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프랑스 동영상
가셰 박사 집 (폴 세잔)
La Maison du Docteur Gachet – Paul Cézanne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베흐 쉬흐 와즈’는 지금도 세잔느, 반 고흐, 피사로를 비롯하여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의 소재로 그렸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니 꼭 들려 보시기를 강추!!!!!! ‘피사로 Pissarro’와 교분을 갖게 되면서, 점차 ‘인상주의‘ 화풍으로 변화하는데, 이 작품은 ‘오베르 쉬르 와즈 Auvers-sur-Oise‘에 체류하던 가쉐 박사 Docteur Gachet (1828-1909)의 집에 머물던 1872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거칠고 울퉁불퉁한 붓 터치가 눈에 뜨인다. 매끄럽지 않고 조각나는 붓 터치와 맑은 색깔들에서 ‘피사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견고한 구성과 절제된 공간을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흔적은 ‘세잔느’가 서서히 ‘피사로’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정신과 의사이며 우울증 전문의인 가쉐 박사 Paul Gachet는 1859년 파리에 정착하면서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 Courbet’와 같은 젊은 화가들과 교류를 가졌으며, 1872년 ‘오베르 Auvers’의 ‘헤미 거리 Rue Rémy’에 정착하면서 인상파 화가들의 아지트가 된다. 특히 ‘세잔느’와 ‘피사로’는 1872-1874년에 가쉐 박사 집에서 머물며 수 많은 작품을 그렸고, ‘가쉐 박사’ 자손들이 1954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소장품들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가셰 박사 초상 (빈센트 반 고흐)
Docteur Gachet – Vincent Van Gogh 1890년 5월 20일 ‘고흐’는 그의 영원한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동생 ‘테오 Théo’ 의 권유로, 파리에서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오베흐 쉬흐 와즈 Aubers-sur-Oise’로 거처를 옮기고, 신경과 전문인이면서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던 가쉐 박사 Gachet 의 보살핌을 받는다. 박사의 손에 들린 꽃은 약초….. “아주 진하고 밝은 금발의 머리에 흰색 모자를 쓰고, 짙은 살색의 손, 푸른 코발트 배경에 푸른색의 프록코트를 입고, 손에는 자주빛 꽂을 피운 디기탈리스 풀을 들고, 노란색 책이 놓인 빨간색 탁자에 기댄 모습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단다. Je travaille à son portrail , la tête avec une casquette blanche, très blonde, très claire, les mains aussi à carnation claire, un frac bleu et un fond bleu cobalt, appuyé sur une table rouge, sur laquelle un livre jaune et une plante de digitale à fleurs pourpres. » –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글 중에서.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림 도구를 챙겨 마을을 나서며, 저녁이면 동생 ‘테오’ 에게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를 편지로 쓰면서 외로움을 달랬던 ‘고흐’!! 이 곳에 정착 한지 70일 후인 7월 27일 정신병의 고통으로 자살을 할 때까지 < 오베흐의 교회 >, < 오베흐의 길과 계단 >, < 까마귀 나는 밀밭 >, < 최후의 자화상 > 등 70 여 점의 유명 작품을 완성하고 가쉐 박사 초상화는 총 3개를 그린다.
광대 차우 카오 (툴루즈 로트렉)
La Clownesse Cha-u-Kao – Henri de Toulouse-Lautrec 어두운 전시실로 들어서는 순간, 뚱뚱한 여자 광대 몸뚱이에 나선형으로 둘린 황금빛 스커트의 노란빛,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한 제스처만을 표현한 이 작품은 작렬하는 듯한 순간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살아 있는 삶, 인간의 모습이 그에겐 작품의 주된 소재였으며, 풍자의 비극을 넘어서 사실 그대로의 진실까지도 포용한다. 뒷 골목의 추악함 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화가 ‘로트렉’은 비극을 초월한 영원의 생명력을 작품에 부여한 것. 인물의 표정이나 자태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방법은 ‘드가’의 영향인 듯….. ‘앙리 드 뚤루즈 로트렉’은 프랑스의 ‘알비’에서 태어나, 14세에 낙마사고로 다리를 다치면서, 두 다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은 난쟁이가 된단다. 파리의 환락가로 도피하여, ‘몽마르트르‘의 나이트클럽, 식당,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창녀를 비롯하여 부랑아나 사회의 낙오자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연예인들을 화폭에 담는데, 그들이 일하는 몸짓의 특징을 잡아 과장되게 묘사하곤 하였다. 창녀들도 ‘로트렉’을 남자(?)로 보지 않았다고… 하지만, ‘로트렉’에게 중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단순한 풍속화가의 차원을 넘어서 그는 화가로서 시대의 증인이 되고자 했다.
도미니크 변호사 삼촌 (폴 세잔)
L’Oncle Dominique en Avocat – Paul Cézanne 1861년 ‘세잔느’는 ‘엑상 프로방스 Aix-en-Provence’의 은행가인 아버지에게 화가의 길을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도미니크 Dominique 삼촌을 모델로그린 초기의 작품이다. 단색조의 밝은 바탕을 배경으로 도미니크 삼촌의 상반신을 묘사하면서, 검은색 옷을 입은 삼촌의 얼굴 표정마저도 딱딱하게 느껴지도록 거칠게 터치를 하였다. 캔버스 표면의 투박한 질감은 유화 물감을 나이프로 밀도 있게 두텁고 거칠게 덧칠한 물감은 대상의 입체감과 부피감을 주고, 색깔의 명암을 이용하지 않고도 농도를 강조하여 주고있다. 초창기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베네치아 화가들의 작품과 ‘까라밧치 Caravage’의 작품을 모사하고, ‘루벤스’와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의 작품을 베껴 그리면서 그림 공부를 한다. 허탈한 얼굴, 고통스러운 자세, 극적인 강렬함을 어두움 톤으로 거칠게 표현하는 시기를 거치고, 1872년 ‘피사로 Pissarro’가 살던 ‘오베흐 쉬흐 와즈 Aubers-sur-Oise’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고…..
목 맨 사람의 집 (폴 세잔)
La Maison du pendu – Paul Cézanne ‘세잔느’는 ‘피사로’의 추천으로 1874년 제 1회 ‘인상주의 전’에 참여하면서 < 오베흐의 풍경 Le Paysage d’Auvers >, < 모던 올랭피아 Modern Olympia >와 함께 출품한 목을 맨 사람의 집!!! ‘오베흐 쉬흐 와즈 Auvers-sur-Oise’에 2년 동안 머물며 ‘피사로 Pissarro’와 함께 작업을 하던 무렵에 그린 목을 맨 사람의 집 작품은, ‘피사로’부터 영향받은 화풍을 여실히 보여준다. 초기 작품들의 특징인, 화면 전체를 감도는 어두운 색조, 극단적인 대조를 피하고, 밝은 화면과 선명한 색조, 형태를 생략한 재빠른 붓 터치로 바뀌면서 ‘세잔느’의 화풍이 ‘인상주의‘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빛의 효과에 따라 형태를 아른아른하게 표현하고, 대상의 색채를 새롭게 파악하는 일에 몰두하지는 않았다. ‘세잔느’는 그리는 대상의 원래 색채뿐만 아니라, 대상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순간의 색을 얻고자 하였으며, 사물의 형태와 구조를 강조하기 시작한다. 풍경의 기본적인 구조들이 조화와 리듬 속에 드러나고 있으며, 지붕과 나무의 견고한 선과 면은 안정된 분위기를 준다.
목가, 전원생활 (폴 세잔)
Pastorale ou Idylle – Paul Cézanne 1860년대 후반과 1870년대 세잔느는 에로틱한 주제들을 즐겨 그렸는데, 이 전원생활 작품도 이상의 남녀 사랑을 환상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마치 연극 무대와 같은 화폭에는 신비스러운 밤 풍경이 묘사되어 있고, 물가에 몇몇 남성과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전원생활 화면에 누드로 그려진 여인들은 각각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뒤에는 머리를 감으려고 몸을 숙이는 여인, 화면 왼쪽에 노골적으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관능적인 포즈를 취한 여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경에 한 여인이 등을 보이고 돌아 누워있다. 한편, 그림에 등장하는남자들은 여성에 열중하기도 하고 또는 무관심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특히 화면 중앙에 거만하게 턱을 괴고 누워있는 남자는 이 환상을 객관적으로 방관하는 ‘세잔느’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무어식 춤 (툴루즈 로트렉)
La Danse Mauresque – Henri de Toulouse-Lautrec 1896년 가건물이 팔리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1926년 8 등분으로 잘려진 상태로 우연히 갤러리에서 발견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로트렉’의 원작을 잘라버리다니…… 정부에서 구입하여 원상태로 복원하고, 현재는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알고가자, 무어식 춤!!! ‘물랭 루즈 Moulin Rouge’의 유명한 무희 ‘라 굴뤼 La Goulue’는 1895년 파리 ‘벵센느 숲‘에서 매년 열리는 ‘프와 뒤 트론느 Foire du Trone’에 자신의 새로운 스팩타클을 선 보이기 위하여, 부스를 빌리고 ‘뚤루즈 로트렉’에게 광고용 그림을 주문한다. ’로트렉’은 부스로 들어가는 입구 좌측에 ‘물랭 루즈‘의 또 다른 유명한 배우 ‘발렝탱 Vallentin’과 함께 공연했던 ‘라 굴뤼’의 화려한 무대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입구의 오른쪽을 장식했던 이 그림에서 동양의 무희처럼 차려입은 ‘라 글뤼’는 일명 허리춤으로 알려진 이국 취향의 다양한 춤들을 선보이고 있다. ‘로트렉’은 그녀 주위에 두 명의 인물을 함께 그렸는데, 그들 역시 모두 동양 의상을입고 있다. 전면의 좌측에 중절모를 쓰고 등을 돌린 인물은 작가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그 옆에 검은 의상에 큰 모자를 쓴 여인은 ‘잔느 아브릴 Jane Avril’이다. ‘로트렉’은 ‘잔느 아브릴’의 오른편에 영국식 중절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고, 그 옆에는 평론가인 ‘펠릭스 페네옹 felix Feneon’의 날카로운 옆 모습이 보인다.
슈페네커 가족 (폴 고갱)
Schuffenecker et sa famille – Paul Gauguin 1888년 10월 ‘반 고흐 Van Gogh’의 초청으로 ‘아를르 Arles’ 에서 강렬한 색채로 작업을 진행하다, 의견대립으로 고흐와 크게 싸우고, 그 해 12월 두 달간의 ‘아를르 Arles’ 생활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갈 곳이 마땅치 않자, 역시 ‘고갱’과 마찬가지로 잘 다니던 증권 거래소를 그만 두고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며 그림을 그리던 친구 에밀 슈페넥커 친구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그의 작업실과 슈페넥커 가족 4명을 그린 것이다. 밥 값으로….??? 세부 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하였으며, 벽에 걸린 일본판화는 일본 예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
아름다운 앙젤 (폴 고갱)
La belle Angèle – Paul Gauguin 일본식으로 꽃무늬가 그려진 벽지 배경에 원시적인 조각과 대칭으로 위치한 원 속에 그려진 여인은 갇혀 있는 듯….. “나는 원초적 자연 그대로인 브르타뉴 지방을 좋아한다. 화강암투성이의 이 땅에 내 발자국이 울릴 때, 그림에서 찾고자 하는 희미하고도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소리를 듣는다. J’aime la Bretagne, j’y trouve le sauvage, le primitive. Quand mes sabots résonnent sur ce sol de granit, j’entends le son sourd, mat et puissant que je cherche en peinture” – 뽈 고갱 Paul Gauguin 1886년 ‘브르타뉴 Bretagne’ 지방의 작고 아름답고 조용한 항구도시 ‘퐁타방 Pont-Aven’에 도착하여 남긴 초창기 작품에는 ‘인상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1888년 ‘퐁 타방 Pont-Aven’에 다시 돌아온 후, 근방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뭇 남성들을 애태웠던 ‘퐁 타방’ 시의 시장 부인 ‘사트르 Satre’를 사모하며 그린 이 작품에서는, 이미 독자적인 화풍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찾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알고가자, 아름다운 앙젤!!! 젊은 부인 ‘사트르 Satre’의 마음을 구하기 위하여 초상화를 그려서 당사자에게 선물을 하지만, 시대의 걸작(?)을 몰라본 ‘사트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 이 그림은 ‘고갱’에게 되돌아왔단다. 퇴짜!!!! 아름다운 얼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한 ‘고갱’이 화면을 분할하여 특이한 초상화를 그렸으니 모델이 좋아할 리가 없지……. 아름다운 앙젤??? ‘브르타뉴‘ 전통 의상을 입은 ‘사트르’의 얼굴은, 화면의 좌측에 보이는 원시 조각처럼 굳어져있고, 그녀의 이름은 마치 성인을 그린 것처럼 화면 하단에 쓰여 있다. ‘에밀 베흐나흐 […]
아쉬 엉프레르 (폴 세잔)
Achille Emperaire – Paul Cézanne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세잔느’가 화가의 길로 접어들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대가들의 작품을 습작하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1870년 살롱에 출품된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에 의하여 거부된다. 자신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 Aix-en-Provence’에서 친구로 지내던 아쉬이 엉프레흐 Achille Emperaire (1829-1898)를 ‘캐리커처 Caricature’ 방식으로 묘사하는데, 큰 두상에 비하여 왜소한 몸과 빈약한 다리…. 나이프로 두텁게 발라 올린 물감, 화면 전반의 어두운 색조를 사용하는 초기 스타일은 웬지 엉성한 느낌을 준다. 세잔느의 작품세계는, 1872년 ‘피사로 Pissarro’가 살던 ‘오베흐 쉬흐 와즈 Auvers-sur-Oise’로 이사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단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후원자이자 ‘반 고흐’의 마지막을 지켜주던 ‘가쉐박사’와 ‘피사로’의 영향을 받으며……
알리스캉 풍경 (폴 고갱)
Les Alyscamps – Paul Gauguin 1888년 늦가을 고흐의 초대를 받은 고갱은 그 해 겨울을 ‘아를르 Arles‘에서 ‘반 고흐 Van Gogh’와 함께 보내면서 알리스캉 주변의 풍경을 많이 그린다. 이 작품은 ‘아를르‘에 도착한 며칠 뒤에 그려진 것으로 저 멀리 ‘생 또하스 Saint-Horace’ 교회를 배경에 두고, 공동묘지를 다녀 오는 세 여인을 그린 것!!! 여러가지 색상으로 면 분할을 하면서, 관찰한 자연을 화폭에 그대로 옮기는 것 보다는 회화적 공간을 배열한 작품이다. 역동하는 붓 터치와 강렬한 색채로 ‘알리스캉’의 독특한 늦가을 분위기를 훌륭하게 표현하였으며, 독립된 형태와 색상을 통하여 암시적인 효과와 장식적인 효과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앙뚜완 성자 유혹 (폴 세잔)
La Tentation de Saint Antoine – Paul Cézanne < 목욕하는 사람들 Baigneurs > 연작과 유사한 구도로 나타나는 이 앙뚜완 성자의 유혹 작품은 중앙의 여인을 중심으로 세 명의 큐피트가 둘러싸고 있고, 왼쪽에는 ‘성자 앙투완 St. Antoine’와 악마가 자리잡고 있다. 격렬한 몸짓의 성자와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는 별개의 두 인물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전라의 여인은 물론이고 배를 내민 아이들 자세도 오만 불손하게 느껴지도록, 거칠고 어두운 색채를 사용하였으며, 구성이나 붓의 사용에 있어서도 격렬하고 둔탁한 터치를 이용해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초기의 ‘세잔느’ 작품에는 ‘카라밧지오 Caravaggio’,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 ‘도미에 Honoré Daumier’의 영향으로 ‘낭만주의적‘이면서 ‘바로크적‘인 성향이 나타난다. ‘세잔느’는 특히 1862-1869년에 ‘엑상 프로방스 Aix-en-Provence’의 ‘그라네 미술관’에서 ‘카라밧지오’의 고전주의 성향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강간, 약탈, 살인, 난잡한 성적 타락과 같은 육체적 긴장이나 상상적 폭력을 주제로 한 환상적인 작품들을 주로 그린다.
의료검진 (툴루즈 로트렉)
Inspection médicale – Henri de Toulouse-Lautrec 이 작품은 의무 검진을 받기 위해 치마를 걷어 올린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한 창녀를 담고 있는 시리즈이다. ‘뚤루즈 로트렉’은 모델을 아름답게 그리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기계적으로 표현된 눈, 두 줄기의 빨간 선으로 간략히 처리된 입술, 무겁고 둔탁한 엉덩이와 허벅지, 그리고 바닥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다리…… 1892년부터 ‘뚤루즈 로트렉’은 매춘 굴에 관심을 가졌고, 창녀들을 직접 대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화가로 인정(?) 받으면서, 시민의 대중적인 모습과 휘황찬란한 밤의 모습, 향락적인 사창가의 지친 창녀들을 포함하여 동시대의 여성들을 화폭에 담았다. 19세기말 파리의 도시화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던 사창가는 ‘모파상’이나 ‘졸라’의 소설 속에 등장할 뿐 아니라 많은 화가들의 소재가 되는데….. 로트렉은 ‘몽마르트르‘의 유명한 카바레 ‘물랭 루즈 Moulin Rouge’, 무도회장 ‘물랭 드 라 갈렛트 Moulin de la Gallette’, 밤의 까페 ‘검은 고양이 Chat Noir’와 사창가의 여인들을 통하여, 소외된 삶을 묘사하는데 몰두한다.
이탈리아 여인 (빈센트 반 고흐)
L’Italienne – Vincent Van Gogh 작품의 이탈리아 여인 인물은 그림자도 없고, 원근감도 없고, 중심점이 없이 퍼진듯한 단조로운 인상으로 표현하였으며, 배경의 넓은 노란색과 전면의 빨간색과 초록색을 비롯한 다양한 원피스의 강렬한 색채들…..또한 화면에 띠를 두른 빨간색과 초록색 줄무늬의 보색 대비 역시 원피스와 여인의 얼굴에 나타난 강렬한 색채들과 조화를 이루지만, 이탈리아 여인의 얼굴은 화가의 주관적인 색채가 가해져서 마치 마스크를 보는 듯….. 파리의 ’구필 Goupil’ 화랑에서 일하고 있던 동생 ‘테오 Théo’ 덕분에, 1886년 파리에 정착한 ‘반 고흐’는 ‘피사로 Pissarro’, ‘시냑 Signac’, ‘고갱 Gauguin’, ‘에밀 베흐나흐 Emile Bernard’, ‘뚤루즈 로트랙 Toulouse-Lautrec’과 교분을 쌓으며 점차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빛과 색깔의 움직임에 흥미를 갖는다. 작품의 모델이 된 이탈리아 여인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Agostina Segatori’는 ‘반 고흐’가 자주 드나들던 카바레 ‘르 땅부행 Le Tambourin’(탬버린)의 주인인데, 그림을 좋아하여 많은 화가들과 친분을 유지하였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반 고흐’와는 적대 관계로 돌아선단다. 이루지 못한 사랑???? 1887년 겨울에 그려진 이 그림은, 1888년 2월에 ‘아흘르 Arles‘로 떠나기 전 파리 시기를 마감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립하기 시작한 과도기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춤추는 잔 아브릴 (로트렉)
Jane Avril dansant – Henri de Toulouse-Lautrec 툴루즈 로트렉의 춤추는 잔느 아브릴 작품에서 모델이 다리를 들어올린 모습을 간결한 선으로 우아하게 표현한 것은 아마도 어릴 적 두 번의 낙마사고로 성장이 멈춘 자신의 다리와 비교하여 이상한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알고가자, 툴루즈 로트렉의 잔느 아브릴!!! ‘로트렉’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올랭피아’이며 섬세한 아름다움과 교양을 갖춘 잔느 아브릴 Jane Avril 을 여러 번 그리는데, 모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포착하고자 노력한다. 동적인 운동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검은색으로 인물의 선을 처리하고 밝은 흰색으로 양감을 표현는 방식으로 인물을 부각시키었고, 배경 처리는 미완성인 듯 거칠게 표현한다. 순간 찰칵!!! < 상세한 기억은 두 세시간 이상 가지 않는다. Le souvenir précis de n’avoir pas posé plus de deux ou trois heures. > 1884년부터 ‘몽마르트르‘에 정착한 ‘로트렉’은 동시대 파리 시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연극에 흥미를 느꼈으며 매춘, 카페, 무희 등등의 밤의 파리 생활과 밤의 볼거리에 빠져들며 자신의 방법대로 그리기 시작한다.
침대 (툴루즈 로트렉)
Le lit – Henri de Toulouse-Lautrec 1892년 완성된 이 작품에서 침대 시트 밖으로 얼굴만 내놓고 마주보며 누워 있는 두 여성은 사창가의 레즈비언이다. ‘로트렉’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도 화폭에 담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사랑을 나누는 레즈비언들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찾았으며 찬사를 보냈단다. 19세기말 파리의 도시화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던 사창가는 수 많은 화가들의 소재가 되는데, 로트렉은 ‘몽마르트르‘에 거주하면서 사창가 여성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다. 그는 여인들이 옷 갈아입는 모습, 슬픈 속내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 감홍색 벨벳 소파 위에 누워 있거나, 털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 등 다양한 광경들을 자연스럽게 잡아낼 수 있는 유일한 화가이었다고…
황색 그리스도 자화상 (폴 고갱)
Autoportrait au Christ Jaune – Paul Gauguin 황색 그리스도 자화상 작품은, 브르타뉴 지방의 작고 조용한 아름다운 항구도시 ‘퐁타방 Pont-Avent’에 머물면서, 근처 작은 마을의 교회에 걸려 있는 못 박힌 예수상의 십자가를 그린 것이다. 경건하게 그려야 할 그리스도를 마치 ‘브르타뉴‘지방의 농부처럼 그렸다는 이유로 물의를 빚었던 이 그림은 좌우가 바뀐 것으로 미루어보아, 거울에 비친 황색 그리스도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즉,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의 뒷 배경에 보이는 것을 그렸다는데… 교회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황색이 아니라 아이보리색이지만, 벽의 침침한 색으로 해서 노란색처럼 보이는 모습을 그리면서 배경에 ‘퐁타방’의 언덕을 그려 넣고, 십자가 아래 ‘브르따뉴‘ 지방의 의상을 입은 여인들을 그려 넣는다. 전체적인 구성을 단순화하고 구체적인 요소들을 생략하면서, 입체감이 나지 않도록 평편하게 표현하였고, 화면 오른쪽 위로 보이는 도자기 항아리는 그 해 봄에 고갱이 직접 만든 도자기인데, 자신을 순교자의 모습으로 표현한 <자화상 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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