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조 계보

프랑스  왕조 계보

Rois de France

서유럽의 가장 노른자위 땅 떵어리를 차지하다보니, 바람 잘 날 없던 프랑스 왕조 역사를 알고가자!!!!

왕관여러 분파의 골르와 족이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가운데, 훈족의 이동으로 시작된 민족 대이동으로 여러 종족들이 프랑스 땅에 정착하면서 영토 분쟁이 시작되는데……

살아 생전 모습을 관 뚜껑에 조각하였기에,  80 여개의 프랑스 왕과 왕비들 관을 보관한 ‘생 드니’ 성당을 방문하면, 신권에 가까운 최고 권력자들의 얼굴을 만져 볼 수도 있다. 고딕건축 양식이 탄생한 곳 이기도 하다. 왕족의 납골당, 강추!!!

 

메로뱅 왕조 Merovingiens 498-768

서로마가 망하면서, 춘추전국 시대이던 프랑스 땅은 481년 ‘끌로비스 Clovis’에 의하여 통일이 되고, 카톨릭으로 개종하며 왕으로 등극하는 498년 ‘메로뱅 왕조 Merovingiens’를 세운다. 다빈치 코드에 의하면, 예수의 후손이라는 전설이….. 믿거나 말거나^_^

 

카롤링 왕조 Carolingiens 768-987프랑스 왕조

이 후, 프랑크 족 ‘샤흘르마뉴 Charlemagne’의 정복으로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를 포함하는 거대한 프랑크 제국을 세우며 ‘카롤링 왕조 Carolingiens’가 768년부터 시작된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이 바로 유럽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대제 ‘샤흘르마뉴’!!!!

하지만, 형제간에 유산을 똑같이 분배하는 프랑크 족의 관습이 원인이 되어, 손자들 세대에 이르러 집안 싸움으로 치닫다가, 843년 ‘베흐덩 Verdun’ 조약으로 제국은 3등분 된다.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를 아우르는 영토를 지배하던 왕조.

프랑스 역사가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저 머~ㄴ 예날 옛적!!!

 

위그 까빼

까페 왕조 Les Capetiens 987-1328년
실제 프랑스의 역사가 시작되는 ‘까페 왕조’부터 ‘부르봉 왕조’ 까지 변천사를 알아보자!!!!

* 위그 까페 Hugues Capet (941-996)
까페 왕조의 시조로써 940년 파리에서 태어나서 970년 ‘아델라이드 드 쁘와뚜 Adelaide de Poitou’와 결혼을 한다. 대 영주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프랑스 왕 (허수아비)을 서로 돌아가면서 재위하던 시절……

일 드 프랑스‘의 대 영주인 ‘프랑스 백작 Comte de France’이 987년 6월1일 프랑스의 첫 왕으로 선출!!!! 생전에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처음으로 세습체제를 만들고 996년 10월 24일 사망.

 

* 호베르 2세 Robert II (970-1031)호베흐

‘위그 까페 Hugues Capet’의 아들로 970년에 ‘오를레앙 Orleans’에서 태어나 988년 이탈리아 공주인 ‘호잘라 Rosala’와 결혼을 하고, 989년 이혼을 하면서 당시 교황인 ‘그레고리 5세’에 의하여 교단에서 축출당한다. 이혼을 반대하던 교황청의 교지를 무시하고 이혼하더니….

996년 ‘사르트르 백작’의 미망인인 ‘베흐트 드 부르고뉴 Berthe de Bourgogne’와 재혼하고는 998년 또 이혼. 1003년 ‘꽁스탕스 드 프로뱅스 Constance de Provence’와 결혼한다. 전쟁보다는 결혼을 통하여 프랑스 지방의 영지를 합병한 셈!!!

996년 10월 24일 왕위에 오르고, 1031년 7월 20일 ‘믈랑 Melun’에서 사망.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도시에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모델인 ‘보 르 비꽁트 Vaux-le-Vicomte’ 성이 바로 근처에 있음. 강추!!!!

 

* 앙리 1세 Henri I (1008-1060)

1008년 ‘호베르 2세’의 셋째로 태어나 1044년 ‘마틸드 Mathilde’와 결혼 후 이혼하고, 1051년 러시아 공작의 딸 ‘안느 드 키에브 Anne de Kiev’와 결혼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하지만, 1032년 ‘부르고뉴 지방을 자신의 동생 ‘호베흐 Robert’에게 양도하는데, 바로 이 때부터 프랑스 영토 내부에 왕조에 반대하는 골치 덩어리를 만든 셈. 1031년 7월 왕위에 올라 1060년 8월 4일 ‘비트리 오 로그 Vitry-aux-Loges’에서 사망.

 

* 필립 1세 Philippe I (1052-1108)필립 1세

1052년 ‘앙리 1세’와 러시아 공작의 딸 ‘안느 드 키에브’ 사이에서 큰 아들로 태어난다. 1072년 ‘베르트 드 홀란드 Berthe de Hollande’와 결혼하고 1091년 이혼한다. ‘앙주 Anjou’ 공작의 부인인 ‘베흐트라드 드 몽포흐 Bertrade de Montfort’를 가로 챈 혐의로 인하여 교황으로 부터 파문당한다. 가문의 전통???? 부전자전???

1060년 8월 4일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1108년 7월 31일 ‘믈랑 Melun’에서 사망하는데, 재위 기간에 노르망디 공작인 ‘기욤 Guillaume le Conquérant’ (정복 왕 윌리엄)’이 1066년 영국을 정복하여 ‘노르망 왕조’를 세우면서, 영국의 왕이 프랑스 왕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는 상황이 발생한다.

 

* 루이 6세 Louis VI (1081-1137)

1081년 ‘필립 1세’의 큰아들로 태어나 ‘뤼시엔느 드 호쉬포흐 Lucienne de Rochefort’와 1104년에 결혼하고 1107년 이혼한다. 1114년 ‘아델라이드 드 사브와 Adelaide de Sovoie’와  결혼하면서, 알프스 산맥의 ‘사브와’ 지역 영토를 합병한다. 이 가문 씨가 확실하네…

1108년 7월 30일 왕위에 올라 영국왕 ‘앙리 1세’, 독일 황제인 ‘앙리 4세’와 전쟁을 하여 프랑스를 지키고 1137년 8월 1일 파리에서 사망.

 

* 루이 7세 Louis VII (1120-1180)루이 7세

1120년 ‘루이 6세’의 둘째로 태어나 1137년 ‘알리에노흐 다끼텐느 Alienor d`Aquitaine’와 결혼하여 1152년 이혼한다. 포도주로 유명한 보르도 지방 영주의 외동딸을 버리다니…..

이혼한 왕비 ‘알리에노흐’가 후에 영국 왕이 되는 ‘앙리 쁠랑타즈네 Henri Plantagenet’와 같은 해에 재혼하면서, 부인도 잃고 보르도 지방의 땅도 잃고….영토를 넓힌 조상들과는 달리…..패가망신!!!! 이 때부터, 영국인들이 보르도 지방의 포도주를 엄청 수입하여 마시기 시작하였단다.

왕은 1154년 ‘꽁스탕스 드 가스티이 Constance de Castille’와 결혼을 하지만 1160년 출산 도중에 왕비가 죽고, 한달 뒤에 ‘아델 드 샹파뉴 Adele de Champagne’와 재혼한다. 1137년 8월 1일 왕위에 올라 1147-1149년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였고 1180년 9월 18일 파리에서 사망.

 

* 필립 오귀스트 Philippe II Auguste (1165-1223)필립 오귀스트

1165년 8월 21일 ‘루이 7세’와 ‘아델 드 샹파뉴’의 사이에서 태어나 1180년 ‘이자벨 애노 Isabelle de Hainaut’와 결혼하지만 왕비는 1190년에 죽고, 1193년 ‘앵그뷔흐그 드 덴마크 Ingeburge de Danemark’와 결혼하지만, 1196년 ‘아그네스 드 메랑 Agnes de Meran’과 결혼하기 위하여 이혼.

1200년에 전처인 ‘앵그뷔흐그 드 덴마크’와 재결합하기 위하여 ‘아그네스 드 메랑’과 이혼한다. 구관이 명관???

1180년 9월 18일 왕위에 올라 1203년노르망디 Normandie 지역을 획득하고, 1189년 프랑스 중부지방 ‘오베르뉴 Auvergne’ 지역을 획득하고, 1213년 샹파뉴 Champagne지방을 병합하였으며, 제 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 하고 1223년 7월 14일 ‘망트 Mantes’에서 사망.

 

* 사자왕 루이 8세 Louis VIII le Lion (1187-1226)

‘필립 오귀스트’와 첫번째 부인인 ‘이자벨 애노’의 큰아들로 1187년 9월 5일 파리에서 태어나, 1200년 ‘블랑쉬 드 가스티이 Blanche de Castille’와 결혼한다. 노르망디 공작 ‘기욤 Guillaume le Conquérant’ (정복 왕 윌리엄)이 세운 영국의 노르망 왕조로 부터  ‘앙구무와 Angoumois’, ‘리무쟁 Limousin’, 뻬리고흐 perigord, ‘쁘와뚜 Poitou’ 지역 획득. 프랑스의 황금싸라기 영토를 얻은 셈!!

1223년 7월 14일 왕위에 올라 1226년 11월 8일 ‘오베르뉴’ 지역의 ‘몽팡시에 Montpensier’에서 사망.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아님!!!

 

 

* 생 루이왕 (루이 9세) Saint-Louis (1214-1270)루이 9세

1214년 4월 25일 ‘쁘와시 Poissy’에서 태어나 1226년 11월 8일 왕위에 오르고, 1259년 영국과의 분쟁을 해결하면서 노르망디 Normandie, ‘앙주 Anjou’, ‘마인느 Maine’, ‘쁘와뚜Poitou’ 지역을 얻는다.

1234년 ‘마거리트 드 프로뱅스 Marguerite de Provence’와 결혼하였으며, 1250년에는 이집트의 ‘슐탄 Sultan’과 십자군 전쟁을 하다가 포로로 잡혔었고, 1254년 막대한 돈을 지급하고 석방되어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쎄인트 샤펠 la Sainte-Chapelle을 건설하고, 예수가 썼던 ‘가시 면류관’과 십자가 조각, 대못을 구입한다.

대화재 이후,1260년 거대하고 화려하게 재건축된 고딕건축의 백미 ‘샤흐트르 대성당‘ 축성식에 참석하였고, 1270년 ‘튀니지’의 슐탄을 카돌릭으로 개종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제 8차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지만, 1270년 8월 25일 ‘튀니지’에서 열병으로 사망한다.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요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몽마르트르 언덕 정상에 위치한 ‘성심성당’ 정면의 청동 기마상으로 부활!!!

 

* 필립 3세 Philippe III (1245-1285)

1245년 4월 30일 ‘쁘와시 Poissy’에서 루이 9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262년 ‘이사벨 다하공 Isabelle d`Aragon’과 결혼을 하여 1271년에 사별하고 1274년 ‘마리 드 브라방 Marie de Brabant’과 재혼한다. 1270년에 왕위에 올라 왕족의 영토를 넓히었고, 1285년 10월 5일 남쪽의 ‘뻬흐피냥 Perpignan’에서 사망. 루이 9세가 자신의 자식들과 후손들이 묻히기 위하여 세운 ‘흐와요몽 수도원 Abbaye de Royaumont’에 묻힌다.

 

* 필립 4세 Philippe IV (1268-1314)필립 4세

1268년 ‘퐁텐블로 Fontainebleau’ 궁전에서 ‘필립 3세’와 ‘이자벨 다하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284년 ‘쟌 드 나바르 Jeanne de Navarre’와 결혼한다. 교황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된 정치 노선을 지향하였으며, 행정체계를 재정비하여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필리프 4세와 로마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대립이 있던 중에 1303년 아나니 사건(프랑스군이 아나니의 별장에 있던 교황을 습격한 사건)이 터지고, 프랑스인 추기경 ‘베르트랑 드 고트’가 교황 ‘클레멘스 5세’로 즉위하여, 1309년 부터 1377년까지 아비뇽에 교황청을 두는 아비뇽 유수!!! 교황의 지지를 얻어, 십자군 기사단을 13일 금요일 전국에서 동시에 체포하여 재산몰수 및 처형한다.

1285년 왕위에 올라 1314년 11월 29일 ‘퐁텐블로 궁에서 사망.

 

* 루이 10세 Louis X (1289-1316)

1289년 10월 4일 파리에서 ‘필립 4세’와 ‘쟌 드 나바르’의 큰아들로 태어나, ‘부르고뉴 지방‘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1305년 종형제 지간인 ‘마거리트 드 부르고뉴 Marguerite de Bourgogne’와 결혼하지만, 왕비를 교살한 것으로 의심을 맏는다!!!!! 어쨌거나, 조강지처를 살인하였다는 이야기인데, 1315년 ‘끌레멍스 드 옹그리 Clemence de Hongrie’와 재혼한다. 1314년 11월 29일 왕위에 올라 1316년 6월 5일 파리 동쪽 근교인 ‘벵센느 Vincennes’ 성에서 사망.

 

* 필립 5세 Philippe V (1294-1322)필립 5세

‘루이 10세’의 동생으로 1294년 ‘필립 4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307년 ‘쟌 드 부르고뉴 Jeanne de Bourgogne’와 결혼한다. 형인 ‘루이 10세’가 죽은 후, 형수인 ‘끌레멍스 드 옹그리’가 왕위를 이을 유복자를 낳지만, 태어난지 5일만에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를 당하자, 당연히 삼촌인 ‘필립 5세’를 의심한다. 왕권에 눈이 멀어서 조카를 제거한것일까??? 

여하튼, 1317년 1월 9일 스스로 왕위에 올라 1322년 ‘롱샹 Lonchamp’에서 사망.

 

* 샤흘르 4세 Charles IV Le Bel (1294-1328)

‘필립 4세’의 셋째 아들로 ‘끌레흐몽 Clermont’에서 1294년 태어나 1307년 ‘마리 드 룩상부르그 Marie de Luxembourg’와 결혼하여 1324년 사별한다. 사촌인 ‘쟌 데브뢰 Jeanne d`Evreux’와 결혼하지만 1328년 2월 1일 ‘벵센느 Vincennes에서 후손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서 ‘까페 왕조’의 직계 족보는 끊기게 되고…. 왕의 아들 3형제 모두 왕이 되면, 왕조가 끊기는 징크스를  남긴다.

영국으로 시집을 간 필립 4세의 딸이 왕위 계승권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프랑스인들이 꼼수를 부려서 다른 왕을 세운면서 영국왕 ‘에드워드 3세 Edouard III’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백년전쟁이 시작된다.

 

발르와 왕조 Les Valois 1328-1589필립 6세

* 필립 6세 Philippe VI de Valois (1293-1350)

‘샤흘르 드 발르와 Charles de Valois’와 ‘마흐거리트 당주 Marguerite d`Anjou’ 사이에서 ‘필립 4세 Philippe IV’의 조카로 1293년에 태어나 섭정을 하다가, 1328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 Edouard III’가 왕권을 주장하자 서둘러 왕위에 오른다. 영국인의 지배를 받기는 싫어!!!!!

 

* 쟝 2세 Jean II Le Bon (1319-1364)

‘만스 Mans’ 근처의 성에서 1319년 ‘필립 4세’와 ‘쟌느 드 부르고뉴 Jeanne de Bourgogne’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13세에 ‘본느 드 룩상부르그 Bonne de Luxembourg’와 결혼을 하지만 1349년에 상처당하고, 1350년 왕위에 오르면서 ‘쟌느 드 불로뉴 Jeanne de Boulogne’와 재혼한다.

1356년 ‘쁘와띠에 Poitiers’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런던에서 볼모 생활을 하다가 1364년 런던에서 사망한 그는 심성 때문에 선한 ‘Le Bon’이라고 칭해졌다. 독립된 모델의 측면을 그린 첫 번째 초상화로 안정받는 작품은 . 왕관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은 30살 전후의 ‘장 Jean’을 그린 것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 샤흘르 5세 Charles V Le Sage (1338-1380)샤를르 5세

‘쟝 2세’의 장남으로 1338년 ‘벵센느 성에서 태어나고, 1350년 사촌간인 ‘쟌느 드 부르봉 Jeanne de Bourbon’과 결혼하였으며, 아버지인 ‘쟝 2세’가 영국에 볼모로 잡혀있는 동안, 왕권 대행 섭정을 한다.

1364년 아버지가 런던에서 사망하면서 왕위에 올라 1380년 9월 16일 ‘보떼 쉬흐 마흔느 Beaute-sur-Marne’에서 죽을 때 까지 프랑스의 재정 체계를 새로이 확립하고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로뱅스 Provinces’ 지방을 되찾는다. 아버지의 원한을 갚아준 것….

 

* 샤흘르 6세 Charles VI Le Bien-Aime (1368-1422)

‘샤흘르 5세’의 장남으로 1368년 12월 3일 파리에서 태어나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기 때문에 3명의 삼촌들이 섭정을 하는데, 삼촌들의 등쌀에 안 미치면 이상할 듯…..

1385년에 ‘이자보 드 바비에흐 Isabeau de Baviere’와 결혼을 하였고, 1392년 왕이 미쳐버리자 왕비인 ‘이자보’의 손에 프랑스가 놀아난다. 결국, 1420년 경에는 거의 대부분의 영토를 영국에게 빼앗기었고, 왕은 1422년 10월 21일 세인들의 무관심속에 쓸쓸하게 사망.

 

* 샤흘르 7세 Charles VII Le Victorieux (1403-1461)샤흘르 7세

1403년 미친 왕 ‘샤흘르 6세’의 5번째 아들로 태어나지만 부왕이 미친 상태이고, 왕비가 정권을 쥐고 많은 스캔들을 뿌리는 가운데 태어났기에 혈통의 정통성 문제가 항상 제기된다. 왕비가 낳기는 낳았는데, 누구의 씨일까???

시칠리아까지 영토를 확장한 앙주공작 가문의  ‘마리 당주 Marie d`Anjou’와 결혼을 하였고 1422년 왕위에 오른다. ‘르와르 고성 지대‘의 ‘쉬농‘에서 왕태자로써 위축된 생활을 할 때 ‘쟌 다르크 Jeanne d`Arc’의 도움으로 영국군을 축출하고 ‘깔레 Calais’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를 회복한다. 1461년 7월 22일 ‘므욍 쉬흐 에브흐 Mehun-sur-Yevre’에서 사망.

 

* 루이 11세 Louis XI (1423-1483)

‘샤흘르 7세’의 장남으로 1423년 ‘부흐즈 Bourges’에서 태어나, 스코트랜드 국왕 ‘쟉크 1세 Jacques 1’의 딸인 ‘마거리트 스튜어트 Marguerite Stuart’와 1436년에 정략 결혼을 하지만, 왕비가 1445년에 사망한다. 1451년 ‘샤흘로트 드 사브와 Charlotte de Savoie’와 재혼하면서 사브와 지역을 평정한다. 1461년 왕위에 올라 군대를 재정비하고 왕실 재정을 튼튼하게 키웠으며, 1483년 8월 30일 ‘쁠래시 래 뚜흐 Plessis-les-Tours’에서 사망.

 

* 샤흘르 8세 Charles VIII (1470-1498)샤를르 8세

1470년 ‘앙브와즈 Amboise’ 성에서 ‘루이 11세’와 ‘샤흘로트 드 사브와’ 사이에서 태어나, 1483년에 왕위에 오르고, 1491년 ‘안느 드 브레따뉴 Anne de Bretagne’와 결혼을 하면서 ‘브르따뉴지방을 프랑스로 귀속시키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만……..

신혼집으로 증축 공사를 하던 ‘앙브와즈’ 성의 입구에서 머리를 다쳐 1498년 4월 8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서 ‘발르와 왕조’는 끝을 맺는다.

 

발르와-오흘레앙 왕조

* 루이 12세 Louis XII (1462-1515)

루이 12세

후손을 남기지 못한 ‘샤흘르 8세’의 사촌형제인데 ‘샤흘르 도흘레앙 Charles d`Orleans’의 아들로 1462년에 ‘블르와 Blois’에서 태어남.

과부가 된 사촌 형수이며(평소 사모하던) 왕비 ‘안느 드 브레따뉴 Anne de Bretagne’와 결혼하여 ‘브르따뉴’ 지방을 프랑스 영토로 묶어둔다.

1498년 왕위에 오르면서 ‘발르와-오흘레앙 Valois-Orleans’ 왕조가 시작되고, 1514년에 왕비가 죽자, 영국의 ‘헨리 8세’의 누이인 ‘마리  Marie d`Angleterre’와 결혼하지만,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515년 1월 1일 파리에서 사망. 회춘은 커녕 복상사???

 

발르와 앙굴렘 왕조프랑스와 1세

* 프랑스와 1세 Francois I (1494-1547)

‘샤흘르 드 발르와 오흘레앙 Charles de Valois-Orleans’의 아들로 1494년 ‘꼬냑 Cognac’에서 태어나, ‘앙굴렘 공작 Comte d`Angouleme’으로 불리다가, 루이 12세의 딸과 결혼.

후사를 남기지 못한 ‘루이 12세’의 뒤를 이어, 1515년 왕위에 오르면서 ‘발르와 앙굴렘 Valois-Angouleme’ 왕조가 시작되고, 1547년 3월 31일 ‘랑부이에 Rambouillet’ 성에서 사냥을 즐기던 중 급성 독감으로 갑자기 사망한다. 치세 기간 동안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끌로 뤼쎄 Clos Luce’로 초청하여 르네상스 문화를 프랑스에 도입하고, 문예 부흥을 일으킨다.

 

* 앙리 2세 Henri II (1519-1559)앙리 2세

‘프랑스와 1세’의 둘째 아들로 1519년 ‘쌩 제르멩 엉 레 Saint-Germain-en-Laye’ 성에서 태어나 1533년 이탈리아의 ‘까트린 드 메디치 Catherine de Medicis’와 결혼하면서, 재정적으로 왕권을 강화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몽고메리’ 공작과의 기마 창시합에서 눈이 찔려 고통을 받다가 1559년 7월 10일 파리에서 사망한다. 자신보다 18세 연상인 ‘디안느 드 쁘와띠에 Dianne de Poitier’와의 연애 행각은 유명하다. 르와르 고성지대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쉬농소 Chenonceaux‘ 성을 첩에게 선물!!!

 

* 프랑스와 2세 Francois II (1544-1560)

‘앙리 2세’와 ‘까트린 드 메디치’ 사이에서 장남으로 1544년 ‘퐁텐블로 Fontainebleau’에서 태어나, 1558년 어린 나이에 ‘마리 스튜아흐 Marie Stuart’와 결혼하였으며, 1559년 15세에 왕위에 오르지만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560년 12월 5일 사망. 독살당한 것일까?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라, 기즈 공의 영향으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으며, 구교와 신교의 지루한 종교전쟁 빌미를 제공한다.

 

* 샤흘르 9세 Charles IX (1550-1574)샤흘르 9세

‘앙리 2세’의 둘째 아들로 1550년 ‘쌩 제르멩 엉 레’ 성에서 태어나, 형인 ‘프랑스와 2세’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10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프로렌스 ‘메디치’ 가문 출신인 어머니 ‘까트린 드 메디치’가 구교와 신교의 종교 다툼을 왕권 강화에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전국을 극심한 피의 종교 전쟁으로 만든다. 딸 마거리트 (마고 여왕)과 위그노파의 수장인 ‘앙리 4세’의 결혼식 전야제를 축하하기 위하여 모인 신교도들을 살해한다. ‘성 바르텔레미 Saint Barthelemy’ 학살….

1574년 5월 30일 24살의 한창 나이에 ‘뱅센느 Vincennes’ 성에서 사망. 독살???

 

* 앙리 3세 Henri III (1551-1589)

‘앙리 2세’의 셋째 아들로 1551년 ‘퐁텐블로 Fontainebleau’ 성에서 태어나 형인 ‘샤흘르 9세’의 뒤를 이어 1574년 왕위에 오르고, 1575년 ‘루이즈 드 보데몽 Louise de Vaudemont’과 결혼하여 프랑스의 문화를 발전시키지만 종교전쟁으로 사회는 불안하였다. 1589년 8월 2일 ‘쌩 끌루 Saint-Cloud’에서 ‘쟉크 끌레멍 Jacques Clement’이라는 수도승에게 암살당하면서 ‘발르와’ 왕조는 끝난다. 과부가 된 왕비는 정치권을 스스로(?) 떠나서, ‘쉬농소 성‘에서 기도와 참회로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왕의 아들 3형제 모두 왕이 되면, 왕조가 끊기는 징크스!!!

 

부르봉 왕조 Les Bourbons 1589-1791앙리 4세

* 앙리 4세 Henri IV (1553-1610)

‘앙뚜완 드 부르봉 Antoine de Bourbon’의 큰아들로 1553년 ‘뽀 Pau’에서 태어나 1572년 ‘앙리 2세’의 딸인 일명 ‘마고 여왕 La Reine Margot’인 ‘마흐게히트 드 발르와 Marguerite de Valois’와 결혼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마고여왕’이란 이름으로 영화가 소개되었었다.

구파와 신교파로 나뉘어 전쟁을 하던 불안정기라서 파리의 ‘옥세루와 Auxerre’ 성당의 자정 종소리에 맞추어 구교파가 결혼식에 참가한 신교도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마고여왕’ 영화에서 보여 주듯이…..

개신교를 믿던 ‘앙리 4세’는 1589년 왕위에 오르는데, 왕들의 도유식을 거행하는 ‘랭스 대성당‘이 구교도들의 영향 아래에 있다보니, 고딕건축의 백미로 유명한 ‘샤흐트르 대성당‘에서 도유식을 거행한다.

1593년에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국가의 평화를 추구하고, 1598년 ‘낭트 칙령 Edit de Nantes’을 발표하여 종교전쟁을 종식시킨다. 1600년 이탈리아의 ‘마리 드 메디치 Marie de Medicis’와 결혼하여 1610년 5월 14일 파리에서 ‘하바이악 Ravaillac’에게 암살 당할 때까지 프랑스를 강력하게 만든다.

 

* 루이 13세 Louis XIII Le Juste (1601-1643)

1601년 ‘퐁텐블로 Fontainebleau’ 성에서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 사이에서 태어나 1610년 왕위에 오르고, 1615년 ‘안느 도트리쉬 Anne d`Autriche’와 결혼. 고자라는 소문이 무성…… 재무장관을 역임한 ‘히슐리외 Richelieu’ 추기경의 도움으로 상업을 발달시키고 프랑스를 풍족하게 만들지만 1635년 영국과의 30년 전쟁을 시작하고, 1643년 5월 14일 ‘쌩 제르멩 엉 레 Saint-Germain-en-Laye’에서 사망.

 

* 루이 14세 Louis XIV  Le Grand (1638-1715)루이 14세

1638년 ‘쌩 제르멩 엉 레 Saint-Germain-en-Laye’ 성에서 ‘루이 13세’의 큰아들로 태어난다. 즉, 결혼한지 23년 만에 태어난 아이….. 뭔가 좀 수상한 냄새가 있다. 더군다나, 루이 13세는 고자라는 소문이 있었고…

1643년 5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어머니인 ‘안느 도트리쉬’와 추기경 ‘마자랭 Mazarin’이 섭정을 한다. ‘마자랭’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프랑스의 숙적 스페인의  ‘마리 테레즈 도트리쉬 Marie-Therese d`Autriche’와 결혼하여, 외교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다. 남불의 관광명소 중에, 전략적 요충지이던 ‘까르까손 Carcassonne‘ 이 쇠락의 길을 걷는 동기가 바로 이 결혼으로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부터라고….

수 많은 전쟁을 통하여 재정을 고갈시키기고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베르사이 Versailles’ 궁전을 건설하였으며, 문화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많은 애인들과 연애행각을 벌였지만 말년에는 ‘맹뜨농 부인 Mme de Maintenon’과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고 ‘베르사이’ 궁전의 정원에 아담하게 지어진 ‘그랑 트리아농 Grand Trianon’에서 칩거하다가 1715년 9월 1일 사망.

 

* 루이 15세 Louis XV Le Bien Aime (1710-1774)

‘루이 14세’의 증손자로 1710년에 ‘베르사이 Versailles’ 궁전에서 태어나, 1715년 5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지만, 너무 어린 나이이기에 ‘필립 오흘레앙 Philippe d’Orleans’의 섭정을 거친다. 1725년 폴란드의 ‘마리 레진스카 Marie Leszcynska’와 연애 결혼하였고, ‘로렌 Lorraine’ 지방과 ‘꼬흐스 Corse’ 지방을 프랑스에 합병하여 유럽에 평화를 유지한다. 1767년 꼬흐스 (코르시카) 지방이 프랑스령이 된 이듬해, 나폴레옹이 태어난다.

1774년 5월 10일 ‘베르사이’에서 사망할 때는 허약한 왕조를 남긴다. 무늬만 멀쩡한 왕조…..

 

* 루이 16세 Louis XVI (1754-1793)루이 16세

1754년 8월 23일 ‘베르사이’에서 ‘루이 15세’의 손자로 태어나고 1770년 오스트리아 황제의 동생인 ‘마리 앙뚜와네트 Marie-Antoinette’와 결혼한다. 성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처남인 오스트리아 황제가 직접 방문하여, 성교육을 시켜주었다고…..

1774년 왕위에 올라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악화된 재정을 채우기 위하여 ‘삼부회의’를 열지만, 시민들의 반발로 1789년 ‘바스티 Bastille’ 감옥을 함락한 ‘프랑스 대혁명군’들에 의하여 폐위된다. 처가인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다가 발각되어, 1793년 1월 21일 ‘단두대 Guillotine’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서기 987년 ‘위그 까페 Hugues Capet’부터 시작된 왕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조상을 뵐 면목 없음.

왕의 아들 3형제 모두 왕이 되면, 왕조가 끊기는 징크스!!!

 

나폴레옹과 왕정복고  La Restauration루이 필립

제 1 공화국이 지나고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1세’의 몰락 이후에 ‘루이 16세’의 형제인 ‘루이 18세 Louis XVIII’가 1814-1824년 왕위에 재임하였고, ‘샤흘르 10세 Charles X’가 1824-1830년까지 왕위에 오르지만, 1830년 3일간의 ‘7월 혁명’으로 영국으로 유배를 떠나면서, 부르봉 가문의 역사도 끝!!!!

‘오를레앙 Orlean’ 가문의 ‘루이 필립 Louis-Philippe’이 1830-1848년까지 ‘국민의 왕’으로 다스리다가, 1848년 대혁명으로 유배가면서 왕정은 완전히 끊기고 공화정으로 넘어간다.

알제리를 식민지로 만든 왕이며, 국민들의 환심을 얻고자 수 많은 업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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