de la Solana – Francisco Jose de Goya 궁정 화가로 활동하면서 왕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며, 1780년 이래로 ‘마드리드’ 사회에서 가장 감각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명성을 얻는데, 이 솔라나 백작부인 작품은 ‘고야’가 청각을 잃어버린 후 그려진 것이라고….. 솔라나 백작부인 작품에 모델로 등장하는 ‘카르피오 백작’ 부인은 희곡을 썼던 귀족에게서 수업을 받았으며, 1795년 아직 젊은 나이인 37살에 죽은 여인이다. 거의 실물 크기에 가까울 정도로 긴 화폭 안에 애매모호한 배경 처리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솔라나 백작부인 모델이 입은 옷의 질감이 만져질 만큼 의상이 세밀하게 묘사되었지만, 반대로 분홍색 리본만을 유일한 액세서리로 둔 것은 죽음의 징조를 묘사한 것인지…..
아일라우 전투 나폴레옹 (그로)
Le Champ de bataille d’Eylau – Antoine-Jean Gros ‘나폴레옹’의 종군 화가였던 ‘그로’는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작가의 진정한 관심이 ‘나폴레옹’ 개인의 영광보다는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하는 내용이라고….. 알고가자, 일라우 전쟁터!!! ‘낭만주의‘ 화풍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논의되는 이 작품은 ‘그로’를 ‘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가교로 평가하게 한다. 로마상을 수상하고 로마에서 수학한 마지막 세대의 화가인 ‘그로’는 사부인 ‘다비드’로부터 ‘신고전주의‘ 수업을 착실하게 받는다. 하지만, 기질적으로 낭만주의자이었던 그는 나폴레옹 시대를 영웅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를 즐겼으며, 특히 종군 화가였던 전투 장면을 스펙터클 하게 묘사하는데 능하였단다. 이 작품은 1808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당시 총 2만 5천 여 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낸 일라우 전쟁터 상황을 표현한 것인데…. 이 전투를 기점으로 무적의 ‘나폴레옹의 군대‘가 연이어 패배하기 시작한다. ‘그로’는 화면 왼쪽에서부터 점차 상승하는 무리들의 움직임이 끝나는 곳에 ‘나폴레옹’을 그려 넣었는데, 이러한 배치는 ‘나폴레옹’을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처럼 신격화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으며, ‘나폴레옹’은 한 손을 들어 자신을 따르는 군대를 독려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란다.
알제 여인들 (들라크루아)
Femmes d’Alger – Eugène Delacroix 알제 여인들 작품은 세 명의 여인(첩)이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에서 흑인 노예의 시중을 받으며,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며 여유 있는 한 때를 즐기고 있다. 모로코 슐탄의 옹호아래 활동하던 알제리 해적의 ‘하렘 Harem’ (첩들의 거처)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는데, 여기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 이란다. 알고가자, 알제 여인들!!! 1832년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 Louis-Philippe’이 모로코의 슐탄 ‘무레 아브델 하만 Moulay Abd el-Rahman’에게 특별 사절단을 보내었단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사르다나팔의 죽음‘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드라크르와는 ‘샤를 드 모르네 백작 Comte de Mornay’ 이 이끄는 사절단 일원으로 알제리를 방문한다. 프랑스와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토와 사람들, 그리고 강렬한 태양 아래 선명한 색채들을 접하고 강한 인상을 받고, 이 여행의 기억과 감동을 500 여 점의 스케치와 수채화로 남긴 것 중에 한 작품, 알제 여인들!!! 빛의 움직임과 효과에 따라서 변하는 색채, 형태 등을 묘사하면서, 여인들의 옷에 줄무늬를 그릴 때 가해진 분절된 붓질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자유스러운 터치와 빛을 표현하는 방법에 영향을 준단다. 여인들의 의상과 다양한 소품들, 빨간 덧신, 담배 파이프 등등 북아프리카 특유의 물건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데….. 방안의 벽면과 바닥에 깔린 양탄자와 여인들의 옷에 이르기까지 화면의 대부분은, 이슬람의 전통적인 장식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키오스 섬의 학살 (들라크루아)
Scènes des massacres de Scio – Eugène Delacroix 추하고 잔인한 것들도 그림의 소재로 끌어 올린 ‘낭만주의‘ 작가 ‘들라크르와’가 1824년 살롱에 출품한 이 작품은, 자유를 찾아 독립 운동을 하던 그리스의 ‘씨오 섬 Ïle de Scio’ 주민을 터키 군이 강력하게 진압하는 사건을 고발한 것이다. 유럽문화의 근원지인 그리스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그림 전면에는 지쳐서 누워버린 씨오 섬 사람들을 체념과 고통, 고뇌가 뒤섞인 표정으로 묘사하였으며, 여자를 납치하는 터키 기마병들, 이들 뒤로 불타 오르는 민가와 전투로 피폐해진 황량한 들판, 검붉은 바다와 황혼이 지는 짙은 저녁 노을이 보여주는 우울함과 적막함이, 처참한 전투를 더욱 효과적으로 사실감을 준다. 죽은 여인의 젖을 물고 있는 아기와 눈을 뜨고 죽은 이의 멍한 표정들에서, 학살의 처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페스트 환자와 나폴레옹 (그로)
Bonaparte visitant les pestiférés – Antoine-Jean Gros 역병(페스트)의 희생자들이 보이는 강렬한 감정을 단순하게 처리하면서 오히려 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만들어 내어, ‘낭만주의‘ 최초의 위대한 성공 작으로 꼽히는 작품! 자파의 보나파르트!!!https://algogaza.com/liberte-guidant-le-peuple/ ‘신고전주의‘ 작가 ‘다비드’의 제자였던 ‘장 그로’는 ‘나폴레옹 1세’의 영웅적인 모험담을 담은 서사시적인 그림을 거대한 캔버스에 담았는데…..이 그림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흑사병이 퍼진 곳을 방문하여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의 용기와 따뜻한 인간성을 찬양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보좌관은 감염의 두려움으로 손수건을 입에 대고 있다. 강렬한 자연주의적 경향을 띤 사실적인 인체들, 환상적으로 표현된 동양의 표현 양식 등이 이 그림에서 뛰어나게 잘 표현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엄격한 고전주의적인 비례나 구도, 색채를 벗어나서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다양한 색채, 자연스런 몸 동작, 동양에의 호기심 등을 표현한 ‘낭만주의‘ 스타일이다. 다만, ‘들라크르와’의 < 민중을 이끄는 자유 >, <사흐다나팔의 죽음 >, ‘제리코’의 < 메두사의 뗏목 > 등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가 쉬운 아쉬움이 있다.
화장하는 에스더 (샤세리오)
La Toilette d’Esther – Théodore Chassériau 구약 성경의 에스더 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투르크 오스만 제국의 ‘아하수에로(아쉬에휘스) Assuérus’ 왕 앞에 나가는 장면을 표현한다.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치장을 하고 있는 성경적인 주제인데….. 당시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도상을 사용하여 경건하게 그리지 않고, 이국적인 동방의 분위기로 묘사하였으며, 대담한 색채의 사용으로 ‘낭만주의‘적인 화풍으로 그렸다. 1831년 이후 고전주의 작가 ‘앵그르 Ingres’에게 사사 받았던 ‘샤세리오’의 화풍은 ‘신 고전주의‘에서 출발하지만, 1840년부터 6년 동안 여행하였던 ‘알제리’에서의 체험으로 인하여 작품세계가 점차 ‘낭만주의적‘인 성향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아직도 앵그르의 관학풍적인 수법에서 그리 크게 벗어 나지 못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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