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프랑스 동영상
14살 어린 무용수 (에드가 드가)
Petite Danseuse de 14 ans – Edgas Degas 1881년 제 6회 ‘인상파 전’에 출품한 것으로,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 소녀의 유연한 몸은 청동으로 주물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앞으로 내어 민 오른발, 약간 치켜든 머리는 곧 다음 동작으로 움직일 듯한 긴장감을 주는 어린 무용수!!! “조각 분야에서 진정한 현대화의 유일한 시도이다. La seule tentative vraiment moderne que je connaisse dans la sculture” – Huysmans 상체의 보디스와 발레용 신발은 청동 제작된 몸체에 밀랍을 얇게 바르고 색을 칠하여 사실감을 극대화 시키고 있으며, 진짜 머리카락으로 만든 머리를 묶고 있는 머리띠와 망사천으로 만든 발레용 스커트 치마에서는 경쾌함마저 느껴지지만, 실제 머리카락은 어쩐지 좀… 1881년부터 조각에 심취한 ‘드가’는 < 밀랍으로 동물이나 사람을 만드는 것은 나의 작품 세계에 생명력과 열정과 표현력을 주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C’est pour ma seule satisfaction que j’ai modelé en cire bêtes et gens, non pour me délasser de la peinture ou du dessin, mais pour donner à mes peintures, à mes dessins, plus d’expression, plus d’ardeur et plus de vie……. Ce sont des exercices pour me mettre en train, du document, sans plus. >라고 말하였다고….. 1917년 ‘드가’의 사망 이후, 그의 작업실에서 밀랍 또는 흙으로 빚은 약 150 점 정도의 조각이 발견되어, ‘드가’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조각가 ‘바르톨로메 Bartholomé’에 의하여 1920-1921년에 70 점 정도의 작품이 […]
개양귀비 꽃 (클로드 모네)
Les coquelicots – Claude Monet 초기에 해당되는 34세 때의 작품으로,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과 함께 1874년 제 1회 ‘인상주의 전’에 출품된 것이다. 한가로운 여가 시간에 잡초가 우거진 풀 밭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개양귀비 꽃 사이를 도시의 두 여인이 자식들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모자와 양산을 들고 산책하는 모습은 후일 <양산을 든 여인 Femme à l’ombrelle> 연작을 예고하는 듯….. ‘모네’는 이 개양귀비 작품에서 푸른 하늘과 솜털 구름의 상단과 물 위에 떠있는 듯한 터치로 처리된 개양귀비의 빨간 반점, 그리고 화면 중앙의 멀리 보이는 건물, 포즈를 취한 여인의 옷과 양산이 독립된 색채를 가지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표현하였다.
까치 (클로드 모네)
La Pie – Claude Monet 예술가들과 부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에트르타 Etretat’에서 1868-1869년 겨울을 지나며 남긴 작품으로, 이 작품을 그리면서 친구인 ‘바질 Bazille’에게 보낸 글에서 의미하듯, ‘모네’의 중요하고도 야심 찬 실험이 까치 작품에 들어가있다. “여름 못지않게 겨울이 더 아름다운 시골로 내려가네. 이번 겨울에는 아주 신중한 작업을 할 계획이라네….. Je vais dans la campagne qui est si bell ici, que je trouve peut-être plus agréable encore l’hiver que l’été, et naturellement je travaille….. je crois que cette année, je vais faire des choses sérieuses.» – Bazille 에게 보낸 글 중에서 붓의 터치가 자유롭지만 전체적인 균일감을 주고 있으며, 화폭의 크기가 크다는 표면적인 모습 이외에, 햇볕 아래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미세하게 변화하는 눈 풍경의 농도와 햇빛에 반사되는 광채를 화폭에 담은 것이라고…… 알고가자, 모네의 까치!!! 1860-70년 사이에 눈 덮인 시골 풍경을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다른 화가들은 시골의 황량함과 적막감에 관심을 갖는단다. 하지만, ‘모네’의 이 작품에는 흰색의 다양함과 세부 묘사를 통하여 생기가 넘치고 햇빛이 반사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햇빛에 반사된 하얀 눈은 노란색과 푸른색, 그리고 엷은 보라색의 미세한 색감들이 어우러져 뽀송 뽀송한 눈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으며, 흰색과 대조를 이루는 까만 색 까치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는 듯 하며, 흰 눈에 가치를 부여해준다. 만일 까치가 푸드득 날아간다면…… 밤새 눈이 쌓인 고요한 시골 마을이 확 깨어나면서 동영상이 시작될 것만 같다.^_^
로슈포르 탈출 (에두아르 마네)
L’Evasion de Rochefort – Eduard Manet 파리 코뮌 시기에 언론인으로 코뮌을 지지했다가, 1872년 누벨 칼레도니아에 유배되었었고, 투옥된 지 2년 만에 섬을 극적으로 탈출한 호쉬풔흐 정치가의 탈출 장면을 그린 것이란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시사성에 중요성을 두지 않고, 일렁이는 바다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의 현란함을 표현하는 하늘과 바다와는 다르게,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원이 되고픈 어린시절의 이루지못한 꿈에 대한 반발일까???? 1880년대부터는 ‘인상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마네’의 흔적이 보인다.
롤라 드 발랑스 (에두아르 마네)
Lola de Valence – Eduard Manet 1862년 파리를 순회 공연하였던 ‘세빌리아의 꽃 Flor de Sevilla’ 극단의 무용수 롤라 드 발랑스 (스페인 무희)를 통해 당시 스페인 사람의 전통적인 모습을 표현하려 노력한 것이라고…. 알고가자, 마네의 롤라 드 발랑스!!! 여인이 입은 검은색 바탕에 꽃들과 장식 술들이 의도적으로 빨간색과 녹색의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어깨와 머리에 두른 흰색의 스카프와, 부드러운 상아색의 팔과 다리는 어둡게 처리된 배경과 스커트의 현란함으로 인하여 신비감과 미묘함을 주고 있다. 또한, 관람객을 보기 위하여 3/4 옆으로 돌아선 무용수의 모습…….
루브시엔느 거리 (카미유 피사로)
La Route de Louveciennes – Camille Pissarro 서리가 내린 풍경이나 눈 덮인 풍경을 즐겨 다루며 자연에 심취한 ‘피사로’가, 파리 서쪽에 위치한 루브시엔느 도시에 정착하여, 1872년에 완성한 작품. 잔설이 남아 있는 길에 오후의 짧은 햇빛이 드는 풍경을 묘사하였으며, 길가에 심겨진 가로수를 이용한 원근법으로 깊은 공간감을 주는 한적한 시골길의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1870년 프러시아와 프랑스가 전쟁에 돌입하자, ‘피사로’는 프랑스를 떠나 런던으로 피난을 갔으며(병역기피?) 그 곳에서 영국의 자연주의 ‘콘스터블’의 예술에 매혹되었고, ‘터너 Turner’의 “눈과 얼음의 효과”에 영향을 받았다고…..
마루 깎는 사람들 (카유보트)
Raboteurs de Parquet – Gustave Caillebotte ‘오스만 양식’의 건물 바닥에 송판을 깔고 대패질을 하여 다듬고 사포로 문질러서 매끈매끈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마루를 깎는 사람들!!!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일상 생활 모습을 화폭에 담은 이 작품은, 화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관찰하고, 대패질하는 사람들의 호흡과 동작을 이해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적게 또는 많이 깎을 수 있도록 대패 날의 간격을 조정하는 망치가 보이고, 고된 작업의 윤활유인 포도주가 보인다. 막걸리 한잔에 노동의 버거움을 벗어버리 듯…… ‘까이유보트’는 비록 자신의 화법과 다르기는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가난한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하여 주기도하고, 또한 1876년 두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하여, 너무 일상적이며 평범한 주제를 선택하였다는 비평을 받기도 하였단다.
물랭 드 라 갈렛트 (르누아르)
Le bal du Moulin de la Galette – Pierre Auguste Renoir 1877년 ‘제 3회 인상주의 전’에 출품했던 이 물랭 드 라 갈레트 작품은 120호나 되는 대형 캔버스를 아틀리에에서 ‘몽마르트 언덕‘의 무도장까지 매일 가지고 가서, 현장의 정경을 직접 묘사한 것이라고….. “그림은 즐겁고, 아름답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런 즐거움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지만…… Pour moi, un tableau doit être une chose aimable, Joyeuse et jolie. Il y a assez de choses embêtantes dans la vie pour que nous n`en fabriquions pas encore d`autres. » – Renoir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탐구를 옥외의 밝은 빛 아래의 인물에 적용하여, 풍부한 색채의 반점들과 밝은 빛으로 진동하는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그는 작품의 구성에 인물의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인상주의‘를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등 19세기 프랑스 미술의 위대한 단계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린다. 풍경 또는 정물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야와 영감의 폭을 넓혀 감으로써, 그는 프랑스 회화만이 아니라 전 세계 회화의 위대한 거장들 속에 자리잡게 된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을 다녀가지만, 현재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고 있는 물랭 드 라 갈레트 현장을 찾아서 식사를 즐기는 우리나라 관광객은 거의 없다. 아마도 이 그림의 소재가 된 ‘물랭 드 라 갈렛트’가 아직도 몽마르트르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_^
발코니 (에두아르 마네)
Le Balcon – Eduard Manet 생각에 잠긴 듯 매혹적인 모습으로 ‘베르트 모리조’가 발코니에 앉아 있고, 뒤편에는 풍경 화가인 ‘앙투안느 기유메’가 한 손에 담배를 든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먼 산을 쳐다보는 듯한 모습은 ‘마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관객들이 다다를 수 없는 내부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1868년 여름, 노르망디 지방 대서양 연안의 유명 휴양지 ‘불로뉴 쉬흐 메흐 Boulogne-sur-mer’에서의 한 때를 회상하며 그린 작품으로, 젊은 여성 화가이며 자신의 제수가 되는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발코니 작품은 그 첫 번째이다. “반짝이는 구두와 넥타이로 감싼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시적인지를 알게 해주는 화가가 진정한 화가이다. -보들레르 Celui-là sera le peintre, le vrai peintre, qui saura nous faire voir combien nous sommes grands et poétiques dans nos cravates et nos bottines vernies » – Baudelaire 모든 악평을 물리치고, 당대 미의 기준과 서정성, 유머를 ‘마네’의 작품 세계에서 발견한 ‘보들레르’의 호평이다. 이 그림은 ‘마네’가 스페인의 ‘루이 필립 갤러리’에서 본 ‘프란시스 고야 Goyo’의 <발코니의 멋쟁이들> 그림에서 영향을 받아서 모방한 것이란다. 한정된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의 구도, 여인들의 밝은 의상과 발코니 외부의 녹색에 의한 명암의 대조, 네 사람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시선과 표정 등은 ‘고야’의 작품과 유사한 구성을 띠고 있다고…..
벨렐리 가족 (에드가 드가)
La Famille Bellelli – Edgas Degas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의 단순한 구성은, 왼쪽의 열려진 문과 오른쪽 거울로 열려있는 투시도 효과를 주고 있으며, 색채는 절제되어 있으나 두 딸의 검은 의상과 하얀 레이스는 ‘드가’의 세련된 색채 감각을 보여준다. 드가의 밸랠리 가족!!!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부인과 자녀들은 그들이 상중에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고, 얼마 전 죽은 할아버지 ‘힐레르 드 가 Hilaire De Gas’의 초상화를 그려 넣음으로써 이를 보충 설명하였다. 이탈리아 ‘플로렌스 Florence’에 사는 숙모 ‘라우르 밸랠리 Laure Bellelli’와 그 남편인 ‘제나로 벨렐리 Gennaro Bellelli’, 10살짜리 ‘지오바나 Giovanna’와 7살짜리 ‘지울리아 Giula’를 그린 것 이란다. 고모 ‘라우르 밸랠리 Laure Bellelli’는 약간 거만하고 엄격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 냉담하고 무표정한 그들의 표정을 통해 ‘드가’는 행복하지 못한 가정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냉기가 흐르는 밸랠리 가족!! 큰 딸은 이미 어른들의 냉전을 감지한 듯 하고, 둘째 딸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지 장난기를 머금고 있다…. 그런데 작품의 오른쪽 하단에 반쯤 잘린 강아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냅사진처럼????
생 라자르 역 (클로드 모네)
La gare Saint-Lazare – Claude Monet 1876년부터 1878년까지 ‘모네’는 그의 첫 번째 연작이라 할 수 있는 생 라자흐 기차역 주변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을 그리는데, 이 작품은 1878년 제 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된 일곱편 중의 하나이다. “모네는 멋있는 기차역을 보여준다. 거대한 철골구조 밑으로 수증기에 휩싸여 들어오는 기차의 굉음이 들리는 듯 하다. 선배들이 숲과 강에서 시상을 떠올렸듯, 당대의 예술가들은 바로 여기를 그려야 한다.” – Emile Zola – ‘모네’는 1870-71년 ‘보불전쟁’ 중 머물렀던 런던에서 ‘터너’의 작품들을 보고, 빛의 마술적 효과와 공기가 그림의 주제보다 중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유리 지붕을 통해 구름처럼 서리는 연기와 김 사이로 흘러 드는 빛의 효과, 그러한 혼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기관차와 객차의 형태를 묘사한다.
소년과 고양이 (르누아르)
Le Jeune Garçon au Chat – Pierre Auguste Renoir 이상주의적인 아름다움이나 신화를 주제로 선택하지않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소년을 광택나는 천과 고양이 그리고 어둠과 빛으로 표현하였다. 알고가자, 르느와르의 고양이와 소년!! 아직 성숙하지 않은 소년의 섹시함을 강조하였는데, 부끄러움 없이 관람객을 힐끗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 유혹??? ‘루브르 박물관‘에서 감탄했던 거장들의 전통적인 주제 속에서, 더 이상 ‘비너스’나 ‘오달리스크 Odalisque’ 처럼 신화적으로 구실을 찾거나 이상화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벌거벗은 나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고양이와 소년!!! 혹시, 당시 파리에서의 매춘 상황(?)을 고발하는 것은 아닐까 ? 1865년 ‘살롱전’에 출품되어 스캔달을 일으켰던 ‘마네 Manet’의 < 올랭피아 Olympia > 처럼…….
아르장퇴유 다리 (클로드 모네)
Le pont d`Argenteuil – Claude Monet 1871년부터 파리 서쪽의 근교 아르장퇴유 Argenteuil 에서 지내면서, 겨우 이젤을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작업실을 배 위에 만들고는 센느 강을 주제로 자주 그림을 그렸단다. 건너편의 집과 나무, 다리와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면의 잔영과 센느강 위를 유유히 흘러 다니는 돛단배들은 모네가 이 곳에서 활동하는 동안 즐겨 그리던 모티브였다고…..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찾고자 노력하던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빛과 자연의 요소들을 화폭에 담았지만,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자연의 한 귀퉁이를 그리는 화가들과는 달리 원거리의 사물을 3차원의 공간에 담은 것이 특이하다. 또한, 혼합하지 않은 원색의 세밀한 터치로 물의 투명한 느낌과 잔영의 흔들림, 빛의 반사 등을 동시에 표현한 수면 부분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질감을 느낄 수 없다. 미술을 잘 모르더라도, 파리 체류 기간 동안에 ‘오르세 미술관‘을 꼭 방문하여 근대화가들의 고뇌를 느껴보자!!!
아르장퇴유 철교 (클로드 모네)
Pont du Chemin de Fer, Argenteui – Claude Monet 1871년부터 ‘아르장퇴유 Argenteuil’에 정착한 모네는 주변의 다리와 철교 등을 종종 화폭에 담는다. 이 작품에는 철교를 지나는 기차가 비스듬하게 배치되었으며, 힘의 상징인 증기는 대기 속으로 흩어지고, 일렁이는 수면에 드리워진 철교의 이미지와 햇볕의 미묘한 변화…. 4년 후에 그리는 ‘생라자르 역‘을 연상시킨다. 새로운 이동 수단인 철도 덕분에, 전에는 꿈에도 그리지 못하던 파리 근교와 ‘노르망디 지방의 해변까지 쉽게 갈 수 있는 생활의 변화는 충격이었다. 근대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기차와 철도를 수 많은 화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압생트 술 (에드가 드가)
L’Absinthe – Edgas Degas 19세기 후반 당시 대중의 삶을 묘사한 ‘에밀 졸라 Zola’의 ‘선술집 Assommoir’이라는 소설에서 영향을 받아,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로,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사회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표현한 작품, 압생트!!! 이 작품의 제목은 쑥 색깔이 나는 독하기로 유명한 독주 압생트!!! 20세기 초반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매일 술에 쩔어 사는 서민들(도시의 소외된 계층)의 건강을 이유로, 정부가 생산을 금지 시켰다는 압생트!!! 요즘, 시판되는 압생트와는 달리 40 도가 넘는 독주 이었다고….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는 여자, 그리고 화면 왼편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는 나란히 옆에 앉아 있지만 서로의 상념 속에 갇혀 있는 모습. 왼쪽 하단의 식탁 선과 신문의 방향이 우리의 시선을 화면 밖으로 유도한다. 상상의 나래를 펴 도록…
양산 든 여인 (클로드 모네)
Femme à l’Ombrelle – Claude Monet 모네는 1860년대 파리 근교의 ‘아흐장뙤이’에 머물면서 몇 개의 인물화를 그렸었지만, 점점 풍경화에 집착하다가 1880년대 중반부터는 인물을 둘러싼 빛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며, 인물이 풍경의 일원으로 표현되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오르세 미술관 관람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양산을 든 여인 작품 앞에서 감탄을 터트린다. 실루엣만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감정이 드러나는 이 작품은 첫 번째 부인 ‘까미유’와 사별한 후, 두 번째 부인을 그린 것이라는 내용들이 인터넷에 떠 돌아다니지만, 사실은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 오쉬데 Alice Hochedé’의 딸 ‘쉬잔 오쉬데 Suzanne Hochedé’가 살랑이는 바람을 등뒤로 받으며 언덕 위에 초록색 양산을 들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즉, 수양 딸!!!! 허리에 붉은 장식이 돋보이는 흰 드레스를 입고 스카프를 날리며 자연의 따사로움을 즐기고 있는 여인을 표현하면서, 양산 때문에 만들어지는 빛과 그늘의 작용에 심취하여 얼굴의 윤곽을 표현하지 않았으며, 하늘과 구름, 풀들의 움직임으로 바람을 묘사하였다.
에밀 졸라 (에두아르 마네)
Emile Zola – Eduard Manet 에밀 졸라 작가가 자신의 책상에서 책을 펼쳐서 앉아 있고, 펜대 너머로는 화가의 싸인이 공식적으로 들어간 책이 보인다. 이 책은 ‘알마 광장 Place d’Alma’에서 열린 마네의 특별미술전에서 < 새로운 화법, 에두아르 마네 >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이다. 초상화라기 보다는,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의 그림 형식처럼, 인물의 성격이 반영된 정물화라고 할 수 있는데, 1868년 살롱에 출품된 이 작품은 원근법과 ‘졸라’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논란이 되었었다고…… 그 위로는, 1866년 살롱전에서 낙선된 ‘마네’의 < 올랭피아 Olympia >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글을 실으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작품의 사진이 걸려있고, 배경으로는 스페인 최고의 화가 ‘벨라스케 Velasquez’의 <술꾼들 les Buveurs>를 모사한 그림이 보인다. 마네도 이렇게 유명한 화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왼쪽에는 ‘기따가와 우따마로 kitagawa Utamaro’의 < 아와의 무사 Lutteur Onaruto Nadaemon de la province d’Awa > 판화가 걸려있고, 에밀 졸라 작가의 뒷 편으로는 색채의 단순화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확신을 주었던 후기 ‘우키요 Ukiyo’의 채색 작품이 걸려 있기에, 이 초상화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마네’의 작업실에서 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페라 무용교실 (에드가 드가)
Foyer de la danse à l`Opéra – Edgar Degas 경마의 움직임에 빠졌던 ‘드가’는 1871년 무렵부터 오페라를 자주 찾으면서 무용수들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연습하고 있거나 쉬는 모습 또는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인 발레리나들의 다양한 포즈들을 스냅 사진 형식으로 화폭에 담는다. 이 작품은 오페라 무용교실 무용수들을 그린 작품들 중 비교적 초창기의 그림으로, 발레리나들은 무용교실 벽에 설치된 가로 대에서 이제 막 개인 연습을 끝낸 듯 피곤하게 늘어진 모습이나 몸을 풀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왼쪽의 발레리나로부터 벽에 늘어선 무희들로 이동하여 오른쪽의 의자에 앉은 선생에게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고, 안정된 구성과 함께 단색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연습실의 벽면과 바닥이 공간을 더욱 정적인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올랭피아 (에두아르 마네)
Olympia – Eduard Manet 좋아하던 모델 ‘빅토린느 뫼랑 Victorine Meurent’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자세에 있어서는 ‘티티안 Titien’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Vénus d`Urbin>의 영향을 받았고, 정신이나 기법에 있어서는 ‘고야 Goya’의 <옷 벗은 마야 Maja nue>의 영향을 받았단다. “보이는대로 그렸다. J`ai fait ce que j`ai vu.” -Manet 1865년 ‘살롱 Salon’에 이 작품을 출품하면서, 자신이 또다시 스캔들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는데, 올랭피아 모델의 몸은 이상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추하고 저속하게 표현되었고, 나체는 목에 두른 검은 리본과 발에 신은 슬리퍼로 더욱 강조가 되고 있으며, 부끄러움 없이 관람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당당함을 넘어서 무례하게 보인다. 한 고객으로부터 전달 받은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 하녀와 발치의 검은 고양이는 이국적 풍경을 자아내면서 혼란함을 가중시키고….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주제만큼이나 획기적이었다. 색의 배합이 난잡하면서 혼란하고, 저속하고 격렬한 대비는, 전통적 화법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 매춘을 변호하는 작품이라며 비난을 받았고, 비평가들 역시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비너스”, “인도산 고무로 만든 고릴라 암컷”이라고 혹평을 한다. 단지 ‘에밀 졸라 Emile Zola’만이 ‘마네’를 옹호하였고, 나중에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에밀졸라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고…. ‘마네’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감탄했던 거장들의 전통 속에서 더 이상 비너스나 ‘오달리스크 Odalisque’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벌거벗은 창녀의 사실적인 나체를 우회적이거나 신화적인 구실 없이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하였으며, 터어키의 ‘하렘 Harem’이 아닌 파리에서의 매춘 사회를 고발하는 현실적인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하여 희화적인 방식으로 19세기 ‘살롱 Salon’에서 빈번하게 […]
인상주의
Impressionnisme 색채 묘사의 혁명을 일으킨 ‘인상주의’. 1860년경에서 1890년대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업했던 유파를 말한다. 형태 묘사의 혁명이 그리스 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면, ‘인상주의’는 색채 묘사의 혁명을 일으킨 셈!!!!! ‘끌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바질 Jean-Frédéric Bazille’ (1841-70), ‘시슬리 Alfred Sisley’ (1839-99) 등은 1863년 ‘낙선전 Salon des Refusés’에서 전시된 ‘마네 Eduard Manet’ (1832-1883)의 <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에 고무되어 ‘마네’의 ‘반 아카데믹’한 화풍을 따른다. 그들은 관전인 ‘살롱’에서 자신들의 작품이 거절되자, 뜻을 모아 1874년 ‘나다르 Nadar’의 사진관에서 자신들만의 그룹 전을 열었고, 이후 그들은 1886년까지 총 7차례의 그룹 전을 열고,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화법을 전개하였다. “인상주의”란 명칭은 1874년 신문기자였던 ‘루이 르흐와 Louis Leroy’가 ‘모네 Claude Monet’의 < 해돋이-인상 >을 가리켜 “본질”보다는 “인상”을 그렸다고 쓴 야유 섞인 비평에서 비롯되었단다. ‘인상주의’가 등장한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도시화 및 교통 수단의 발달이 가속화되고, 자연과학의 발달로 실증적 정신과 진보적 미래 관이 팽배하였단다. ‘프랑스 혁명‘(1789)과 함께 부상한 시민계급은 현실을 중시하였고, 이러한 시대 정신은 ‘사실주의‘로 발현되어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태도를 낳았다. ‘인상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사실주의자’들의 태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연은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이었으며, 변화의 원인은 태양 광선의 작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상주의자’들은 태양 광선의 작용에 따라 자연 대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순간성을 포착하고자 야외에서 주로 작업하였다. 사물의 고유의 색이란 개념도 본래 […]
점심식사 (클로드 모네)
Le Déjeuner – Claude Monet 나무 그늘 속에 벤치 위의 양산과 바구니, 헝클어진 식탁에 어지럽게 놓여진 접시와 비워진 포도주 잔, 나뭇잎을 통과한 빛의 농도에 따라서 다른 색상으로 보이는 한가로운 한 낮의 점심식사 풍경을 보여준다.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밀집 모자는 다른 부분들과 강한 대조를 이루며,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농도가 미묘하고 신비한 분위기로…..알고가자, 모네의 점심식사!!! 1867년 모네와 ‘까미유’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 ‘장 Jean’이 식탁 왼쪽 그늘에서 블록 쌓기에 정신이 팔려 있고, 화면 뒤쪽의 유모가 지켜보고 있는 모습으로 ‘모네’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 준다. 어떤 불행이 다가오는지도 모르는 채……..
정원 (클로드 모네)
Le Jardin – Claude Monet 연 자주색 아이리스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그린 이 작품은 꽃밭을 가로지르는 자갈 길이 초록색 창문의 집으로 이어져 있고, 집은 잎새에 가려 언뜻 눈에 띨 뿐이다. 꽃이 활짝 핀 정원에서 밀집 모자를 쓴 모네가 반겨줄 듯….. « Je suis dans le ravissement. Giverny est un pays slpendide pour moi » 1883년 파리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지베르니 Giverny‘에 정착 후 ‘모네’는 곧바로 화려한 색채의 꽃밭을 만들고, 빛의 움직임에 따라서 변하는 색채를 그리는 주요 장소로 이용한다. 시간과 햇볓의 강도에 따라 변회하는 각양각색의 꽃이 만발한 정원을 그린 작품.!!! 여유가 된다면, 작가의 아뜰리에가 있는 ‘지베르니‘ 정원을 꼭 들려보시길….. 정원!!!
정원의 여인들 (클로드 모네)
Femmes au Jardin – Claude Monet 작품에서 제각기 다른 포즈의 세 인물은 후에 ‘끌로드 모네’의 부인이 되는 ‘카미유 Camille Doncieux’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세 포지션으로 모델을 선 것!!!! 캔버스 위쪽에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도록, 집의 정원에 구덩이를 파서 캔버스를 그 안에 설치하고, 나뭇잎을 그리기 위해 적당한 햇빛을 기다리며 빛의 강한 명암과 색채의 두드러짐을 강조하였다. 1866년 여름, 파리 근교의 ‘세브르’에서 이 작품을 계획하고, 노르망디의 진주 ‘옹플뢰르‘에서 작업을 하여, 1867년 ‘살롱전’에 출품하지만, 참신함이 떨어지는 주제 선택과 밝은 부분과 그늘 부분의 현저한 대조를 이유로 탈락된다. 이따금 이 곳을 방문했던 ‘사실주의‘ 화가 ‘꾸르베’는 이 색다른 제작 광경이나, 나뭇잎을 그리기 위해 적당한 햇빛을 기다리는 ‘모네’를 보고 감탄하였다고……
책 읽는 여인 (르누아르)
La Liseuse – Pierre Auguste Renoir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을 받아, 책을 읽고있는 한 여인을 묘사한것으로, 책에서 나오는 반사광은 얼굴의 윤곽을 투명하게 만들어 준다. 책 읽는 여인!!! 붓의 터치는 어떤 곳에서는 물감을 두껍게 발라 놓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단순하게 씻어 내리며 자연스러운 필치를 보이고 있는데….. 여인의 얼굴에서 괄호형의 곡선은 입술과 눈, 눈썹 등 화면의 여러 곳에서 반복되어, 생기 발랄한 매력을 발산하도록 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은은히 비쳐지는 책 읽는 여인!!! 이 작품의 모델은 어느 부자집 귀부인일까? 신 지식인일까? 사실은, 가난한 ‘몽마르트르 언덕‘ 화가들의 친구인 화류계 여인(창녀) ‘마흐고 Margot’라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Claude Monet – Pierre Auguste Renoir 인상파 그룹 중에서 유일하게 인물화에 전념한 작가인 ‘르느와르’는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작품을 많이 남기는데, 이 작품은 거의 유일하게 남자 친구을 그리는데…. ‘바르비종 Barbizon’과 퐁텐블로 Fontainebleau’로 가서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는 야외 스케치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작업실에서 초상화에 매진하며 인상파 화가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던 르느와르!!! 1862년 말 ‘글레르 Gleyre’의 개인 작업실에서 만난 ‘모네’와 ‘르느와르’는 가까운 친구가 되어, 1867년 경에는 ‘그르누이예흐 Grenouillère’, ‘부지발 Bougival’ 등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인상주의‘를 개척한다. 1875년 경 파리 서쪽의 ‘아흐장퇴이 Argenteuil’에서도 함께 작업을 하는데, 이 초상화도 그때 그려진 것으로, 끌로드 모네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 중에 진지한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화가의 모습은 유연하고 섬세한 터치로 표현되었다. 끌로드 모네의 집과 작업실인 ‘지베르니‘를 방문하여 2층에 오르면 보이는 모네 초상화 작품은 짝퉁이라고….
풀밭 위의 식사 (에두아르 마네)
Le déjeuner sur l`herbe – Eduard Manet <목욕 Le bain>이라는 이름으로 1863년 “낙선 전시회”에 출품된 것인데, 풀밭 위의 식사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혹독한 비평과 조소로 유명(?)하게 된 ‘마네’는 심한 상처를 받는다. 당시에는 ‘살롱 Salon’ 전이 유일한 화가들의 등용문이었는데, 1863년 심사 위원들이 출품된 작품의 절반 이상을 거부하여 불평이 많자 ‘나폴레옹 3세’가 낙선자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 Titien’의 <전원 음악회>와 소실된 ‘라파엘로 Raphaël’의 작품을 모사한 ‘마르크 앙투안느 레몽디’의 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쿠르베 Courbet’의 ‘사실주의‘ 처럼 여성 누드를 전혀 우화나 신화적인 베일로 감싸https://algogaza.com/realisme/지 않고, 적나라하게 그리는 자신만의 방법을 보여준다. 또한 등장 인물도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풀밭 위의 식사 그림 왼쪽에 앉아 있는 여인의 육체는 유백색의 투명한 피부 대신 윤곽과 살집 묘사가 칙칙하기만 한 여인의 육체로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이 그림에는 정물화와 풍경화가 섞여 있다. 관중들은 풀밭 위의 식사 작품에서 순수한 사실주의적 나체의 관념에 대해서, 즉 뚜렷한 윤곽선으로 거칠게 그려진 전혀 이상화되지 않은 형태의 나체에 대해 격렬한 항의와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와 동시에 화면의 밝은 부분과 격렬하게 대조되는 그림자의 처리 방식에도 충격을 받았단다. 17세기 이후 그림 유형의 서열은 초상화, 역사화, 신화화가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풍경화와 정물화는 가장 저열한 장르에 속해 있었다. 또한 여성의 나체는 비너스, 다이아나, 혹은 이브 등 신화나 성서 속의 인물들에 […]
풀밭 위의 식사 (클로드 모네)
Le Déjeuner sur l’Herbe – Claude Monet 나뭇잎 사이로 비추어지는 햇빛의 작용으로 달라지는 지면과 옷들의 색깔을 묘사하며, 빛의 세계에 빠져들던 ‘모네’는 1866년 ‘살롱 전’ 출품을 위하여, 길이 6 미터에 높이 4.6 미터의 대작으로 그린 풀밭 위의 점심!! 숭배하던 선배 화가 ‘마네 Edouard Manet’에 대한 존경심과 그의 재능에 도전하고픈 의도에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와 똑 같은 주제를 선정한 것 이라고…. 이 작품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산뜻하고 우아하게 차려 입었지만, ‘모네’의 초창기 작품으로, 어두운 색조와 그림자가 눈에 띈다. 밝은 빛과 그 속에 어우러진 풍경에 관심을 가지긴 하였지만, 넓은 면으로 견고하게 잡은 형태감, 어두운 색조와 그림자의 강한 콘트라스트…. 알고가자,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끌로드 모네는 하늘과 바다의 아버지로 불리며 아름다운 노르망디의 해변도시 ‘옹플뢰흐 Honfleur’에서 활동하던 ‘부댕 Boudin’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라뺑 아질 Lapin agile’의 간판을 그린 친구이자 동료인 ‘바질 Frédéric Bazille’과 ‘사실주의‘의 대부이며, 빛의 움직임과 정직하기로 유명한 화가 ‘쿠르베 Gustave Courbet’를 멘토로 삼는단다. 이 작품은 ‘퐁텐블로 궁전‘이 위치한 숲에서 작은 사이즈로 완성한 후에 화실에서 대작으로 그린 것 이란다. 모스크바의 ‘푸슈킨 박물관 Pouchikine’에 소장된 이 작품의 습작을 통하여, 본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 그림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많이 모여서 작업을 하던 파리 서쪽 근교 ‘아르장퇴이유’의 밀린 집세 대신에 담보로 맡겨졌었단다. 1884년 ‘모네’가 이 작품을 다시 사들였을 때는 […]
피리부는 소년 (에두아르 마네)
Le fifre – Eduard Manet 손과 발 부분을 빼고는 그림자가 전혀 없는 평면적인 묘사로 인물의 실재감을 강조하고, 일본 판화처럼 검은색, 붉은 색, 흰색의 한결같은 색조로 인물의 실루엣을 처리하였다. 알고가자,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르네상스‘ 이후부터 화가들이 그렇게나 공들여 찾던 공간의 깊이를 주기 위한 원근법을 포기하고, 완전히 2차원의 캔버스에 평면화 시킨 작품!!!! 1866년 ‘살롱’의 심사 위원들이 혹평을 가하지만, 당시 예술의 변화를 예감했던 ‘에밀 졸라 Emile Zola’는 이 작품을 변호한다. “그와 같이 단순한 방식으로 그보다 큰 효과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Je ne crois pas qu’il soit possible d’obtenir un effet plus puissant avec des moyens moins compliqués.” 이 수법은 1865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벨라스케스 Vélasquez’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배운 양식과 일본 판화의 단순한 농암으로 표현하는 수법에 영향을 받은 것, 피리부는 소년!!!!
해변 (에두아르 마네)
Sur la Plage – Eduard Manet 평화로운 해변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마네의 부인 ‘쉬잔 Suzanne’과 상념에 사로잡힌 마네의 남동생 ‘으젠느 Eugène’를 담고 있다. 1873년 7월 마네가 가족과 함께 ‘베르크 Berck’에서 3주간 체류하는 동안 그린 작품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것으로 보아서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간단한 붓 자국으로 두 인물의 옆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하였으며, 부인의 옷은 밝게, 동생의 옷은 어두운 색조로 묘사하였다. 몇몇 배들의 활짝 편 돛에 의하여 분할된 수평선은 인물에 밀려서 화면 꼭대기로 밀려갔고, ‘부댕 Boudin’이 그린 ‘노르망디 지방‘ ‘트루빌 Trouville’의 해변 모습에 비교할 때,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인물의 모습이 부각된 것이 독특하다.
흰 서리 (카미유 피사로)
Gelée blanche – Camille Pissarro 1874년 제1회 ‘인상파 전시회 Exposition Impressionniste’에 출품한 작품으로, 주제의 빈곤성을 질타하는 지적과 비판이 많았던 작품. 하늘에 번지는 빛의 움직임과 땅 위에 흩뿌려지는 잔영들을 세부적으로 자세히 표현하였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표현하기 위해서 거친 붓 터치를 사용한 작품, 흰 서리!!! < 이게 밭고랑이고, 이게 서리인가? 더러운 캔버스에 똑같이 겹쳐놓은 빨렛트의 조각들이네…., 처음도 불분명하고 끝도 없고, 앞뒤 분간도 안되고, 위아래도 없는. ça des sillons, ça de la gelée?… Mais ce sont des grattures de palette posées uniformément sur une toile sale. ça n’a ni queue ni tête, ni haut ni bas, ni devant ni derriè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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