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돔 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부티 나는 장소 중의 하나로, 광장 근처에는 이제까지 수많은 부호와 명사들이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를 찾는 헐리우드 스타들이 묵거나, 97년 여름 ‘다이아나’ 황태자비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곳으로 유명한 ‘리츠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방돔 광장에는 세계 각국의 눈높은 부자들이 찾는 유명한 보석 상점들과 사치품 점, 면세점 등이 주위에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폴레옹 1세가 1805년 12월 오스트리아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방돔 탑 위에는 나폴레옹 1세의 동상이 서 있다.
추천 여행광장의 역사와 구조
‘방돔 광장’의 터가 자리잡은 것은 ‘루이 14세’ 시절이라고 한다. ‘앵발리드’ 건설로도 유명한 ‘루이 14세’의 재상 ‘루부와 Louvois’가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계획한다. ‘프랑스 왕조‘에서 가장 많은 처첩을 거느렸던 바람둥이 ‘앙리 4세’의 아들 ‘방돔 공작’의 저택과, 탁발 수도자들의 ‘카푸치노 수도회’가 있던 곳으로, 1686년 시작된 공사는 공사비 문제 때문에 지연되다가 1699년 재개되어 1720년에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방동 광장’은 원래 정사각형 모양으로 계획되었으나, ‘앵발리드의 성당‘을 건설한 ‘망사르 Jules Hardouin- Mansart’의 도안에 따라 현재처럼 팔각형의 모양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팔각형이라고는 하지만 정팔각형이 아닌 사방 귀퉁이가 약간의 사면을 이루는 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18세기부터 이곳에 살았던 사람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들이 많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지도자 ‘당통 Danton’과 ‘루이-나폴레옹 Louis-Napoleon’이 이곳에 살았으며 ‘쇼팽’이 마지막 숨을 거둔 곳도 바로 이곳이다.
방돔 탑은 언제 세웠을까???
1699년 이 자리에는 광장을 만든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세워졌는데, 이 기마상은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고 공화국이 들어서자, 혁명군들에 의해 용해되고 말았다. ‘나폴레옹 1세’가 권력을 잡고 있던 1806년, 이 자리에는 ‘오스테흐리츠 전투 Austerlitz’의 승리를 기념하는 높이 44미터의 거대한 기념탑이 세워지는데…….
이때 조각된 76 개의 청동 부조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군으로부터 빼앗은 1,250 문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나선형 형식으로 탑을 감아 올라가면서 조각된 이 부조는 ‘오스테흐리츠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나폴레옹 1세’ 군대의 무용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을 풀어서 늘어놓으면 대충 200 미터의 길이가 나온다고 한다.
1810년에는 이 탑의 정상에 로마의 시저를 본 딴 ‘나폴레옹 1세’ 황제의 동상이 세워졌으나, 1814년 ‘부르봉 왕조’가 복고한 후에는 ‘앙리 4세’의 동상을 세웠다가, ‘부르봉 왕가’의 상징인 백합꽃으로 대체되었다. ‘부르봉 왕가’가 1830년 7월 혁명에 의해 무너지고, 시민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필립 Louis Phillippe’은 빈약한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파리 이곳 저곳에 기념물들을 짓거나 기존의 것들을 수정하기 시작하는데…..
그에 의해, 시민들을 자극하고 있던 ‘부르봉 왕가’의 상징인 백합꽃 대신, 1833년 ‘나폴레옹 1세’의 동상이 다시 방돔 탑의 정상에 놓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의 로마양식이 아닌 작은 모자를 쓴 시민적인 ‘나폴레옹 1세’의 모습으로…..
‘나폴레옹 3세’가 황제로 즉위하고, 1852년 제 2제정이 성립되자 ‘나폴레옹 3세’는 예전처럼 로마양식의 강력한 이미지의 나폴레옹 동상을 다시 세웠다. 현재 볼 수 있는 동상은 바로 이때 세워진 것!!!!!
‘루이-필립’ 시대에 세워진 ‘나폴레옹 1세’의 동상은, 1911년 군사박물관 ‘앵발리드‘의 내부광장으로 이전된 후, 현재까지 일명 ‘작은 카포랄(Petit Caporal)-나폴레옹의 별명’로 불리며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870년 보불전쟁 당시, 프러시아에 ‘나폴레옹 3세’가 항복을 하지만, 파리시민들이 저항하며 자유도시를 외치던 ‘파리 꼬뮌’이 발발하자, 혁명 성향이 강한 화가 ‘사실주의‘ 작가 ‘꾸르베 Courbet’가 예술 분과 위원장을 맡아, 그의 주동으로 방돔 탑의 ‘나폴레옹 1세‘의 동상을 파괴한단다.
‘파리 꼬뮌’ 사건이 진압되고, 제 3공화정이 안정권에 들어서면서, 문화재 파괴 혐의로 징역 6개월과 동상 재건 비 전액 부담을 선고 받자, 스위스로 도망을 간단다. 몸만 겨우 빠져나간 ‘꾸르베’의 전재산을 몰수하고, 이 때 압수한 ‘꾸르베’의 작품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 이라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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